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구하기 에피소드2
1.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집 구하기를 참 오래 전에 했다는 걸 깨달았다. 가장 최근에 전셋집을 구한 게 2001년 8월 경이었다. 당시 창천동에 5천만원인 전셋집을 구했다. 방 두개에 작은 거실이 있었다. 그 집에서 재계약을 하고 5백만원을 인상하며 5년을 살았다. 이후엔 목동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광주에서도 관사를 사용했다. 그렇다보니 거의 10년 만에 전셋집을 구하게 되었다.
언제 전셋집을 구했는지 떠올리게 된 것은 비싼 전셋값 때문이었다. 혹시 내가 오래 전에 집을 구하러 다녔기 때문에 현실적인 감이 떨어졌나 싶었다. 그러나 비싼 전셋값은 세월의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한 부동산중개업소 중개사는 "최근에 30% 가까이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 근처에 있는 빌라는 옛날 건물이고 방이 세개인데, 1억3천만원에 내놓았어요. 그래서 주인에게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요즘 전세 없잖아' 하더라구요. 너무 많이 올랐고 물건이 없으니 내 놓은 물건마다 너무 비싸다 싶게 내놓죠."
2.
어느중개업소에서는 막 이사를 오가며 잔금 을 정리하는 세입자들을 보았다. 나갈 집에 들어올 세입자에게 전셋값을 받아, 이사갈 집 주인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게 보통의 거래법이다, 그런데 이 거래가 끝났어도 남은 자잘한 계산들이 있다. 다름 아닌 정화조비용, 전기료, 수도세, 관리비 등이다. 이런 지용을 잘 계산하지 않으면 거래는 끝나지 않는다. 또한 이처럼 '자잘한' 일들에서 세입자들끼리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자리를 오 분여 동안 지켜보면서 나도 다시 그런 세입자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입자는 그런 일들로도 괴롭다. 나갈 때 가스계량기 숫자를 확인해야 하고, 손에 수천만원의 전세금이 들려있음에도 1~2만원이 계산이 안돼 자리를 뜰 수 없다. 그게 세입자다.
3.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마음이 몹시 씁쓸했다. 돈을 모았는데도 마음에 드는 전셋집 한 곳 찾지 못하는 현실이 그날의 날씨처럼 가슴을 저몄다. 이게 뭐지? 싶은 생각에, 차라리 다른 방법을 택해 아예 집을 사버려? 하는 생각에, 집을 구하러 다니던 첫날 저녁엔 복잡한 계산들이 생각을 헤집었다.
그 많은 돈을 주고 전셋집을 구하려는 내 행동이 맞는가 싶기도 했다. 단칸방을 구하고 그에 맞게 생활하는 게 '누군가'에게 덜 미안하지 읺나 싶기도 했다. 나보다 함께 살 가족이 더 많은 그 '누군가', 나보다 세상을 오래 살아온 그 '누군가', 나보다 다른 것을 덜 가진 그 '누군가' 들에게... . 이런 생각들을 조금 더 버려 두었다면 밤새 정신적 공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본 집들, 이것저것 이유를 대며 계약하지 않았던 집들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거기엔 서너 명의 식구들이 한 가족을 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크릿가든>의 김주원이 주창한 '사회지도층'의 욕망에 갇혔다. 한 달여 전에 불현듯 찾아왔던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내 욕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욕망을 포기하지 않아, 그 욕망이 현실에서 얼마나 높은 벽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계약한 전셋집은 비록 1억원을 넘었지만, 그 욕망이 충족된 것은 아니다. 또한 전셋집으로는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내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방법은 한 가지다. 내가 집을 짓는 것. 아니면 웬만한 집을 구입해 리모델링 해야 한다. 그건 도시에서는 이룩하기 어려운 일이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지만, 그것을 달래기 위해 앞으로 2년 동안 매일 최저 14,250원-전셋값을 은행 적금에 가입했을 경우 받을 현재 이율 대략 적용-을 숙박비로 지급하고 살게 되었다. 그게 이번 전셋집 구하기를 통해 발현된 집에 대한 내 욕망을 다독이는 비용이다. (2010 0119)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집 구하기를 참 오래 전에 했다는 걸 깨달았다. 가장 최근에 전셋집을 구한 게 2001년 8월 경이었다. 당시 창천동에 5천만원인 전셋집을 구했다. 방 두개에 작은 거실이 있었다. 그 집에서 재계약을 하고 5백만원을 인상하며 5년을 살았다. 이후엔 목동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광주에서도 관사를 사용했다. 그렇다보니 거의 10년 만에 전셋집을 구하게 되었다.
언제 전셋집을 구했는지 떠올리게 된 것은 비싼 전셋값 때문이었다. 혹시 내가 오래 전에 집을 구하러 다녔기 때문에 현실적인 감이 떨어졌나 싶었다. 그러나 비싼 전셋값은 세월의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한 부동산중개업소 중개사는 "최근에 30% 가까이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 근처에 있는 빌라는 옛날 건물이고 방이 세개인데, 1억3천만원에 내놓았어요. 그래서 주인에게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요즘 전세 없잖아' 하더라구요. 너무 많이 올랐고 물건이 없으니 내 놓은 물건마다 너무 비싸다 싶게 내놓죠."
2.
어느중개업소에서는 막 이사를 오가며 잔금 을 정리하는 세입자들을 보았다. 나갈 집에 들어올 세입자에게 전셋값을 받아, 이사갈 집 주인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게 보통의 거래법이다, 그런데 이 거래가 끝났어도 남은 자잘한 계산들이 있다. 다름 아닌 정화조비용, 전기료, 수도세, 관리비 등이다. 이런 지용을 잘 계산하지 않으면 거래는 끝나지 않는다. 또한 이처럼 '자잘한' 일들에서 세입자들끼리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자리를 오 분여 동안 지켜보면서 나도 다시 그런 세입자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입자는 그런 일들로도 괴롭다. 나갈 때 가스계량기 숫자를 확인해야 하고, 손에 수천만원의 전세금이 들려있음에도 1~2만원이 계산이 안돼 자리를 뜰 수 없다. 그게 세입자다.
3.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마음이 몹시 씁쓸했다. 돈을 모았는데도 마음에 드는 전셋집 한 곳 찾지 못하는 현실이 그날의 날씨처럼 가슴을 저몄다. 이게 뭐지? 싶은 생각에, 차라리 다른 방법을 택해 아예 집을 사버려? 하는 생각에, 집을 구하러 다니던 첫날 저녁엔 복잡한 계산들이 생각을 헤집었다.
그 많은 돈을 주고 전셋집을 구하려는 내 행동이 맞는가 싶기도 했다. 단칸방을 구하고 그에 맞게 생활하는 게 '누군가'에게 덜 미안하지 읺나 싶기도 했다. 나보다 함께 살 가족이 더 많은 그 '누군가', 나보다 세상을 오래 살아온 그 '누군가', 나보다 다른 것을 덜 가진 그 '누군가' 들에게... . 이런 생각들을 조금 더 버려 두었다면 밤새 정신적 공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본 집들, 이것저것 이유를 대며 계약하지 않았던 집들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거기엔 서너 명의 식구들이 한 가족을 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크릿가든>의 김주원이 주창한 '사회지도층'의 욕망에 갇혔다. 한 달여 전에 불현듯 찾아왔던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내 욕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욕망을 포기하지 않아, 그 욕망이 현실에서 얼마나 높은 벽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계약한 전셋집은 비록 1억원을 넘었지만, 그 욕망이 충족된 것은 아니다. 또한 전셋집으로는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내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방법은 한 가지다. 내가 집을 짓는 것. 아니면 웬만한 집을 구입해 리모델링 해야 한다. 그건 도시에서는 이룩하기 어려운 일이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지만, 그것을 달래기 위해 앞으로 2년 동안 매일 최저 14,250원-전셋값을 은행 적금에 가입했을 경우 받을 현재 이율 대략 적용-을 숙박비로 지급하고 살게 되었다. 그게 이번 전셋집 구하기를 통해 발현된 집에 대한 내 욕망을 다독이는 비용이다. (2010 0119)
<사진설명>
전세든 월세든 집을 구하러 다니다보면, 그 넓은 땅에 마땅히 내 쉴 곳이 없다는 게 절망적일 때가 있다. 사진은 광주광역시 시내의 모습이다.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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