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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자전거의 짝사랑

시월의 마지막 날, 페달 밟다


10월 31일 아침 6시 24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한옥 운조루에 자전거 한 대가 빠져나왔다. 아직 주위는 여명만 있을 뿐, 햇살의 기운을 느껴볼 수는 없다.  안개는 산자락으로 바짝 붙어 섬진강쪽에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운조루를 나온  자전거는 이내 오미리를 빠져나갔다. 오직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지리산 자락만이 침묵으로 배웅할 뿐, 사람도 꽃도 알지 못했다. 

삶은 애당초 계획하지 않는 게 맞다. 지인과 술 한잔을 할 때도 약속을 잡기보다 어느날 불쑥 전화해 만나는게 쉽듯이, 그저 그처럼 훌쩍 이뤄지는 일이 적기 않다.  
시월의 마지막 날 이뤄진 자전거 여행 역시 그랬다. 어느 투어행사에 참여한 30일 혹시나 싶어 자전거를 관광버스에 실었다. 30일 저녁엔  함께 참여한 이들과 구례 토지면에서 술을 마시고 밤 12시쯤 잤다. 

이튿날, 6시에 맞춰놓은 알람보다 몸이 먼저 깼다. 아직 밖은 어두웠다. 구례터미널까지 자전거로 30분을 예상했다. 7시에 남원으로 가는 버스틑 타자면 6시 30분에는 나서야 했다. 두어 차례 망설였다. 무엇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도로를 자전거로 달린다는 게 망설임을 키웠다. 20여분 망설이던 끝에 자전거를 끌로 운조루를 빠져나왔다.    

운조루를 빠져나온 높새는 이내 19번 국도로 붙었다. 100여미터 앞은 보일 정도의 여명이지만, 도로는 위험했다. 다행히 차들이 많지 않았고, 불행히 로드킬당한 채 도로에 널브러진 고양이 한 마리의 몸뚱이를 보았다.
6시 38분. 높새는 구례터미널에 도착했다. 5틸로 남짓한 거리를 달려오는 동안 여섯 대의 차량이 높새의 옆을 스쳤다.  이번에 높새는 무조건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동트기 전에 달리면서 아무런 안전망도 없이 달린 게 미안스러웠다.

7시. 버스는 남원으로 출발했다. 버스의 짐칸이 좁아 높새가 어렵사리 승차했다. 손가락에 약간의 상처가 났지만, 양호했다.
손님은 오직 한 명, 높새의 주인뿐이다. 7시 30분 남원터미널에서 높새와 노을이는 내렸다.  광한루 근청[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8시 12분 남원을 벗어났다.
순창을 거쳐 담양까지, 담양부터는 영산강을 따라 광주까지의 여정이 시작됐다. 도로에 난 이정표에는  광주까지 60킬로미터라고 적혀있다. 

그로부터 7시간이 채 못돼 높새와 노을이는 광주시 금호동 도로가 난전을 기웃거렸다. 오늘의 여행 축하를 위한 먹을 거리를 사기 위해서였다. 무사히, 즐겁게 마친 시월의 마지막날의 자전거 여행은 그렇게 끛났다. 오래 미뤄둔 남원-순창-담양-광주의 여정을 올해가 가기 전에 마쳐 마음도 몸도 으슥해졌다. (201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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