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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4+39

산다는 것은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

 

필시 이런 경우엔, 왜 노을이샘은 학생을 편애하여 몇몇 학생들과만 저녁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술까지 마셨냐며 항의가 들어올 것임은 물론, 향후 강의 진행에 안티 세력으로 급성장하여 `노사모`를 위협할 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서둘러 해명하여 진화에 나섬이 옳을 듯함.
 

우선 어제 술자리는 노을이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려던 차에 줌마네 골목길 저만치서 수업이 끝난 지 무려 4분이 지났건만 갈 곳을 몰라 배회하는 한 무리의 아줌마가 있어 ``이를 어여삐 여겨`` (주의 : 어여삐는 고어임) ``밥이나 먹고 가자``고 가볍게 던진 말이 발단이 됨.

그런데 그 가볍게 던진 말에 정처를 정하지 못해 서성이던 일단의 아줌마 무리들이 눈에 불이 일더니 단 한마디 외마디 소리로 노을이를 압도해버림.

``그럽시다`` 

결국 이 압도당한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서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미 이전 기수 아줌마들과 서너 차례 술을 마신 적이 있는 순대국집으로 장소를 정하고.

아줌마들은 고상하게 자가용 타고 대로를 질주하고, 노을이는 죽어라고 자전거 폐달을 밟으며 골목길을 누벼 순대국집에서 만남.


이후 밥보다 먼저 나온 술에 모든 참석자가 희색이 만연하여 수다가 이어지게 됨.

수다 과정에서 노을이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함. - 이를테면, 왜 연애 파트너가 자주 바뀌냐, 왜 다른 아줌마들이 리틀 장동건이라고 하냐 등등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유발하는 질문을 수 차례 들음.

따라서 어제 술 모임 건에서 노을이가 잘못한 부분은 일단의 아줌마들을 ``어여삐``여긴 것 밖에 없고 이는 지극히 미미한 행동이니 이를 빌미로 안티노사모를 만드는 아줌마 학생들은 국가보안법 등을 강력히 적용할 것임.



10월 중순, 모처럼 줌마네 강의에 나갔다. 9월말 추석이 끼고 10월초엔 내 강의가 없어서 거의 한 달만이었다. 여느 때처럼 강의를 마치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려다 여차저차해 아줌마들과 술을 마시게 되었다. 홍대전철역 근처에 있는 순대국집으로 장소를 잡았다.


지난 9월 초 첫 강의를 시작한 줌마네 5기. 이번 기수는 모두 17명이다. 그동안 강의했던 기수 가운데 가장 수강인원이 많다. 어느 기수나 그렇듯 줌마네 강의를 듣는 초반기에 아줌마들은 서로 낯설어 한다. 우선 줌마네라는 낯선 곳에 낯선 사람들로 만났으니 그 낯설음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강의를 들을수록 어려워지는 글쓰기에 주눅이 들어 그 낯설음을 쉽게 거둬내지 못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낯선 기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이 기운을 거둬내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 된다. 한 가지는 같은 기수 중에서 분위기 메이커가 등장하는 것이다. 쭈뼛 쭈뼛 하는 가운데서도 그런 분위기보다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만들려는 이들이 한두 명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모임도 갖고 수다도 떨게 된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기수는 서로 친해지기 까지 더디다.


다른 한 가지는 뒤풀이를 갖는 것이다. 강의 시간은 어떤 분위기로 진행되든 강의이기 때문에 같은 기수들끼리 서로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그러니 서로 친해지자면 뒤풀이가 필요하다.


그동안 나는 줌마네에서 뒤풀이를 간간이 가졌다. 그 가운데에서도 첫째 기수하고 가장 많은 뒤풀이를 가진 듯 싶다. 아무래도 그때는 일반 회사에 근무하던 때였으니까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았던 점이 한 몫 했다. 그 당시 뒤풀이에 가면 나는 아줌마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아줌마들이 어떤 글을 쓰면 좋을 지를 얘기해 주곤 했다. 이른바 기획꺼리를 줍는 시간이었다.


이번 줌마네 글쓰기반 기수는 10월 중순까지 뒤풀이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찮게 뒤풀이가 진행된 것이다. 줌마네에 다닌 지 1/3정도 수업을 마치고 났으니 슬슬 의기소침해지기도 할 시간이며, 동기들끼리도 뭔가 그런 얘기를 나누고 싶어질 무렵이었다.  

뒤풀이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은 거의 12시 정도까지 있었다. 순대국집 주인이 영업이 끝났다고 얘기를 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 줌마네 게시판에는 뒤풀이 소감을 적은 글이 많이 올랐다.

 

“뭐 어쨌든 알콜이라는 그 힘으로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고 서로 자기의 경험으로 위로할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답니다. 홍대입구와 제 집이랑 엄청 먼 관계루다 막 절정에 오른 분위기 뒤로 신데렐라 처럼 냅다 걸음이 빨라졌구요. 미리 예상된 자리가 아닌지라 밥도 안 해놓고 온지라 마음은 더 급했는데 열한살 짜리 딸이 밥은 할테니까 힘내서 오라는 말에 먼길 돌아가니 11시 20분! 고사리 손으로 밥 퍼서 엄마 배고프니까 빨리 드세요 라구 하는 딸년 사랑에 난 그 먼길 참 행복했습니다.”

  

“원래 제가 이슬만 먹고 살았었는데^^... 오랫만에 가져보는 시간으로 매우 즐거웠습니다. 더욱이 개인차는 있지만 목적이 같은 분들과의 자리여서 더욱 좋았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제가 느끼는 두려움과 낯설움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


“난 개인적으로 술자리를 좋아한다 그것두 엄청....... 술을 잘 마시느냐 ? 그건 아니다. 술자리의 그 반쯤 풀어진 분위기를 사랑한다. 한잔의 술잔을 앞에놓고 세상이 동전만 해 졌음을 즐거워하는 친구. … 술을 즐기지 않지만 술자리를 사랑하는 나. 안주발은 좀 쎄지만 앞으로 술자리 있음 나 꼭 끼워줘”

줌마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으면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란 그런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다.’

어제 그렇게 이뤄진 술자리는 줌마네 5기 아줌마들에게 이야기를 한 가지씩 만든 듯 싶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줌마네에서 글 쓰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힘도 주게 된다. 그런 생각에 나 역시 댓글을 붙였다. 


“추신 : 모임 끝나고 나면 아줌마들끼리 저녁이라도 드시고, 괜찮다면 술이라고 드시고 그러세요. 강좌의 반은 줌마네 운영진과 선생들이 만들지만, 그 나머지는 동지들인 아줌마 17명이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원래 100만원인 수강료를 반값에 해드린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2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