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경기전에 다녀왔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곳이다. 한옥마을 입구에 있어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드나드는 곳이다. 경기전은 어진이 모셔진 건물을 비롯하여 몇 개의 옛 건물들과 함께 고궁의 맛을 풍긴다. 그 맛이 도심속의 산책로이자 휴식처로 그만이다. 더욱이 폭염이 내리쬐는 토요일 날씨에는 휴식처로 더욱 어울렸다.
이 경기전에 간혹 동네 어르신들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신다. 경기전이 목적지인 어르신들은 자전거를 그늘에 세워두고는 휴식을 취하거나 말벗을 찾아 얘기를 나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탄 어르신들 중 대부분에게 경기전은 거쳐가는 곳이다. 어느 쪽에선가 와서 그 반대편으로 페달을 밟는다.
경기전에 자전거가 오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다. 웬만한 관광지였다면 자전거는 출입금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경기전에서 자전거 출입을 막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 '방심'이 오히려 전주다운 여유로움을 깃들게 했다. 또한 경기전이 일상에 무척 가까이 자리한 느낌까지 보태게 된다. 경기전의 자전거야말로 전주시가 계산하지 않은, 그저 시민들의 생활이 빚어낸 전주의 또다른 모습이다.
경기전을 지나가는 자전거는 나무그늘과 맨 흙길 위를 달리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경기전의 자전거들은 속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느리다. 담장에 쌓인 기와들 한장 한장과 눈을 마주할 수 있을 만한 속도로 오간다.
경기전에 갈 기회가 있는 이들은 꼭 경기전을 오가는 자전거를 만나 5분 정도 명상에 잠길 일이다. 자전거의 지나가는 속도와, 자전거의 바퀴가 밟는 흙길과, 자전거를 둘러싼 거목들과, 자전거가 스치고 가는 담벽들과, 그리고 무심한듯 보이는 자전거 탄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며 명상에 빠져볼 만하다. (20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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