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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4+39

선물의 나날




1.

이야기는 지난해 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연말 줌마네 4기 자유기고가반 종강파티가 열리던 날이었다. 지난 9월부터 16주간 진행된 강의는 12월 말 막을 내렸다. 마지막 강의가 있던 날 저녁 5시 무렵부터 줌마네 사무실에서 종강파티를 열었다.
그날 나는 5시에 퇴근해 곧장 줌마네 사무실로 갔다. 6시가 채 못 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종강파티가 한껏 무르익어 있던 시간이었다. 뒤늦게 합류해 저녁을 시켜먹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4기 아줌마들이 ‘선생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포장 된 상자와 꽃 한 송이를 건넸다.


선물 포장지가 무척 예뻐서 혹시 어디 쓸데없을까 싶어 조심조심 뜯다가 한 아줌마에게 “포장지는 팍팍 뜯어야 또 선물이 들어온대요”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두 세겹의 포장지를 벗기고 나니 길고 묵직한 게 손에 잡혔다. 깨지지 말라고 감싼 진공 비닐포장지를 뜯고 보니 선물이 제 모습을 보였다. 향 꽂이였다.

돌을 조각해 만든 향꽂이는 왼쪽 끝에 물고기 형상의 조각이 붙었다. 물고기의 입에 향을 꽂으면 향은 사선을 그은 채 고정됐다. 길다란 돌 가운데에는 홈을 패여 그곳으로 재가 떨어지도록 했다.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포장지에는 계룡산 들국화로 만들었다는 향이 한 통 있었다. 통 안에 있는 설명서에는 “각종 한약재를 사용하여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안정되며 잃어버린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고 적혀있다.

향꽂이는 생활필수품은 아니지만, 삶의 품새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일부터 돈을 들여 사지는 않았겠지만, 있으면 그 쓰임새가 매우 깊을 듯싶은 선물이었다. 거창한 유산으로 남지 않더라도 생활의 작은 여유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그래서 차후 그것을 얼마나 자주 사용할지는 알 수 없어도 그런 물건 자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듯해 ‘곁에 두고 바라보는’ 물건 정도로 삼기로 했다. 그런 목적을 가장 잘 이룰 수 있는 곳은 사무실이라 생각했고, 선물을 받은 다음날 사무실 책꽂이 위에 올려놓았다.     


2.

줌마네에서 아줌마들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 이번만은 아니다. 그동안 아줌마들은 한 기수가 종강 할 때마다 나와 또다른 선생에게 선물을 주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덥석덥석 받았다.

1기 때는 명함케이스를 받았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명함케이스는 가방 안에 넣고 다닌다. 물론 그 안에는 내 명함이 수십 장 들어있다. 대개 지갑에 명함을 넣고 다니는데, 혹 지갑에 넣어 둔 명함이 떨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이다. 


2기 때의 선물은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컵을 두 개 받았다. 그때 아줌마들은 빨리 장가가서 와이프랑 함께 사용하라는 덕담(?)을 건넸다. 종강 후 다른 아줌마에게서 중국에서 사왔다는 차를 선물받기도 했다. 찻잔은 지금도 사무실에 있다. 굳이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물을 마실 때 사용하다보니 곁에 가까운 물건이 됐다.


3기 때는 몸을 씻은 후 바를 수 있는 화장품을 받았다. 당시에도 결혼을 해야 이 선물이 진가를 발휘한다는 내용의 덕담(?)을 들었다. 샤워를 하고 몸에 무엇을 바르는 문화에 그리 익숙하지 않는지라 이 선물은 한동안 보관돼 있었다. 그러다 이번 겨울 초입에 꺼내 사용하고 있다.


3.

남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선물을 받는 것은 좋아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이유나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는 남들과 좀 다른 구석이 있는 듯 싶다.

우선 선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선물 그 자체보다는 선물을 준 사람이 선물을 고르는 시간을, 그 시간을 나를 위해 투자했다는 그 ‘사실’에 탄복한다. 간혹 선물을 사겠다고 생각하면 무엇을 살까를 두고 무척이나 고민한다. 그 고민 끝에 물건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구입하러 가는 데까지 또한 한동안 망설이게 된다.

그런 내 태도를 알기 때문에 남들이 선물을 고를 때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은 마음에 우선 감격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포장을 뜯고 본 선물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선물일 때, 저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선물을 골랐을까 싶은 생각을 하면 또 한번 흥미가 돋는다. 


선물을 받는 일이 그처럼 감격과 흥미를 느끼는 일임에도 고마움과 감사를 표시하는데 무척 인색하다. 줌마네 자유기고가반 매 기수마다 선물을 받곤 했지만, 그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이 깊음에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짧게 끝나버리고 만다. 조금만 더 마음을 움직이자면, 사소한 한두 가지 방식으로라도 표현할 수 있을 텐데 그것에는 그리 몸이 따르지 않는다. 하여 선물을 건넨 사람들이 보기엔 무척이나 무뚝뚝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느낄 법하다. 


이처럼 선물이야기를 쓰게 된 것도 그와 같은 내 인색함에 스스로 불만족스러워하며 4기 아줌마들에게 뭔가 감사하다는 말을 게시판에라도 올려야 할 텐데 싶을 무렵이었다. 더욱이 종강파티 날 한 아줌마가 건넨 또 다른 선물에 대해서는 더욱 필요하다 싶었다.
그 아줌마가 준 선물은 그곳에서 개봉하지 못하고 집에서 뜯어보았는데, 포장을 뜯고 보니 피에르가르뎅 볼펜이 들어있었다. - 나는 워낙 이런 물건의 감각에 무뎌 가치를 잘 모르나, 사무실 지기들의 말에 의하면 좋은 것이라고 한다. - 아무튼 선물을 받았음에도 적절히 인사를 못했던지라 언제 게시판에 글을 올려야지 싶은 마음을 키워가고 있던 차 였다.


4.

그러던 1월 중순, 동료 직원이 소포가 왔다며 내게 물건을 건넸다. 무엇일까 싶어 뜯어보니 내용물이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차를 우려먹을 수 있는 투명 유리컵이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바지였다. 이 옷은 처음엔 무엇에 쓰는 옷인가 싶어 한참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정작 흥미로운 것은 소포 안에 들어있던 편지였다.


“지유기고가가 무언지도 모르고 들어와서 나가려는 때에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줌마네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 3기 기획을 하구 횡단보도 앞에서 선생님이 해주신 말, ‘○○○씨가 해 보시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기억하지 못하실 그 말에 오늘의 제가 있었습니다. 잡지글을 쓰고 인터넷에 칼럼두 팔아보고 이제 책을 쓰겠다며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글쓰기에 도움을 주신 분들을 뒤돌아보니 선생님이 맨 앞에 계시더군요.“


지난해 초 3기 아줌마들을 상대로 보충수업을 한답시고 한두 차례 강의를 한 일이 있었다. 그때 강의 막바지에 ‘대통령이 만나야 할 대통령’이란 오마이뉴스 연재 꼭지를 함께 기획했다. 아줌마들 각자가 작성할 기사를 맡고 날짜를 정해 기사를 올리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지던 길이었다. 그때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아줌마와 함께 카페를 나오게 됐다. 그 아줌마는 자신이 맡은 기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많은 듯 했다. 카페에서 기사 한 가지를 쓰기로 했음에도, 자신이 없는 듯하여 망설이고 머뭇거렸다.


그러다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게 돼 잠시 횡단보도 앞에서 자유기고가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는 이번 오마이뉴스 기획에서 맡은 기사를 제대로 써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에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옛 장면의 한 끝을 기억하고 있던 이 아줌마의 편지는 사실 선물보다도 더 큰 느낌이 있었다. 비록 이 편지 내용 곳곳에 ‘과장법’이 쓰여 스스로 고마움에 대해 한껏 인색하게 대한 점이 있긴 하지만, 편지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이 편지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운 표현은 바로 이것이었다.

“1월 16일은 음력크리스마스랍니다.”

편지를 받은 날은 1월 14일이었으니, 날짜까지 맞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고, 크리스마스카드 였다. 


5.

1년 여 전 겨울엔 줌마네의 한 아줌마로부터 목도리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그 목도리는 올 겨울에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목도리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때때로 삶의 힘이 되기도 하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추억으로 삶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사람이란 자가발전해 에너지를 만들며 사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하루하루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에너지를 주고받는 방법 중 한 가지가 선물일 것이다. 선물은 그래서 즐거운 일인 모양이다.
다만 선물을 받을 때 그것이 대가없이 그냥 주는 선물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는 성찰과, 단체로 마련한 선물에서 혹여 한 두 명이라도 분위기에 밀려 참여 했는지를  헤아릴 수 있는 배려만 갖고 있다면 선물예찬론은 널리 유용할 법하다. 비록 남에게 베푼 경험이 적어 소리만 요란한 예찬론일지라도.(20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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