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달랐다. 기억은 어디에도 흔적이 없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과거도 찾을 길이 없었다. 개발의 기운이 묘하게 스며든 땅. 씁쓸한 만족감이 스멀거리듯 아침 햇살에 드러나는 곳, 그곳에 서 있다는 게 못내 어색했다. 10년 만에 찾은 섭지코지는 그처럼 내 존재를 정의짓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요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성산포를 떠나 섭지코지에 닿았다. 큰 길을 따라 내쳐 달리니 마치 고급 아파트 같은 건물 여러 동이 나타났다. <휘닉스 아일랜드>. 콘도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낮선 이름이다. 좌측 출입구를 지나쳐 직진하니 주차장이다.
주차장 근처에서 보니 저 너머로 확 트인 잔디밭 정원이 펼쳐졌다. 정원에는 사람들 10여 명이 휴식을 즐겼다. 꼬마들은 뛰놀고 어른들은 거닌다. 그 정원과 내가 있는 곳 사이엔 매표소가 있다. ‘아! 이런 곳에도 입장료를 받는구나.’ 매표소 앞을 어슬렁거렸다. 관리하는 직원이 없었다. 아직 9시가 안된 이른 시간이기 때문인지 입장료를 받지 않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잠시, 자전거 높새를 세워두고 들어가야 할 지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높새를 타고 출입구를 지나쳤다. 매표소에서 자전거 대여라는 문구를 보았다. 정원 안에 대여 자전거가 있다면 높새가 달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정원에 난 길을 따라 높새를 타고 돌았다. 정원 곳곳은 '시크릿 가든'이다. 건물들이 비밀의 요새처럼 곳곳에 흩어져 있다. 건물들 사이엔 구릉을 덮은 갈대가 있어 비밀스러움을 더해 주었다. 건물 출입구엔 멤버쉽 회원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다는 경계성 안내 푯말이 서 있다. 앞서 본 아파트 같은 건물은 콘도였고, 갈대밭에 몸을 낮추고 있는 건물들은 별장이었다. 자연에 가까이 머물수록 비싼 휴양지라는 계산법은 이 시크릿 가든에서도 통했다.
다시 길을 따라 오르니 바닷가 끝에 등대가 보였다. 높새를 세워 두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해안가 풍경으로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언덕에 펼쳐진 무밭까지도 풍광으로 잘 어울렸다.
30여분을 서성이다가 다시 높새를 끌고 나왔다. 매표소가 아닌 다른 길을 따라 나왔다. 휘닉스아일랜드 단지를 벗어난 길은 해안가를 따라 이어졌다. 그렇게 한 5분을 채 못 가니 주차장이 나왔다. 그때서야 섭지코지 해안가의 전체 그림이 잡혔다.
섭지코지의 안쪽은 <휘닉스 아일랜드>의 ‘랜드’였다. 일반 관광객들은 해안가를 따라서 난 도로로 섭지코지 해안가를 거닐 수 있었다. 등대를 중심으로 하여 300미터 정도쯤이 산책로였다. 관광객들은 그 길을 따라 섭지코지의 해안을 거닐었다. 해안도로를 만나고 나니 <휘닉스 아일랜드> 해안가 둘레 정도는 일반 관광객에게 양보했다는 걸 알게 된 셈이다.
전체 그림은 잡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10년 전에 왔던 섭지코지가 아니었다. 2000년 2월, 제주인권학술회의에 참여했다가 일행들과 함께 섭지코지에 잠깐 들렀다. 그때 만난 섭지코지는 무척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모래 알갱이들까지 삼킨 바람이 바다로 거세게 몰아치던 그날, 추워서 서둘러 버스로 돌아왔지만 정작 그 바람에서 봄기운을 느꼈다. 그런 색다른 경험은 새봄을 맞이하게 될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섭지코지는 내게 동경의 땅이 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찾을 기회가 좀처럼 없다가 이번에 높새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찾은 이 땅에서 10년 전의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다행히 10년 전 기억의 퍼즐은 섭지코지를 막 빠져나올 무렵에 가닥이 잡혔다. 섭지코지를 벗어나 막 마을로 접어들 무렵 오른쪽에 펼쳐진 해안.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그곳. 거기가 바로 10년 전 제주인권학술회의를 마치고 참가자들과 들렀던 해변이었다. 그 해변을 만나고 보니 이제 어느 정도 기억이 복기되는 듯했다.
그럼에도 이 기억 또한 정확한지는 장담할 수 없다. 10년 전 섭지코지엔 <휘닉스 아일랜드>가 없었다. 그리고 10년 전 내 기억엔 일행들이 바다를 향해 한참을 걸어간 장면이 있다. 모래 바람이 심했는데도 일부는 한참을 걸어 나갔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생겼다. 이제 섭지코지의 기억은 <휘닉스 아일랜드>의 정원을 제외하고는 성
립될 수 없다. 한 편으로는 동경도 있다. 이 좋은 휴양지를 왜 나는 이제 알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만든 동경이다. 그런데 그 동경이 마냥 푸른빛은 아니었다. 이 아름다운 땅을 '랜드'로 만들어버린, 그래서 왠지 평범이들은 법접할 수 없는 듯한 땅이 돼 버린 곳에서 '랜드'를 돌아다니는 동안 엉거주춤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섭지코지에서 맞이한 일요일 아침이 그리 유쾌하지 많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20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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