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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1억원은 돈이 아니다

전셋집 구하기 에피소드1

1억원은 돈이 아니었다. 1월 16일 전세를 구하려고 다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든 생각이었다. 1월 20일을 전후해 근무지가 서울로 변경될 예정이라 살 집이 필요했다. 더욱이 현재 살고 있는 광주집으로 온다는 이가 1월 31일에 입주하겠다고 하여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주말을 이용해 전셋집을 구하려고 서울로 갔다.  

위치는 홍대전철역 인근, 즉 서교동, 성산동, 연남동, 합정동으로 잡았다. 사무실에서 멀지 않고, 예전에 살아 봤던 지역을 우선 정했다. 혹 이 지역에서 집을 구하지 못하면 3호선 라인에서 홍제역, 녹번역 인근을 둘러볼 작정이었다. 두 지역 모두 한 시간 이내에서 자전거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이기도 했다.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연남동 인근을 걸었다. 대부분 부동산중개업소가 문이 닫혔다. 일요일에 쉰다는 얘기가 있던데 날을 잘못 골랐나 싶었다. 다행히 연남동에 있는 중개업소 한 군데가 문을 열었다. 중개업소 직원은 일요일엔 오후 2시가 영업개시인데, 오전에 거래가 있어 일찍 문을 열었다고 했다.  

1억원 내외에서 전셋집을 구한다고 했더니 "요즘 전세가 거의 없다"는 말부터 돌아왔다. 다행히 한 곳이 있다고 하여 둘러보았다. 연남동에 있는 다가구 주택 2층, 방은 세 개이고 거실은 크지 않다. 오래된 건물이고 창문 샷시가 예전거라 외풍이 심할 듯 했다. 전셋값은 1억 3천만원. 살기에 좁지는 않는데,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그로부터 두어 시간을 홍대 전철역 인근에서 배회했다. 아직 문을 연 중개업소가 없어 기다려야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어슬렁거렸다. 두 번째 부동산중개업소 역시 전세 물건이 없단다. 볼만한 곳이라곤 7천만원에 나온 원룸이 있다 하여 헛걸음하는 셈치고 한번 가보자 했다. 중개업소 사장은 거의 속보에 능가하는 발걸음이었다. 허겁지겁 뒤따라가 둘러 본 원룸은... '급좌절'이다.  너무 썰렁했다. 세탁기와 냉장고가 옵션으로 있는데 내가 가진 세탁기와 냉장고를 둘 곳고 없다. 
세 번째 전셋집을 찾기 위해 서교동 방향으로 돌렸다. 중개업소에서 1억원인 집을 소개받았다. 단독주택 2층. 방은 세 개인데  오래된 건물이라 구조가 좁고, 전체적으로 허름했다. 더욱이 공항철도가 지나는 바로 옆이다. 남향으로 미닫이 통창문이 있어 밝았지만, 그만큼 추워보였다.

네 번째 중개업소에서 소개받아 간 곳 역시 1억원이었다.  원룸이 분명한데 그 가운데를 벽을 만들어 방이 두 개가 된 '투룸'이다. 주변은 막혀 있고 냉장고와  세탁기를 둘 곳이 마땅치 않다. 홍익대 인근이니 비싼 모양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때까지 찾아간 네 군데의 부동산엔 1억원 정도에서 볼 수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딱 한 곳을 보고나면 더 이상 소개해 줄 집이 없었다.   

발걸음을 돌려 이번엔 성산동쪽으로 갔다. 다섯 번째 중개업소에선 물건을 한번 보자고 하자, 사장이 망설였다. 사장은 잘 나가지 않는 물건인데 이 추운 날 허탕치기 싫다는 태도였다. 16일 서울의 기온은 영하 17도라고 했다. 마음은 이해했지만, 가게 열어두고 물건팔지 싫다고 손님 안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약간 긁혔다.
찬 바람이 거리를 맴도니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성산동쪽으로 걷다 들른 한 부동산중개업소는 전세가 없으니, 물건이 나오면 연락한다고  내 전화번호만 받아 적었다. 

일곱 번째 방문한 중개업소에서는 1억원인 집을 한 곳 소개해 주었다. 붉은 벽돌집 2층. 거실은 거의 없고 방이 세 개다. 그나마 모양은 그동안 본 집 중에 제일 나았다. 다른 곳이 없다면 '여기라도' 계약하겠다 싶지만,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오후 5시. 이제 합정동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곳은 부동산중개업소가 문을 열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쉬는 곳도 있는 모양이었다. 더 이상 돌아다닐 힘이 나지 않았다. 내일까지 둘러보기로 하고 더 이상 집 구하는 일을 포기했다.

17일 오전 11시 무렵부터 다시 집을 보러 다녔다. 어제 마지막으로 들른 중개업소에서 다른 집을 보자며 연락이 온 터였다. 일단 그곳으로 갔다.  공인중개사는 인근 부동산업소에 연락하여 내가 찾는 집을 수소문한 모양이었다. 어제보다 물건이 많았다. 나 역시 어제 쓴 맛을 본 터라 전셋값을 조금 올렸다.

중개업소엔 어제 못 본 직원 한 분이 있었다. 그가 운전하는 자가용으로 움직였다. 첫 번째 방문한 집은 다세대 4층. 큰 거실과 큰 방이 있고 방도 3개라 좋았다. 그런데 너무 넓었다. 통상 2세대가 살 공간에 한 집이 살았다. 세탁기 놓을 곳도 마땅치 않다. 집의 한 쪽은 샷시라 난방이 문제일 듯 했다. 크기로만 보면 1억 5천만원을 넘을 듯한데 1억3천만원이었다. 

두번 째 본 집은 합정역에서 5분거리였다. 붉은 벽돌집 3층인데, 작은 방이 두 개다. 이 정도면 좋겠다 싶은데, 거실은 거의 없고, 거의 모양만 베란다인 쪽에는 외풍이 심하다.  그런데도 1억3천만원이다. 가격과 집을 비교해보자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정말 1억원이 이 정도 밖에 안되나 싶었다. 씁쓸한 맛이 가슴을 쓸었다.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와 다른 집을 보러갔다. 이번엔 성미산 뒤쪽에 있는 빌라 2층이다. 방 세 개에 거실도 있다. 앞쪽에 창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빌라의 위치다. 앞쪽엔 전봇대에 잔뜩 전선들이 펼쳐졌다. 옆쪽으로도 별 여유 공간이 없다. 산자락인데 산 근처라는 맛이라곤 하나도 없다.

네번째 본 집은 연남동에 있는 빌라 3층이다. 들어선 순간 첫 인상이 마음에 든다. 남쪽으로 난 두 개의 방엔 햇살이 가득하다. 창문 밖은 이웃집 정원이라 시야도 트였다. 거실은 작지만 방문을 떼어내면 거실 대용으로도 나쁘지 않다. 북쪽에는 작은 방이 한 개 더 있다. 첫 인상은 좋았지만,  역시 마음이 썩 가진 않았다. 겨울엔 햇살이 잘들어 좋지만 여름엔 햇살에 대책이 없을 듯 싶다. 창문도 이중창이 아닌 옛 샷시 창문이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후보로 묶어두었다. 가격'도' 1억원이다. 6년 전 인근 창천동에 살았을 때 5~6천만원 정도면 전세로 살 수 있는 정도였지만, 이틀간 전셋집을 보러다니면서 충분히 학습이 되었다. 한두 집 정도가 비쌌다면 뭔가 특이하다고 했겠지만, 지금까지 본 아홉 곳의 집들은 모두 그러했다. 더욱이 이사일까지 보름이 남지 않은지라 더 이상 발품 팔기도 어려웠다. 저녁엔 다시 광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부동산중개업소로 돌아왔다. 이제 중개업소가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내가 집을 보러 간 동안 어제 만났던 중개사는 계속 다른 집들을 물색했다. 대신 사장은 나를 태우고 집을 보러 다녔다. 덕분에 한두 군데만 보고 3호선 라인으로 넘어가려던 계획은 계속 미뤄졌다.

이번엔 망원동쪽으로 향했다. 중개사는 신축빌라들이 너무 가격을 높게 불러 소개해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보고 싶다면 소개한다며 한 곳을 추천했다. 
이제 한두 군데만 보고 없으면 그냥 볕 잘드는 연남동 빌라를 계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전엔 그보다 허름한 집에서도 살았고, 또 1억원의 현실이 그러하다면 이제 내가 포기할 차례였다.

17일 다섯 번째로 간 곳은 2년 전에 지은 신축빌라 3층이었다. 분양면적이 14평 정도니 전용면적은 조금 적었다. 집 구조는 간단했다. 전체 일자형 구조인데 문을 열면 거실이고, 거실 양 옆으로 큰 방과 작은 방이 있다. 큰 방은 일반적인 방들보다 무척 컸다. 전체적으로 창문이 적고, 크기도 작아 다소 어둡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집을 보는 순간,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집을 보고 돌아오며 중개업소 사장에게 저당권 설정 등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중개업소에 들어와 확인해보니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대신 집 주인은 전세금을 받으면 그 돈으로 대출을 갚겠다고 부동산에 얘기했단다. 근저당 없애는 조건과, 그 문제를 부동산이 해결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했다. 1억3천만원이다. (
201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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