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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4+39

한 사람을 위한 프로젝트

2005년 새해, 첫 달에 만난 지인들2
 

진희형(1월 5일) 

언제부터인가 미리 약속하고 만나는 게 쉽지 않게 되었다. 아니 약속을 하려고 서로 통화를 하다보면 그 날짜가 잡히지 않아 결국 약속도 하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불쑥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는 경우가 오히려 쉽게 만나게 된다.


진희형을 그렇게 만났다. 금요일 저녁 퇴근시간이 지난 무렵에 진희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냥 안부 전화였다. 그런데 몇 마디 묻다가 진희형이 종로에 있다고 해서 만나자고 했다. 진희형은 사업차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그래서 두어 시간 뒤에 연락하기로 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 진희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종로1가 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약속 장소를 잘못 일러줘 5분 정도 헤맨 끝에 진희형을 만났다. 진희형은 거래처 사람들 두 명과 함께 있었다. 

모임은 그리 재미가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이들이 함께 했고, 그렇다고 무슨 공동의 관심을 나눌 처지도 아니었다. 다만, 진희형에게 몇 마디 안부를 묻고, 진희형도 몇 마디 물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니 진희형 역시 그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사업이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마음뿐이다. 10시가 조금 못 돼 진희형의 사업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명동 어디께에 있는 모양이다. 그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함께 일어났다. 나는 명동엔 가지 않았다. 어제 술을 과음해 몸도 피곤했고, 오늘은 진희형이 사업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가자고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버스에 올랐다.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이전에 진희형이 아치울에 살 때 놀러 한번 오라고 했다. 그곳에 마련한 집이 좋을뿐더러 동네도 무척 맘에 든다고 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었고 이제는 진희형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버렸다. 진희형은 몇 번이나 지리산에 함께 가자고 했다. 그래서 틈틈이 산에 갈 일이 있으면 전화를 걸었다.

그 때마다 일정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까지 함께 가지 못했다. 진희형을 처음 만났을 때는 생태학교를 다닐 때였다. 그때는 공동의 얘깃거리가 있었다. 지금보다 좀더 많은 이들이 모였다. 그런데 갈수록 서로의 얘깃거리가 떨어진다. 그것도 아쉽다.

버스에 올라 오는 길에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진희형이 보냈다.

“노을아 미안. 꼭 산에 가고 싶다”

올해 할 일이 한 가지 더 생겼다.

  


은희, 정아, 종진.(1월 7일)

임종진프로젝트. 그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은 홈페이지 제작이다. 일단 프로그램은 은희씨가, 디자인은 정아씨가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전에도 한번 만나 홈페이지의 개략적인 그림을 그렸다. 오늘은 그 계획안을 보고 종진성이 판단해서 결정해야 했다.


모임 장소는 신촌로터리근처에 있는 아크레온 14층에 마련된 커뮤니티 카페 ‘토즈’로 잡았다. 민들레영토와 비슷한 곳인데 곳곳에 크고 작은 방이 있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고, 필요하면 노트북과 영사기도 대여가 되는 곳이다.
저녁 7시를 전후해 네 명이 모두 모였다. 애초 다섯 명이었는데 한 명은 해외 출장중이다.


얘기는 은희씨와 정아씨가 끌고 갔다. 몇 가지 설명을 하고는 종진성이 생각하는 홈페이지의 구상을 들었다.
처음에는 서로 간에 얘기가 어긋났다. 무형의 공간을 구성하는 일이라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꺼내놓을 필요가 있었다. 만난 지 한 시간이 넘어 조금씩 그림이 맞아 들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종진성이 해야 할 일들이 결정됐다.


나는 간간이 끼어들어 몇 마디 말을 던졌다. 홈페이지를 운영 유지하는데 지나치게 손이 많이 가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종진성은 홈피를 만들려고 그만둔 게 아니며, 홈피는 단지 베이스캠프 수준이면 된다. 홈페이지 제작에서 내가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만일 일정이 조금 늦어진다만, 그것만 챙기면 됐다.


내 고민은 내가 할 수 있다면 전체 영역을 그려보았으면 했다. 이를테면 임종진의 사진강좌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했다. 후원회원 모집은 임종진이 거절하는 바람에 잠시 주춤해졌다. 그럼에도 그것을 준비하고 싶었다. 출판을 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기획해보고 싶었다. 무엇이든 차곡차곡 갖춰 놓았다가 언젠가 그것이 필요할 때 곧바로 꺼내 썼으면 싶다.


토즈에서 모임이 끝나고 은희씨가 빠지고 세 명이서 맥주집으로 뒷풀이를 갔다. 근래에 보기드문 건전한 뒤풀이를 즐겼다. 맥주 한 잔씩 마시고 나왔다. 10시가 못된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모임이다. 종진성이 조금만 빠르게 움직여준다면, 올 한 해 동안 몇 가지 기획해 볼 수 있을텐데, 어떨지 모르겠다. (20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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