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학교의 교사 반성문을 읽다
“이에 저희는 학생 여러분에게 그간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우리가 정한 원칙(학생의 교내외 음주․흡연 금지, 교사의 교내 흡연 금지)을 보다 튼튼히 지킴과 동시에 학생 여러분에게 바른 본을 보이고자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누군가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란 말을 했지요. 저희는 그동안의 잘못을 깊이 사과드리면서 여러분과 함께 조심스럽게 희망을 키워가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애정을 갖고 저희의 잘못을 따끔하게 비판해 주세요.”
이 사과문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4월 말 월간 ‘인권’ 취재를 위해 경기도 분당에 있는 이우학교에 갔다. 도시형 대안학교를 지향하는 이우학교는 지난해 개교해, 현재는 중학교 1,2학년과 고등학교 1,2학년으로 구성돼 있다. 태양광을 이용한 에너지 활용,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건물 설계, 시민사회가 설립과 운영의 주체라는 점이 그간 언론에 보도된 이우학교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여느 대안학교와 마찬가지로 학습 내용이나 운영에서도 일반학교와의 차이를 발견하기엔 어렵지 않았다. 그런 차이는 또한 또 다른 대안학교들과도 차이를 두고 있는데, 그 가운데 새싹처럼 돋기 시작한 차이가 바로 ‘인권 교육’이었다. 애초 취재는 그 인권교육을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취재는 큰 무리 없이 끝났다.
사과문을 본 것은 취재를 잠시 중단한 때였다. 취재원이었던 선생님이 잠시 다른 볼일이 있어 쉬는 틈에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본 것이다. 사과문은 ‘고1학생 여러분께’라는 제목으로 쓰여 있었다. A4용지 석 장에 글자를 크게 프린트해 복도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사과문을 쓰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교내에서는 흡연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교사 스스로 어겼다는 것이고, 둘째는 학교 생활규정의 학생의 교내외 금주를 금하고 있는데 이를 용인하거나 눈감아 주었다는 거였다.
우연히 본 사과문이지만, 막상 내가 취재하러 온 내용보다 그 사과문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그것은 형식과 내용 모두 많은 생각을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과연 그 정도의 내용이 사과를 할 만한 것인가 싶은 점이었다. 첫째 이유인 교사들의 흡연 문제는, 흡연의 찬반 여부를 떠나 흡연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둘째 이유인 학생들의 음주 문제 역시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잘못된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옳은 일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사과를 하기는, 그것도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기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있을 듯싶다. 학기 초에 학생들의 규율을 잡기 위해 체벌을 한다는 어느 교사의 얘기처럼,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끊임없이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그런 상황에서 본다면 학생들에게 사과를 하는 일은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로인해 학생들에게 교사가 쉽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욱이 이번 반성문의 발단이 된 교사의 흡연이나 특정 시간 동안 벌어진 학생의 음주 허용은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일시적인 현상에 가까우므로 그 행위를 한 교사들이 진실로 반성하는 것으로 족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계산은 잠깐이었다. 이런 계산보다 먼저 든 생각은 ‘이 학교 선생님들이 참 믿음직스럽다’는 거였다. 무엇보다 이우학교 교사들은 그들이 공개적으로 사과함으로써 우려될 만한 권위의 상실이나 부끄러움 등의 부정적인 영향 대신 학생들에게 삶의 기준과 원칙에 대한 모범을 보여야 하는 교사의 본분을 우선에 두었다.
“본교는 학생여러분의 자율성과 상생의 정신, 능력 함양을 중요한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자율이란 말 그 대로 스스로를 다스린다, 다시 말해 자기 내키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정한 스스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청소년기란 삶의 원칙과 가치관을 가다듬어 가는 시기입니다.
그런 만큼 삶의 순간순간 상황에서 판단 기준과 원칙이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그 기준과 원칙을 분명히 납득시키고 무엇보다 본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곧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자율성 함양의 과정에서 교사가 감당해야 할 몫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죠.”
또한 교사들의 잘못 가운데 한 가지는 새로운 문화를 가꿔보기 위한 실험적 시도로 보였다. 혹자는 학생들에게 음주를 허용한 교사를 비난해야 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겐 그것까지도 믿음이 되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며 그것의 결함이 발견되었을 때는 솔직하게 사과하는 그 태도와 자세가, 내가 이우학교 교사들에게 가진 신뢰의 한 주춧돌이 된 셈이다. 더욱이 단지 몇몇 교사들의 성명도 아니고 ‘이우학교 전체교사회’의 이름으로 내건 점이나, 수업시간에 수업 시작하기 전에 잠깐 말로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일을 공개적으로 복도 게시판에 보름가량을 붙여 놓은 점 등은 그 주춧돌이 튼튼하다는 것을 증명해 줬다.
수많은 교재가 등장하고 다양한 교수법이 등장하지만, 가장 훌륭한 교재는 곧 사람이며, 가장 효과적인 교수법은 그 사람이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곧 내가 가르치려는 그 삶을 내가 살고 있을 때에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으며, 그때는 이미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내 삶을 본받으려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다면 이우학교의 가장 훌륭한 교재는 교사들 자신이었다. (20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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