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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자전거의 짝사랑

자전거, 사람 외롭게 하네



외롭다.
폭염으로 명명된 햇살이 내리쬐는 날, 생전 처음 와 본 낯선 시골, 방송용엠프에서 제법 크게 트롯트 노래가 흘러나오는 마을 입구,  간혹 차들이 오가는 저수지옆 시멘트 길에서,  바람 빠진 자전거를 끌다가, 불현듯 느낀 감정이었다. 
근처엔 자전거를 수리할 곳도 없고, 누구를 부를 수도 없으며,  여기가 어디쯤 되는지 확연하지 않은 그때.  왜 '쓸쓸함'이 아니라 '외로움' 였는지는 알 수 없다. 쓸쓸함에 약간의 두려움이 묻어있는 듯한 그 느낌, 희미한 절망의 냄새까지도 느껴지는 그 마음, '외롭다' 였는지 설명할 수 없다. 
       

1.

외롭기 전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함평군 손불면을 떠난 자전거는 잘 달렸다. 차들은 간혹 지날 뿐이었다. 경사가 거의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는 여전히 21단이었다. 

손불면을 떠나 4킬로미터 남짓 왔을 무렵  잘 달리던 자전거에서 갑자기 '펑'  하며 '픽~'  소리가 났다. 순간 '펑크'라고 생각했다. 속도를 줄여 자전거를 세워놓고 보니 뒷바퀴가 타이어가 1센티 정도 찢겼다. 펑크치고는 제법 컸다. 

난감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펑크를 수리할 장비를 챙겨왔다는 점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그늘을 찾았다. 해안가 마을쪽으로 100여미터쯤에 작은 산자락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배낭짐을 풀고 펑크수리 도구를 꺼냈다. 자전거를 누이고, 타이어를 빼고 쥬브를 꺼냈다. 펑크난
부위는 제법 컸다.  통상 펑크는 압정 한 개  박혀 있는 정도인데 이번엔 새끼손가락을 밀어넣으면  들어갈 법도 하다. 본드를 꺼내 펑크난 부위에 고무패드를 대고 떼웠다. 


길바닥을 기어다니던 왕개미들이 어느새 풀어놓은 물건위로 올랐다.  개미들을 털어내고는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배낭을 자전거 뒷 좌석에 묶고 막 출발할 즈음. 
'퍽.. 피이이익...'
다시 바람이 샜다. 실망감은 잠시였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됐다. 배낭을 풀고, 펑크 도구를 꺼내고, 쥬브에 본드를 붙이고, 왕개미를 털어내고, 배낭을 자전거에 묶었다. 고무패드를  두 장 붙였다는 점만 달랐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시 펑크가 나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무그늘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돼 자전거를 보니 뒷바퀴 바람이 또 빠졌다. 이번엔 '펑'소리도 없었다. 이제 대책은 없다. 

펑크나기 전
함평군 월하면, 해보면을 지나고 나니 시련이 시작됐다. 비교적 평지로만 이어지던 도로가 산자락으로 붙었다. 
국군함평병원을 지나자마자 오르막이 시작됐다. 앞 기어까지 조작해야 페달이 밟혔다. 신광면을 지날 때까지 도로는 산자락을 오르내렸다. 오르막에선 자전거기어뿐 아니라 감정조절도 필요했다. 문득 여행을 회의하는 감정이 불끈 솟았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여행이다. 
이 갈등을 잘 조절하고 나면 내리막이 반겼다. 그곳에서는 질주본능뿐이다. 회의는 손톱만큼도 없다. 언제나 내리막은 1분도 안돼 끝난다는 아쉬움만 남았다. 시련과 질주를 세 차례 정도 하고나니 몸에 기운이 모두 빠졌다.


원산삼거리에서 잠시 23번 도로에 얹혀가다가 다시 838번을 달렸다. 함평군 신광면이다. 그곳을 지나 5킬로미터 남짓 가
니 앞쪽으로 다시 산이 보였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잠시 망설이다 왼쪽에 정자를 찾았다. 방축제라는 저수지둑을 따라 갔다. 다시 휴식을 취했다. 

바람이 더없이 좋았다. 한 개 남은 참외를 꺼내 잘라보니 약간 곪은 듯 싶다. 이번엔 버릴 수가 없다. 씨만 버리고 그대로 먹었다. 쵸코바도 사탕도 꺼내 먹었다. 앞산을 오르려면 믿을 건 체력뿐이었다. 저수지 물살을 핡고 온 바람은 정자가 만든 그늘과 만나 최고의 휴식처를 만들었다. 
그쯤에서 생각했다.  굳이 오늘 고창까지 갈 이유는 없다. 가는 과정이 중요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휴식은 맘껏 즐겨야 한다. 자기위안을 보태 30분을 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10여분을 달리니 신불면이었다. 여전히 함평이다. 손불면을 막 나서 이정표를 보니 영광까지 28킬로미터다. 

자전거를 돌렸다. 11시 30분. 손불면에 있는 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바닷가에서 직선거리로 3킬로미터 남짓해서인지 횟감이 많았다. 백반을 주문했다. 잠시 후 나온 백반엔 반찬이 14가지다. 처음엔 감탄했는데 막상 손이 자주 가는 반찬은 없었다. 점심은 미식이 아니라 생존조건임을 알기에 밥의 두 세배씩 반찬을 해치웠다. 식당을 나오며 물통도 모두 채워 넣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함평군 손불면을 떠난 자전거는 잘 달렸다. 차들은 간혹 지날 뿐이었다. 경사가 거의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는 여전히 21단이었다. 

오르막 만나기 전 
아침 7시 15분, 광주 금호집 집을 나섰다. 방송에서는 오늘 날씨를 폭염이라 했지만, 아침 날씨는 흐렸다. 아침이라 그런지 온도도 높이 않았다. 
'다음 뷰'로  서너 차례 본 지도를 떠올리며 길을 찾았다. 1차 지점은 광주송정역. 큰 어려움 없이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목적지를 평동역으로 정했다. 철로를 건너 평동로를 따라 가니 역도 쉽게 찾았다. 역을 조근 지나니 길이 헷갈렸다. 잠시 망설이다 지도에서 본대로 직진했다. 지방도 축에도 들지 않는 왕복 2차선 도로였다. 간혹 길가에 조그만 마을을 두었을 뿐이다.   

이번 자전거여행의 여정은 함평, 영광을 지나 고창까지 가서 1박하고, 장성을 거쳐 광주로 되돌아오면 끝이다. 이 여정에 한 가지 원칙같은 걸 덧붙였다. 목적지가 목표가 아니라 가는 길이 목표라는 것이었다. 즉, 이번 여정은 세자리 숫자로 표기된 지방도를 따라가기로 계획했다. 813, 825, 838, 808번은 그 계획에 따라 달리기로 한 지방도였고, 22, 23, 77번은 불가피하게 지나야 하는 국도였다. 자전거 여행마저 목적지만 보고 달릴 이유는 없었다. 

집에서 나온 지 한 시간쯤 지나자  대산삼거리가 나왔다. 시골 마을길을 따라 30여분 달렸어도 여전히 광주광역시였다. 거기
서 813번 도로를 처음 만났다. 813번은 곧장 약간의 경사를 만들었지만 아직 체력이 거뜬했다. 20여분을 달려 이번엔 825번으로 갈아탔다. 길은 이제 함평군 나산면으로 들어섰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니 838번이었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오래 함께할 도로다. 도로는 새로 포장한 듯 산뜻했다. 얼마 가지 않자 오른편으로 신기한 건물이 보였다. 큰 장수풍뎅이가 지붕을 감싼 듯했다.  가까이 가보니 나산면에 있는 함평생활유물전시관이었다. 자전거가 아니었으면 오기 함들었을 곳, 바깥풍경만 구경한 채 다시 길을 달렸다.

10여분 달리고 나니 이번엔 왼편으로 연꽃이 가득한 저수지가 펼쳐졌다. 방축저수지다. 내친 김에 근처 정자에서 휴식을 취했다.  집에서 출발 한 지 2시간쯤 됐다. 배낭에서 참외를 꺼냈다. 일주일전 사 먹고 남았던 세 개를 모두 가져왔다. 참외 한 개를 꺼내 쪼개보니 안이 곪았다. 아깝지만 쓰레기통에 버렸다. 모두 썩었으면 간식이 변변치 않아 낭패일텐데, 다행히 두번째 것은 말짱했다. 부는 바람에 땀도 식히고 연꽃도 구경하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함평군 월하면, 해보면을 지나고 나니 시련이 시작됐다. 비교적 평지로만 이어지던 도로가 산자락으로 붙었다. 


2,
'외롭다'는 이유를 여행의 출발과 직전까지의 과거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출발은 순조로웠고, 오르막을 만나는 건 자전거여행의 일상다반사다. 지난주 장마로 못 간 여행을 이번주에 간 것 뿐이며, 단지 폭염을 예보했을 뿐이다.
외로움은 분명 자전거 펑크를 수리했음에도 다시 바람이 빠져버린 그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온 감정이었다. 그 외로움은 그동안 타이어 안에 갇혀 있다가 펑크난 구멍으로 새나온 듯 했다. 
펑크난 자전거를 수리하느라 두 손은 이미 새까맣게 되었지만 씻을 곳도 없었다.  그러니 외로움을 쓰다듬어 달래줄 수도 없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족했다. 
  
3.
펑크난 후
이제 여정을 어찌 할 것인지 갈등을 하던 차에 논에 나오던 할아버지를 만났다. 
"근처에 자전거포가 있을 만한 동네가 있나요?"
"손불면에는 있는데, 오토바이 가게는 있는데 그러면 자전거도 수리하지 않을까! 아니면 염산면으로 가 봐!"
할아버지는 자신감이 없었다. 나그네를 돕고는 싶은데 당신 역시 방법을 못 찾는 듯했다.
상황은 선택같은 축복을 주진 않았다. 손불면은 되돌아가는 길이다. 모든 걸 포기한 상황이 아니라면 영광군 방향인 염산면밖에 없다. 확신은 없고 그저 기대만 믿고 가야했다.    

염산면까지 15리 정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자전거에 올랐다. 뒷바퀴는 다행히 바람이 약간 남았다. 다시 한번 바람을 80% 가량 넣고 자전거를 달렸다. 다시 펑 소리가 날까봐 조심했지만 그런대로 탈 만했다. 오르막 정상에서 다시 한번 바람을 넣었다. 내리막에서는 약간의 속도를 줄였을 뿐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어느새 행정구역은 영광군으로 바뀌었다.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한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오는게 보였다. 다시 여쭈었다.  
"염산면에 가면 자전거포가 있나요?" 
기대를 확신으로 바꾸고 싶었다.
"있지, 저기 보이는 것은 교회고, 저건 고등학교인데 그 앞이야. 농협 근처에 가 봐." 
멀리 보이는 소도시를 가리키셨다. 한참 멀어보이는데 10분 정도면 갈 수 있단다. 

가는 길에 반대차선으로 오는 자전거족 다섯 명을 만났다. 일일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상대편도 손을 흔들었다. 여유가 생겼다. 10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필요하면 바람 한번 더 넣고 가면 된다. 자전거가 염산면까지 달리는 동안 타이어 바람은 큰 변화없이 제 상태를 유지했다.  
염산면에서 다시 길을 물어 자전거포를 찾았다. 그런데 슬며시 변심이 생겼다. 여기까지도 잘 왔데 수리하지 말고 그냥 갈까?  마음을 다잡아 자전거포로 갔다. 언젠가는 한번쯤 수리할 일이다. 
자전거포엔 자전거가 몇 대 없었다. 한쪽에는 쌀포대도 쌓였다. 여러 가게를 겸하는 듯 했다. 일단 쥬브를 교체했다. 타이어도 교체하려 했으나 크기가 맞는 게 없었다. 그곳에서 비로소 손을 씻고 땀도 닦았다.
자전거포를 나와 근처 냉면집을 찾았다. 식사 한 지 3시간이 안지만 뭔가를 먹고 싶었다. 어느새 날씨도 예고한 대로 폭염으로 접어든 듯했다. 세상은 햋빛이 9할이었고 그늘이 실수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그 9할의 100%는 찌는 더위였다. 

자전거 수리 후
냉면을 먹으며 생각했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접으면 어떨까! 남은 일정을 계산했다.
영광읍까지는 16킬로미터 남았다. 자전거로 1시간 정도 걸릴 거리다.  영광읍에서 광주까지는 50킬로미터 남짓이다. 이제 지방도로를 포기하고 빠른 길을 택한다. 그렇다면 22번 도로다.  그 길로 가면 3시간 남짓 걸릴 듯하다.  염산면에서 2시 20분쯤이면 출발할 수 있으니 영광까지는 3시 30분 정도면 도착한다. 영광에서 광주까지는 3시간이니 6시 30분이면 광주 도착이다. 요즘엔 7시 30분까지도 훤하니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냉면값을 치루고 나오면서 이 계산을 공식화 했다.

영광읍으로 달리는 길, 팔에 토시까지 했지만 등에 내리쬐는 햇살엔 대책이 없었다. 그 햇볕이 풍성했던 여행 일정을 모두 증발시켰다. 광주에서 출발할 때 가졌던 계획은 모두 사라졌다. 고창, 장성은 이제 이번 여행에서는 없다. 대신 남은 것이라곤 광주로 가야한다는 일념만이 남았다.  
영광읍으로 가는 길은  차들이 제법 달렸다. 갓길없는 편도 1차선길이라 차량이 자꾸 신경쓰였다. 16킬로, 10킬로, 8킬로.... 그럼에도 목적지가 좁혀질수록 여유가 생겼다. 타이어를 교체하진 못했지만 자전거는 말짱했다.

영광읍까지 4킬로미터라는 이정표를 확인하고는 휴식을 취하려 어느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군남면 근처였다. 낡은 다리에 그늘이 들었
다. 
다리에서 10여 미터 거리엔 마을 정자가 있었다. 그곳엔 마을 어른들 서너명에 쉬고 있었다. 잠시동안 낯선 이들은 서로를 살폈다.
다리위엔 바람이 많았다. 풍우교라는 이름이 걸맞았다. 그늘과 바람은 언제나 휴식을 최상으로 만들었다. 10여 분, 물 한 통을 거의 비울 무렵 때 다시 일정을 생각했다. 이 날씨에 22번 도로를 타고 광주까지 3시간 동안 달릴 이유가 있나? 꼭 그렇게 가야만 하나?  그렇다고 3~4만원을 들여 1박을 하기엔 돈이 아깝잖아! 부정하기 위한 생각의 진도는 빨랐다. 마침내 해법이 떠올랐다.    

마을정자로 가서 쉬고 계시는 어르신들께 여쭈었다.  
"영광읍에서 광주가는 직행버스가 있나요?" 
"있지!"
혹시나 싶어 '직행'을 강조해 되 여쭈었으나 답은 같았다. 다시 일정 변경이다. 22번 국도를 달리는 건 포기다. 직행이라면 자전거를 실을 수 있으니 영광읍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계획이 수정되면서 휴식은 늘었다. 남은 거리가 4킬로미터라면 걸어서도 한 시간이다. 비록 펑크의 아픔을 겪었지만 자전거까지 있으니 좀더 쉬기로 했다.  스스로 명분도 주었다. 자전거여행이란 이런 거야. 달리다 좋은 곳 있으면 푹 눌러 쉬는 거지. 물 한통을 말끔히 비웠다. 아직 한 통 더 남아있고 이제 거의 끝났으니 굳이 아낄 이유가 없었다.
30여분을  쉰 끝에 다시 길을 달렸다. 큰 불편없이 영광읍에 도착했다. 터미널은 길을 한번 더 물어 어렵지 않게 찾았다.  

영광 도착 후 
터미널에 도착해 곧바로 대합실로 들어갔다. 자전거는 승강장쪽에 세워두고 배낭을 맨 채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었다. 3시 43분. 직행버스는 30분에 한 대 꼴로 있었다. 주저함 없이 표를 끊었다. 
애초 영광에서는 백수해안도로를 달릴 계획이었다. 광주로 곧장 돌아간다 해도 영광읍이라도 슬쩍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은 아에 엄두도 나지 않았다. 10여 분을 기다려 직행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버스 짐칸 문이 넓어 자전거를 싣기에도 불편이 없었다. 좌석도 여유가 있어 혼자서 앉았다. 옆에 누가 있다면 내 땀냄새에 곤욕스러워 했을 것이다. 

자전거로 3시간을 예상했던 길은 버스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4시 50분. 광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여전히 햇살은 따가웠다. 다시 가방에서 토시와 마스크를 꺼냈다. 집에까지 가는 길은
그늘이 든 길로만 방향을 잡았다. 그늘이 있다면 인도쪽에 난 자전거도로도 달렸다. 
집에 도착하기 5분전. 다시 냉면집에 들어가 냉면을 주문했다. 냉면엔 얼음이 가득했다.  이 더위에 이처럼 시원한 음식을 먹다니, 행복했다. 아침 7부터 오후 5시까지 네 끼를 먹었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6시다. 11시간 동안의 1일 자전거 여행이 끝났다.

4.
10 여년 전. 겨울지리산을 올랐다가 점심 무렵에 무릎에 이상이 발생했다. 모든 일정을 접고 세석산장에서 한신주계곡을 따라 백무동으로 하산했다. 좀 고생하겠다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외로움도 쓸쓸함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단지 자전거가 펑크났을 뿐인데 외로움이라니. 외로움. 그것은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사는 동네가 지척이고, 민박집까지 운영하는 마당에 무엇이 두려웠을까 싶었다. 
엑스파일처럼 설명할 수 없는, 설명할수록 더욱 이상해져 가는 2010년 7월의  마지막 날, 채 1초도 되지 않은 그 시간에 나를 급습했던 그 느낌, 외로움 여전히 정체를 모른 채 접었다.
다음 자전거여행에서 그 실체를 찾을 수 있을지, 굳이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면 다시 펑크가 나야 한다. (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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