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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밥상으로 받은 행복


 


지난해 10월 다녀온 행복마을에서 인상적인 것은 밥이었다. 이는 행복마을을 아는 이들에겐 다소 엉뚱할 듯싶다. 행복마을은 낙후된 농어촌 마을을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사업이다. 이를 위해 주택을 한옥으로 개량하고, 마을마다 주민소득을 증대할 수 있는 특화작물을 재배하기도 한다.
따라서 행복마을 방문객들은 으레 한옥체험 활동이나 방문 프로그램을 언급하는 게 보통일 듯싶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으로 밥을 꼽으니 엉뚱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성 싶다. 그럼에도 네 곳의 행복마을을 다니면서 정작 내 마음을 잡은 것은 밥상이었다.


첫 밥상은 담양 무월 마을에서 받았다. 밥상은 점심 무렵에 도착한 일행들에 맞춰 무월달빛문화관 안에 차려졌다. 밥과 반찬은 뷔페식으로 문화관 방안 한켠에 놓였다. 함께 간 일행들은 빈 접시를 들고는 밥을 담고 반찬을 양만큼 올렸다. 깻잎, 묵은 김치, 지진 두부, 죽순무침, 알타리무김치…. 이에 된장국을 들고 와 빈 탁자에 놓고 점심밥을 먹었다.


시골 어른들이 밥을 차려 줄 때 “그냥 묵고 사는 대로 챙겨 내 왔다”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고기 한 점을 내놓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기도 한다. 이날 무월마을에서 받은 밥상도 육고기 한 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몇 가지만 덜어내면 “그냥 묵고 사는 대로 챙겨 내왔다”고 해도 될 법한 그 밥상이 더욱 먹음직스러웠다. 


무엇보다 그 밥상에는 자연이 담겼다. 이날 밥상은 무월 마을 어머니들이 준비했다. 이 분들은 대부분 거실 싱크대가 아니라 부뚜막에서 음식 만들기를 배웠을 연세였다. 그만큼 오래 전 고향 어머니의 손맛이 자연 그대로 담겼다. 반찬 또한 대부분이 직접 농사지은 채소들이었다. 가공된 음식은 거의 섞지 않았다.

그런 자연의 맛은 무월 마을을 떠날 때도 맛보았다. 마을을 둘러보고 돌아가려 할 때쯤 문화관 마루에 내 놓은 찐 고구마와 생김치는 점심 밥상에 버금가는 간식이었다. 점심으로 부른 배였지만, 김이 피어나는 고구마와 시선한 김치의 유혹에 못 이겨 세 개의 고구마를 먹어치웠다.  


행복마을에 다녀 온 지 석 달이 됐지만 여전히 그때 받은 밥상이 떠오르는 데는 감출 수 없는 남도의 맛이 한몫한다. 2년여 전 어느 모임에서 인원을 나눠 전라도와 경상도쪽으로 각각 여행을 떠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원을 받아보니 일에 일곱 명은 전라도 쪽이었다. 선택한 이유는 비슷했다. ‘전라도가 음식 맛이 좋으니까.’ 행복마을의 밥상은 그때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증명해 주었다.  


행복마을에서 받은 밥상엔 남도의 맛을 덜어내도 남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행복마을에 살고 있는 어른들의 솜씨와 더불어 베어든 마음씨다. 행복마을의 두 번째 밥상은 구례군 오미리에 있는 곡선재에서 받았다. 곡선재에서 1박을 하고 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밥상은 한 마디로 거하게 차려졌다. 더덕, 생채, 도토리묵, 콩나물무침 등 10여 가지가 넘는 반찬이 상위에 놓였다. 이 아침상을 위해 곡선재 안주인과 동네 이웃들, 인근 동네에서 새벽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온 친정어머니까지 힘을 보탰다.

이런 수고들 덕분에 아침밥임에도 며칠 굶고 먹는 밥처럼 맛나게 한 그릇을 깨끗히 비웠다. 함께 식사를 하던 일행들은 맛이 깊은 반찬 칭찬까지 아침 식탁에 올렸다.

그런 밥상을 대하면서 행복마을의 가치를 새삼 생각하게 됐다. 행복마을의 한옥마을화는 단지 마을에 한옥이 몇 채인지를 헤아리는 게 목적은 아닐 듯싶다. 체험 프로그램으로 휴양객을 유치해 농가소득이 얼마나 증가했는가로 셈하고 마는 것도 아닐 듯싶다. 그런 수치는 행정적인 실적을 헤아리는 것에 쓰이면 그만이다. 


행복마을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 행복이다. 그 첫째 수혜자는 마을 주민들이다. 한옥에 사는 이유도 주거의 행복을 누리고자 함이요, 체험프로그램 운영도 경제적 행복을 누리고자 함이다. 두 번째 수혜자는 행복마을 방문자다. 행복마을에 방문한 외지인들은 행복을 나눠 갖기 위해 방문한다. 토우도 만들어보고, 국화도 심어보며 행복마을의 행복을 조금씩 얻어가려 한다. 급기야 그 행복에 폭 빠진 이는 마을의 일원으로 정착하려 할 것이고, 그럴 여건이 안되면 휴양지로 행복마을을 다시 찾게 된다. 


행복마을에서 받은 밥상 또한 행복마을이 나눠줄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이었다. 이 행복한 시골 어른들의 손맛과 정성을 느낄 수 있고, 대세가 된 ‘웰빙’ 식단을 만나는 즐거움이 곁들였다.

석 달 전 행복마을에서 받은 밥상은 단체 방문에 맞춰 차려진 특별한 밥상이었다. 일반 방문객들이 가서는 먹을 수 없는 밥이다. 훗날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행복마을 방문프로그램을 짠다면 밥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포함했으면 좋겠다. 도시인들에겐 “그냥 묵고 사는 대로 챙겨 내왔다”고 해도 전혀 아쉽지 않을 밥상이니까.  ‘소박한 밥상’이 행복마을에서 찾은 또다른 행복이니까. (2011 0106) 

*  이 글은 행복마을 관련한 소식지에도 게재되었으며, 2011년 첫 번째 자원봉사용 기고다.  

<사진설명>
위 사진은 곡선재에서 받은 아침밥상이고, 아래 사진은 무월마을에서 받은 점심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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