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추모행사장에는
고인의 영정이 없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죽은 뒤엔 당당히
동성애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던 유언… 그러나
자살을 선택하게 한 현실은
그의 죽음보다도 더욱 견고했습니다.
이 강요된 ‘은닉’속에서
단상에 놓인 피지 않은 백합이
스무 해 짧은 생의 날들을 아쉬워했습니다.
다만, 현수막만이 희망을 덧붙였습니다.
“동성애자 억압 없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2003년 4월
한 동성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커밍아웃 후
힘들어 고등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던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남은 동성애자들이
"한 번쯤 자기 손목에 칼 안 대어본 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사회적 차별로부터,
그는 홀연히 이별하였습니다.
그 이별 앞에서
차별과 편견이 적지 않은 사회에
내가 살고 있으며
내가 곧 그 사회라는 것이 새삼 떠오릅니다.
하여
내 침묵은
내 가슴과 영혼이 더욱 크게 열리지 못해
생긴 자발적인 것임을 알겠습니다.
한 동성애자가 세상과 타의적으로 이별했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사회적 타살’의 용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