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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백두산2- 11년 전의 꿈, 실현하다


 

“95년 8월, 무엇을 꿈꾸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 몇몇이 모였다. 학교 다닐 때 이른바 ‘운동’이란 그것을 미워하진 않았던 이들. 혹은 너무 뜨겁게 사랑해 가슴을 데인 이들. 아니면 뒤늦게 그 녀석을 사랑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하는 이들까지. 정말 무엇을 꿈꾸었는지 모르겠다.


그해 11월, 그들은 한 가지 약속했다.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에 가자고. 이를 위해 매달 1만원의 여행경비와 1천원의 운영비를 모았다. 그리고 두어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얼굴을, 약속을 확인했다. 그러나 99년까지 그 약속을 기다리기엔 모두들 조바심이 일었다. 그래 96년에는 좀더 넓은 이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때마침 ‘운동’이란 녀석에게 상처를 받은 한 후배를 위해 그 열정을 쏟았다.


97년에는 다시 무엇인가를 해 보자고 찾다가 ‘외국인노동자돕기’돕기 근처를 얼씬거렸다. 하지만 열정이 따르지 못한 스스로의 게으름에 포기하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은 한겨레통일문화재단에 모두 가입해 백두산에 가는 지름길을 열어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이란 늘 무거워도, 혹은 가벼워도, 게을러도 실패하는 것인가. 두살박이의 꿈은 그런 것들에 채여 비척거리고 있다. 매달 2만원씩의 돈을 넣어도 꿈이란 위태했다. 혹자는 그 ‘운동’이란 녀석이 버거워졌음이라. 그때만큼의 매력도 없고, 그것 말고도 다른 사랑할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고….

… 두살박이 녀석이 다시 걸음을 배우기 시작한다. “백두산, 너는 잘 걸을 수 있을 거야. 힘을 내!” 


대학 졸업을 6개월여 앞둔 4학년 여름, 지인들과 ‘백두산’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 해 뒤, 지인들 중 몇몇이 부지런을 떨어 회보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쓴 글이다. 그 이후 ‘백두산’ 모임은 근근이 명백을 유지해 갔지만, 현재는 몇 년 동안 ‘잠수’ 중이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백두산 트레킹 공지를 본 것은 5월 말경이었다. 그 무렵 스스로 몇 가지 삶의 변화를 꾀하는 중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조망하고, 그 가운데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자전거 출퇴근, 세풀에 충실하기 등 몇 가지를 재보곤 했다. 그러던 때 ‘백두산’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11년 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사에는 때와 계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고 ,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백두산 트레킹은 바로 그런 생각에 또 하나의 확신을 보탠 셈이다.

백두산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으면 수많은 여행사의 상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11년 전의 다짐과는 달리 지금까지 한번도 백두산 여행상품을 찾아본 적이 없다. 그저 금강산과 개성 여행길이 열리고 남북철도가 놓일 때, 어쩌면 북한을 통해 백두산에 정말 갈수도 있겠다는 기대 정도만 불씨처럼 남겨 두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우연에 가깝게 본 트레킹 공지 기사에 마음이 확 끌린 것은 그 무렵의 내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짠돌이’인 내가 비용 113만원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게 근원이겠지만, 내 안의 변화 욕구와 11년 전의 다짐이 그 부담을 상쇄했다.

  

트레킹 여행을 갈 것인가를 두고 소애와 상의했다. 소애는 등산에 별 취미가 없지만, 내 마음이 큰 것을 알고 동의해 주었다. 마침 그동안 해외여행을 목적으로 매달 든 적금도 8월이 만기였다. 기간도 3일 연휴가 끼였기 때문에 이틀만 휴가를 내면 됐다.

 


6월 초, 백두산 트레킹 계약금으로 10만원을 지불한 후 몇 가지 여행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생겼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백두산의 등산 여건이었다. 날씨는 어떻고, 지형은 어떤지. 혹 함께 신청한 이들이 모두 전문 산악인은 아닌지. 식수는 쉽게 구할 수 있는지…. 그렇다고 여행사에 꼬치꼬치 묻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결국 여행사에서 보내준 일정과 몇 가지 준비물 안내 글을 보고는 등산 기준을 지리산 등산으로 정했다. 날씨는 변덕이 심할 것이고, 비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우비는 필수다. 등산할 때는 반바지를 입고 혹 날씨가 예상보다 춥다면 그 위에 껴입을 수 있도록 추리닝을 준비했다. 등산 중에 허기를 채울 것으로는 그래도 만만한 ‘자유시간’을 골랐다. 여기에 랜턴도 챙겼다. 그동안 사 놓고 써 본 적이 없는 등산용 모자도 챙겼다. 


백두산을 본격적으로 오르는 날은 1일 산행이기 때문에 취사나 취침용 장비는 필요없다는 점은 다행스러웠다. 그만큼 배낭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여기에 팩 소주 세 개를 챙겨 넣는 것으로 짐 싸는 일은 끝났다. 이제 11년전에 꿈꾼 돛을 올리면 된다. (200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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