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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백두산1-산, 백두를 만나다

 


2006년 7월 16일 일요일, 날이 밝았다. 백두산 트레킹에 나서는 날이다. 이번 여행은 명색이 ‘백두산 트레킹’이니 오늘이야말로 그 정점이라 할 만하다. 길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는 날. 그러나 아침은 그리 깔끔하지 못했다.


어제 저녁 가이드가 안내한 대로 아침 5시 30분에 모든 짐을 싸고는 숙소를 비웠다. 가이드는 오늘 갈 백두산 트레킹은 ‘공식적’인 관광코스는 아니라고 했다. 중국 공안이 감시하기 때문에 이를 무사히 통과하지 못하면 트레킹은 못한다고 했다. 따라서 트레킹이 아니라 천지 관광을 가는 것처럼 행색을 갖춰야 했다.  우선 산악용 스틱은 모두 접어서 배낭에 넣고, 점심용 도시락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숙소 안에서 몰래 배낭에 넣었다.


가이드는 자신이 책임지고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일도 되게 하는 법이 있단다. 아마도 그동안 이곳을 자주 안내하면서 쌓은 인맥이 있거나 웃돈을 조금 주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관행이 있는 듯 했다.


오전 6시. 일행은 식사까지 모두 마쳤다. 등산용 배낭에는 각자 도시락과 물 등을 챙겨 넣었다. 그 밖의 짐은 여행용 가방에 넣어 관광버스에 실었다. 일행이 예정대로 트레킹을 할 경우, 관광버스는 이도백하 쪽을 돌아서 백두산의 북파쪽 숙소에 가 있을 것이다.


트레킹 준비를 모두 끝냈지만, 출발은 좀 더뎠다. 오늘 하루는 다른 등산 일행들도 우리 일행과 함께 움직일 예정이다. 삼삼오오로 몰려 등산을 기다리는 일행들은 족히 1백여 명은 돼 보였다.

6시 40분, 드디어 산문에서 천지 밑 주차장까지 가는 버스에 올랐다. 어제 천지를 오른 적이 있기 때문에 40여분이 걸리는 길에는 그리 호감이 없었다. 그럼에도 역시 나무들이 일제히 사라져버리고 고원을 토해놓은 툰드라 지역에서는 눈이 자연스레 창밖으로 향했다.


드디어 천지 아래 주차장에 내렸다. 순간 아! 했다. 어제까지 청명했던 천지쪽 하늘에는 구름이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아침인데도 천지로 가는 계단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계단을 따라 구름 역시 빠르게 올랐다. 저 정도라면 어제 보았던 투명한 천지를 볼 수 없을 듯 했다. 누군가 어제 천지를 보기 잘했다는 얘기를 했다.


트레킹의 첫 걸음은 천지를 오르는 계단길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계단길을 중간쯤 갔을 때 앞서 걷던 가이드는 왼쪽 고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때부터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됐다. 오르막을 오를수록 천지로 가는 계단길과의 간격도 멀어졌다. 고원에 난 길이 좁아 일행은 한 줄로 늘어섰다. 다른 일행들까지 앞뒤로 겹쳐 1백여 명이 소로를 따라 고원에 올라섰다. 나는 앞줄에 자리잡았다. 일행이 많은 경우 이소와 같은 초행자는 앞쪽에 서는 게 낳았고, 나 역시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다.



소로를 따라 접어든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가파른 언덕길이 나타났다. 언덕길의 끝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높은 언덕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언덕을 곧장 올랐고, 구름은 사람들의 발길을 엇가르며 언덕을 비스듬히 달렸다. 그렇게 끝도 없이 구름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었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언덕길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그러나 앞뒤로 일행이 있으니 다른 선택은 없었다. 묵묵히 걷는 것 밖에. 그럼에도 몸은 ‘정직’했다. 그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곧장 알려주었다. 양 다리의 종아리 근육이 단단하게 뭉치며 아파 왔다. 주먹으로 근육을 두드리며 조금씩 풀었다.
어느 산이든 등산의 초반 30분은 고달프다. 숨이 차오르고 그동안 쓰지 않은 몸의 곳곳이 이상 증상을 보이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 비하면 숨이 가픈 것은 버틸 만하니 다행이었다. 종아리 근육 역시 짬짬이 주물려주니 조금씩 나아졌다. 놀라서 경기를 일으킨 아이가 차츰 제정신을 차리듯이 몸의 근육들이 등산에 맞게 풀리는 듯했다. 


가파른 언덕길의 정상 무렵에서 선두 일행이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뒤쳐져 있던 일행들과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였다. 언덕을 오르고 나니 그곳이 백두산 천지를 감싸고 있는 봉우리중의 하나인 2,459미터의 마천우라고 했다. 마천우에서 이어지는 길은 이제 완만한 평지길이었다. 마치 들판 길을 걷듯 길가에는 자잘한 돌들이 놓여있고, 그만큼 발걸음도 편했다.

그러나 앞으로 뻗은 10여 미터의 길을 제외하고는 양 옆은 여전히 구름장막이었다. 다시 얼마를 걷다 야생화를 만났다. 야생화는 물가를 머금은 채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다. 사람들이 숨을 턱 가까이 채우며 올라온 것을 위로한다는 듯이 상큼한 자태였다. 그때까지 가이드는 일행의 발길을 재촉했다. 천지로 계속 몰려 올라오는 구름이, 언제라도 비를 뿌릴지 몰라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일행은 다시 발길을 옮겼다. 길은 평지와 내리막 오르막을 반복했다. 그 무렵 누군가 “‘야!”하며 소리쳤다. 그동안 구름에 가려있던 길 왼쪽에서 빠르게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고원과 함께 우뚝 솟은 산들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그 장면을 ’재생‘하듯이 보여주었다. 마치 귀한 물건을 손으로 가린 후 순간 보여주고 다시 감춰버리는 것처럼, 순간에 웅장한 산자락이 나타났고 찰나에 구름이 가렸다.


그러나 그것은 이번 트레킹의 후한 날씨가 보여준 서곡이었다. 가파른 내리막길 앞에 섰을 때 구름이 또 한번 곡예를 부렸다. 이번에는 오른쪽, 천지쪽이었다. 구름이 살짝 소매를 걷어 올린 그 틈으로 푸른 천지물이 드러났다. 그 옆으로는 천지를 두르고 깎아지른 봉우리들도 속살을 드러냈다. 어제 5호경계비 근처에서 본 천지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한껏 숨기고 있다고 슬며시 보여준 구름의 곡예가 더해져 누구라도 감탄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부터 날씨는 좋아졌다. 구름은 점점 천지 물가에서 멀어져갔다. 백두산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끼었지만, 천지를 느끼고 고원을 조망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천지 주변을 감싸는 구름이 걷혀지자, 그동안 걷던 트레킹 코스가 만만치 않은 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때로는 천지 쪽으로 낭떠러지를 불과 1~2미터 두고 걷기도 했고, 발을 헛디디면 고원 쪽으로 하염없이 굴러 떨어질 길을 내려가기도 했다. 심지어 어느 오르막은 발목 아래로 천지물을 두고 족히 60도는 돼 보이는 길이기도 했다. 이런 길에서는 구름이 아래를 가리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 느껴졌다. 그럼에도 일행은 선두와 후미가 큰 간격

없이 길을 줄여갔다.


마침내 트레킹 코스의 3분의 1쯤 되는 지점인 2,662미터인 청석봉을 넘었다.

청석봉을 내려와 2,691미터인 백운봉을 앞두고는 완만한 고원이 나타났다. 천지 주변은 대개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로 고원이 펼쳐졌다. 봉우리들은 대개 바위산이었다. 그러나 천지 쪽으로는 반쪽이 잘려나간 모양새였다. 봉우리 주변 곳곳에는 자잘한 바위들이 금방이라고 굴러 내릴 듯이 쌓여 있기도 했다. 그처럼  천지 주변의 봉우리들은 바위이거나 잔돌이거나 초록의 풀밭이거나 했다. 그 세 가지 모양이 제각각 어울려 나름의 형상을 꾸민 것이다.


그러나 천지를 둘러싼 지형에서 흥미로운 곳은 고원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드넓은 잔디밭이 서서히 고개를 쳐들고 오르다가 갑자기 뚝 끊긴 채 낭떠러지를 만들고는 그 낭떠러지 아래 호수를 둔 모양새다. 그 낭떠러지 끝에는 어김없이 야생화들이 천지를 바라보듯 고개를 빼고 자랐다. 야생화들은 바람이 제법 거센 데도 여린 꽃잎들을 고이 간직했다.


다시 이어진 트레킹. 이번에는 앞에 둔 백운봉을 왼쪽으로 돌았다. 백운봉은 곧장 갈수 있는 길을 허용하지 않는 깎아지른 바위산이었다.

왼쪽으로 비스듬히 U자 모양으로 도는 길은 천지를 하산하듯이 천지와 멀어지며 길을 냈다. 그동안 옆으로 흘깃하며 보던 드넓은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평원들 곳곳에는 노란 야생화들이 무리를 이뤘다. 이따금 구름사이로 비친 햇살이 야생화에 닿으면 평원은 노란 물감을 듬뿍 바른 수채화가 됐다. 10여분 남짓 평원의 꽃밭에 빨려들듯 발걸음이 이어졌다.

고원은 손가락만 하게 자란 식물들로 마치 양탄자처럼 푹신했다. 이제 두어 시간 남짓 고개를 오르내렸으니 몸도 어지간히 풀렸다. 다시 펼쳐진 오르막길을 앞두고 일행은 트레킹에 나선지 처음으로 천지 자락에서 흘러나온 물길을 만났다. 골짜기를 졸졸 흐르는 물은 저 위쪽 어디쯤에서 샘솟는 듯 싶었다. 이 물줄기는 백두산 자락을 타고 흘러 첫날 우리 일행이 묵었던 송강하로 흘러간다.  


오르막길 역시 풀밭이었다. 30여분은 족히 올라야 할 듯한 길인데, 길섶에는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사람들이 야생화를 응원하기 위해 찾은 것인지, 야생화가 사람들을 응원하려고 피어난 것인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사람이나 야생화나 모두 생명이고 보면, 서로 격려하고 격려 받을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한 나무들이 한 순간 모두 사라져버리고 고원이 펼쳐진 것도 놀라운 일이거늘, 그 고원에서도 한참을 올라온 이곳에 제 세상을 이뤄놓은 이 야생화들의 생명욕. 그 앞에서 단지 “예쁘다”는 말 한마디로 덮어두지 못하는 감흥은 단지 한 사람만으로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쯤에서 정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인지도 다시 생각해볼 법 했다. 모든 생명들이 제 힘껏 세상을 살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지금 이 순간, 이 2천5백미터가 넘는 고원에서 꽃을 피우고 무리를 지은 이 야생화를 보고 누가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꽃이 사람보다 아름답다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꽃이 온 힘을  다 해 필 때 아름답듯이, 사람도 제 힘껏 살 때 아름다운 것이다. 그뿐이다. 그 외 무엇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그것으로 족하다. 


오르막이 한번 고개를 숙인 지점에 도착했다. 다시 나타난 드넓은 평원…. 너른 마당을 끝없이 필치다가 그것이 지루할 쯤 굴곡을 한 줄기 내고 다시 펼쳐진 마당, 촘촘히 수놓은 노란 야생화들. 이쯤에서 천지를 담아 두었던 마음엔 확연히 평원이 들어앉게 되었다.


백두산에 오기까지 내 인식 속에서 백두산은 곧 천지였다.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백두산 여행은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은 예기치 못한 것에 흔들렸다. 어제 처음 천지를 오를 때, 버스길을 가운데 두고 불쑥 나타난 고원이었다. 잔디밭처럼 때로는 꽃밭처럼, 둔덕처럼 혹은 구릉처럼 늘어진 고원은 충분히 내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마치 첫눈에 반한 여인을 만난 듯. 그럼에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아직 천지를 보기 전이었다. 백두산에 오기 전부터 마음속으로 동경했던 그 천지를 보기 전이었다.

그 고원을 만난 후 30여분이 지나 천지를 보았다. 천지는 충분히 감탄사를 내 놓기에 아쉬움이 없었지만, 눈길이 고원 쪽으로 돌아가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어느새 천지를 등지고 발아래 펼쳐진 고원을 가슴에 품으며 첫눈에 한 그 여인에게 내 관심을 표현하려 했다. 그리고 천지를 내려가면서 짧은 순간이나마 그 고원을 밟으며 지날 때는 꿈길을 걷는 듯 했다.

 

그런데 트레킹 코스의 절반 가까이 이르자, 그 고원이 또 나타났다. 트레킹을 하는 동안 몇 차례 구름 속에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잠시 고원 길을 밟고 걷기도 했지만, 고지에서 바라본 이 고원은 유혹이 좀더 강렬했다. 어제 오르는 길에 만났던 고원이 마실을 가는 여인을 우연히 만난 것이라면,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고원은 나를 유혹하기 위해 화장을 곱게 하고 나들이 나온 행색이었다.


배낭을 풀고 숨고르기를 하던 일행이 다시 가파른 오르막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행에 묻혀 다시 발길을 옮기면서도 틈틈이 고원을 돌아보았다. 고지로 오를수록 고원은 좀더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광활, 그 말이 주인을 제대로 만난 듯했다. 특히 넓다는 의미를 둔 광(廣)에 붙은, ‘트이다’ ‘통하다’ 등의 뜻을 간직한 활(闊)은 고원을 보고 있으면 달리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또한 ‘광’이 고원의 모습을 나타냈다면, ‘활’은 고원을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담는 듯해 그 풀이가 더욱 깊이 남았다.     


고원은 밭 끝에 놓인 숲들을 멀리 내쳐, 고원 끝에 숲이 있다는 것은 가늠할 수 있으나 그 숲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천지 주변의 능선을 밟고 오는 내내 든 아쉬움이기도 했다.  능선을 밟으며 백두산 저 아래의 자락을 가늠하고 싶었으나 때로는 구름에 막혔고, 구름이 걷혔을 때에는 워낙 드넓어 시야에 들지 않는 탓에 볼수 없었다. 


이런 아쉬움은 버스를 타고 백두산 자락으로 몸을 붙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백두산 자락에 발을 붙였을 때에는 천지를 품은 백두산 꼭대기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크게 자란 나무들에 막혀, 또한 나중에야 짐작한 것이지만 너무나 드넓어 멀리 있는 탓에 꼭대기 능선들을 조망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백두산에 발은 들었으되 백두산을 눈에 담을 수 없었던 것이다.     

   

10여분을 올라 한번 쉬고 또다시 10여분을 오른 후 백운봉 뒤켠 능선에 이르렀다. 2691미터의 봉우리이니, 서 있는 곳이 족히 2500미터는 넘을 듯 싶다. 그 능선 비탈진 곳에 회색빛이 도는 무엇인가가 한 무더기 쌓여 있다. 눈이었다. 7월 중순임에도 녹지 않은 눈이라면 만년설이라고 불러도 과장은 아닐 듯 싶었다. 눈 무더기 앞에서 잠시 머물다 발길을 옮기자 다시 천지가 마중 나왔다.

천지는 그렇게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익숙할 만하면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 만남은 좀 길어졌다. 일행은 천지가 보이는 둔덕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삼삼오오로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 각자 배낭에 넣어온 도시락을 꺼냈다. 평평한 바위를 골라 엉덩이를 붙이고는 고픈 배를 채웠다. 산에서 먹는 밥은 ‘잘 먹겠다’는 것보다는 ‘먹어둔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맛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점심을 먹은 후 여정은 오전에 비하면 수월했다. 이제 고개는 어느새 부드러운 언덕으로 바뀌었다. 바위길은 초원길로 온순해졌다. 2603미터의 녹명봉을 넘어 2596미터의 용문봉 아랫자락까지는 노니듯이 길을 걸었다. 그때까지도 왼쪽으로는 천지가, 오른쪽으로는 고원이 동무처럼 앞서거나 뒤거서니 어울렸다. 용문봉 아래 고원에서는 일행들 간에 간식을 나누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제 일정이 얼마남지 않은 듯했다. 가이드는 이곳에서 다시 코스를 갈라 잡았다. 이곳에서 능선을 타고 소천지까지 내려가는 등산로는 접었다. 대신 천지의 물에 손을 담그고 떠나기로 했다.


다시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 일행은 다시 고원 사이로 난 길을 따랐다. 이윽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서 가다 길이 뚝 끊겼다. 앞에는 용문봉의 낭떠러지다. 용문봉이 남동쪽을 급히 꺾어 천지에 발을 담그고, 서쪽이 고원으로 어깨를 두른 것과 달리 북동쪽은 천지가 솟구칠 때 몸통 째 잃어버린 듯 했다. 그 낭떠러지는 그 잃어버린 몸통의 상처였다.
가이드는 그 낭떠러지 앞에서 잠시 일행을 멈춰 세웠다. 이곳을 거쳐야만 천지에 닿을 수 있는데, 거의 깎아지른 길인데다 낙석이 많으니 단단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0십여분 걸음걸음 내려가자 천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마중나왔다. 나중에 알았는데 천지에서부터 장백폭포까지의  이 물길이 승사하였다.


평지를 걷듯 물줄기를 따라 걷다보니 드디어 천지물가인 달문이다. 이른 아침 중국 공안에 막혀 과연 트레킹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안고 출발한 여정이,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하루 종일 능선에서만 보던 천지가 이제는 눈높이까지 내려왔다. 오히려 그동안 밟고 걸었던 봉우리를 올려다보게 됐다. 마치 미니 해수욕장처럼 50미터 남짓 펼쳐진 물가는 잔잔했다. 천지에 직접 손을 담갔다. 고원을 대했을 때보다 감동이 깊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마치 이곳을 위해 하루를 걸은 듯, 그동안 걸어온 봉우리와 고원을 잊어버린 듯 생각을 천지 물에 젖었다.


시선을 들어 물가 저 반대편으로 펼쳐진 봉우리들을 보았다. 북한 땅이다.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 가운데 2749미터로 가장 높다는 장군봉은 이미 어제 보았다. 쌍무지개봉 근처에 물가에는 가건물 같은 것이 보았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해서 봉우리 끝으로는 마치 시멘트로 길을 내어 놓은 듯 선명한 길이 보였다. 감정도 이성도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다만, 그제야 비로소 오늘 하루 종일 걸었던 땅이 우리 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많은 감동을 주웠던 고원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랐던 봉우리도, 웃을 만들어 주었던 들꽃들도 모두 중국의 땅이었다. 우리 땅이 아닌 곳은 마음껏 밟았는데, 정작 우리 땅이라는 북한땅은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고 마니 일감으로는 국경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이제 남은 여정은 하산길이다.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관람객처럼 뭔가 허전했다. 통천하 달문을 떠나 다시 승사하 물줄기를 따라 걸었다. 아직 시간은 5시가 못되었다. 잠시 승사하 물길과 사이가 갈라지더니 어느새 길은 터널로 이어졌다. 낙석이 많다보니 터널로 만들어 등산객을 보호하기 위한 길이었다.

터널은 몸시 가파랐다. 그래도 하산길이다. 힘들더라도 이제 다 끝난 길이다. 이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왼쪽으로 열린 곳에서 폭포가 보였다. 장백폭포였다. 불과 몇 백 미터 전에 졸졸 흐르던 승사하가 어느새 물줄기를 모아 우람한 폭포를 이뤘다. 천지와 이별하는 이들에게는 배웅이고, 천지를 만나라가는 이들에게는 마중이다.


시멘트 계단을 모두 내려 뒤돌아보니 장백폭포는 양 옆으로 거대한 바위암벽으로 치장한 봉우리를 거느렸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원시 봉우리와 흡사했고, 노르웨이 여행에서 보았던 그 웅장한 봉우리들과 같았다. 그 모든 것은 이제 백두산 트레킹에 딸린 덤이었다. 그 마지막 덤은 지하에서 솟는 온천수에 담가 삶은 달걀이었다. 그곳에서 5분 남짓 버스를 타고 내려오니 숙소에 도착했다.
오후 5시 30분쯤. 열 시간 정도의 트레킹 여정이 막을 내렸다. 백두산 서쪽에 해당하는 이른바 서파에서 백두산 북쪽에 해당하는 북파까지의 여정 중 천지와 함께한 여정이 막을 내린 것이다.


다음날 아침 소천지를 둘러보고 북파쪽 산문을 나와 뒤돌아 보았을 때 거기엔 백두산 대신 ‘長白山’(창바이산)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200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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