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아는 인도 북부 질란다루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녀입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5살 때부터 축구공 꿰매는 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몸져누운 상황에서 아버지의 벌이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는 버거웠습니다.
그가 축구공 한 개를 꿰매서 받는 임금은 약 300원 정도였습니다.
“밖에 나갈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공을 꿰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축구공 두 개를 꿰매고 나면 하루해가 저물었고,
하루 번 일당으로는 우유 1리터도 살 수 없었습니다.
인도의 한 시민단체에 의하면
인도에서만 축구공 꿰매는 아이들은 2만여명이라고 합니다.
파키스탄은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부는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축구공을 제조하는 초국적기업들이
제조노동자들에게 실질 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른들은 생계를 위해
아이들 손에 바늘과 축구공 조각을 들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소니아는 일곱 살 때 시력을 잃었습니다.
화학물질이 섞인 축구공 실로,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해야 했던 노동조건이
그에게서 세상의 빛을 거둬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래 꿈인 변호사가 되면
어린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일하겠다는 소니아는,
2002년 월드컵을 맞아 한국에 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어린이들이
어떤 노동 현실을 겪고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월드컵의 함성에 묻혀
긴 메아리로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5살 때 느꼈을 방안의 어둠은
이 세상의 외면으로부터 비롯된 어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해
그의 한국 방문이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