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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두번 째 유럽 1 - 마스트리히트에 닿다


 

2008년 7월 7일, 유럽 EIPA 훈련기관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했다. 그 후 10일간 이들은 네델란드 마스트리히트에 있는 EIPA 본부를 중심으로, 훈련기관 과정을 마쳤다. 도중에는 주말을 이용하여 독일 관광도 곁들였다.

연수일지는 이 10일간의 기록이다. 주요 학습내용은 별도로 정리하므로, 연수일지에는 함RP 한 이들이 어떻게 유럽 문화와 호흡하고 느꼈는지를 중심으로 쓴다. <노을이>

   


<7월 7일>


유럽으로 가는 내 생에 두 번째 비행기가 이륙했다. 5년인 1993년 9월. 당시에도 교육훈련이었다. 그 당시 비행기는 내 생에 외국을 방문하는 첫 번째 비행기였다. 그 전까지는 외국을 나갈 기회가 없었다. 두 번째라서 인지 설레거나 그런 감정은 없었다. 다른 어떤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아! 비행기가 이제 이륙하는 구나’하는 느낌만 가졌다.

비행기 좌석에 앉기 전에 가방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그러나 그 책은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앞좌석 꽂이에 꽂혔다. 여행할 때의 내 원칙은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한다’이다. 이 원칙은 비행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다섯 가지 정도 돼 보였다.

우선 읽기다. 주로 책이나 신문이다. 신문은 30여 분 정도면 전반적으로 훑어볼 수 있으니 장거리 여행의 빈 시간을 채우기엔 양이 부족하다. 그래서 읽기를 선택한다면, 신문보다는 책이 제격이다. 유럽 정도의 거리라면 웬만한 소설 한 권 정도는 뒷장까지 넘길 시간이 된다. 비행기에서 읽은 책 한 권. 나름 제목도 멋지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책은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읽을 수 있다.


읽기가 아니라면 보기를 택할 수도 있다. 비행기 좌석 앞에서 설치된 모니터가 그 수단이다. 이는 장거리 여행에서만 가능하고, 탑승한 비행기에 이런 서비스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니터가 있다면 메뉴엘이 비교적 다양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폭도 넓다. 내 경우에 가장 으뜸은 영화보기다. 최신 영화가 수십 편이 있으니 그런 대로 골라보는 맛도 있다. 그러나 보기 역시 비행기가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다. 다만, 비행기에서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이점과, 깊은 고민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보기와 유사한 것으로 듣기도 가능하다. 듣기는 보기보다는 좀 더 투자비용이 적게 든다. 특히 듣기는 시력에 유익하지 않은 모니터를 봐야하는 보기와는 달리, 비교적 몸에도 해롭지 않다. 모니터에서 음악을 고를 수 있으니 굳이 개인용 MP3가 없더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듣기 역시 비행기가 아닌 곳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므로‘이곳에서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읽기와 보기, 듣기의 취약점은 이 모든 것들이 시간차는 있지만, 모두 잠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읽기, 보기, 듣기는 그 안에서 스스로 재미를 찾지 못하면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굳이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을 인내로 버티는 것은 즐겁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에 찾아오는 게 잠이다.

그런 잠자기 역시 비행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잠자기의 입장에서 보면 읽기, 보기, 듣기는 에피타이저에 해당하기도 한다. 잠은 대부분의 장거리 승객들이 선호하는 선택이다. 다만, 자리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잠 또한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읽기와 보기, 듣기, 잠자기가 구미에 당기지 않는다면 말하기도 가능하다. 옆 사람과 나누는 대화다. 그러나 이는 혼자만 결심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장시간을 대화하려면 머리도 많이 써야 하고, 얘깃거리도 풍부해야 한다. 여러 면에서 자신이 드러난다는 점도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이보다 좋은 시간보내기도 없다. 상대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본디 사람보다 재미있는 존재도 드물다. 간간이 나오는 기내서비스를 받으며 차든 맥주든 마시면서 얘기할 수 있으니 분위기 돋우기에도 제격이다.


이 다섯 가지의 메뉴를 두고 내가 선택한 것은 보기와 잠자기였다. 보기는 돈 들이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그러나 유혹은 영화보다는 잠이 강했다. 그래서 영화 두어 편을 보면서 잠과 넘나들며 10여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정착 비행기에서 보낸 10시간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사육’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나온 음료를 마시고, 곧이어 나온 기내식 중에 비빔밥을 먹었다. 영화를 보다가 잠을 자고, 다시 눈을 뜨면 땅콩이 나왔고, 맥주를 달라고 부탁해 맥주를 마셨다. 다시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고 있으니 어느새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이 모든 과정이 제자리에 앉아 이뤄지다보니 사육과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스튜어디스들이 뭔가를 줄 때면 꼬박고박 잠에서 깨어나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행히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조만간 착륙한다는 기내방송이 나올 쯤 창밖으로 지상이 보였다. 독일이라고 짐작만 할뿐인 그 땅은 대부분이 숲이었다. 숲은 그러나 산이 아니었다. 높이가 있는 지형보다는 구릉처럼 완만한 경사로 굴곡을 조금 형성했을 뿐이었다. 그 숲 가운데에 간혹 조그만 마을들이 들어앉았다. 숲 사이로 난 도로들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신경망이었다. 그런 풍경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오후 6시 무렵, 독일 프랑크푸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독일 출입국의 여권 검사를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온 일행을 맞이한 이는 버스 운전기사였다. 그는 ‘EIPA'라고 쓴 종이를 들고 우리 일행을 찾고 있었다. 이윽고 인솔 통역자가 운전기사와 얘기를 나눈 후 버스가 주차된 곳까지 걸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독일땅임을 확인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우리 일행이 타고 갈 버스의 좌석이 한국의 버스와는 달리 상당히 높은 곳에 마련돼 있다는 정도가 특이했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다. 공항에서 서너 시간 정도 달리면 우리가 묵을 곳인 마스트리히트에 닿는다고 했다. 독일 하늘은 청명했다. 파란색 하늘빛은 종종 뿌려진듯한 구름에 가렸지만 틈으로 보이는 살결은 푸르렀다. 그럼에도 버스가 떠날 쯤엔 잠시 빗방울이 버스 창가로 떨어졌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비로소 낯선 땅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연이 준 느낌이었다. 도로를 둘러싼 주변은 사방으로 열렸다. 무엇 하나 지평선을 향하는 눈길을 가리는 것이 없었다. 바다의 수평선처럼 곧바로 펼쳐진 지평선은 아니었지만, 둔덕이나 들숲 정도의 방해물만이 존재했다. 그런 방해물은 직선으로 뻗어가는 시야를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가슴이 탁 트였다. 좀처럼 산을 볼 수 없었다. 벌판만이 한없이 펼쳐졌다. 멀리로 숲들이 보였지만 그것을 산이라 부르기엔 왠지 허전해 보였다.


펼쳐진 들판을 달리는 버스에서 보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버스 앞좌석에 앉은 보람이 있었다. 버스유리가 가려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카메라를 꺼내 기어이 버스 바깥의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이국 땅에서 만난 문화적 차이는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처음 겪었다. 공항에서 화장실을 가지 않고 곧장 버스에 오른 일행들을 위해 주변 휴게소에서 쉬어가게 되었다. 버스가 멈추고 모두들 화장실로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화장실 앞에서 머뭇거렸다. 화장실은 0.5유로를 내야했다. 한 번 사용에 우리 돈으로 8백원쯤 했다. 그래도 급한 이들은 그 돈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버스기사는 화장실을 이용한 티켓을 마켓에 가져가 물건을 구입하면 그만큼 물건값을 깎아준다고 했다. 그 말에 어떤 이는 슈퍼로 가서 돈을 조금 더 보태서 물을 구입해 왔다. 이쯤 되니 화장실 유료화가 이해됐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마켓을 이용하면 화장실은 공짜였다. 이것을 계기로 일행 중 몇몇은 유럽에서는 음식점에서 물도 돈을 내야 한다며 여행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다시 버스는 달렸다. 몇 시간째 도로 주변은 비슷한 풍광을 유지했다. 도로 주변 풍광 가운데 시선을 잡는 또 한 가지는 풍력발전소였다. 도로를 달리는 내내 대여섯 군데에 풍력발전기가 있었다. 한 곳에는 작게는 2~3기에서 많게는 10여 기가 평지에 우뚝 솟아 바람을 맞았다. 풍력이 주는 자연친화적 맛이 매력이기도 했지만, 허허한 벌판에 솟은 그 모습 또한 기억에 남을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그 풍경을 렌즈에 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풍경이 앞쪽보다는 옆쪽에 펼쳐져 구도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버스가 흔들려 렌즈의 초점을 맞추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셔터를 누르는 일은 그만둘 수 없었다. 단 한 장이라도 훗날 기억을 끄집어내주는 모습을 잡을 수 있다면 족했다.  



여전히 버스는 달렸다. 밤 8시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날은 환했다. 서녘의 해는 하늘에 머물렀다. 신기할 따름이었고, 이것 또한 이국의 맛이었다.

애초 공항에서 출발할 때 버스에서는 잠을 자지 않을 작정이었다. 버스에서 잤다가는 밤잠을 설칠 것이고, 그런 연쇄작용으로 시차적응이 어려워질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버스가 세 시간 정도 달리자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버스는 여전히 고속도로를 달렸다. 밤 9시 40분이 넘어도 해는 여전히 하늘가에 걸렸다. 밤 10쯤 되자 그제야 해가 졌다. 이제 어둠이 도로가로 내렸다. 이쯤이면 도착할 시간이 되었겠다 싶었는데, 여전히 버스는 달렸다.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주위는 완전히 어둠으로 덮였다. 밤 11시가 넘었다. 여전히 버스는 달렸다. 그로부터 한 시간 여가 조금 못 되어 도로에서 마스트리히트라고 쓰인 표지판을 보았다. 이윽고 거리의 사거리를 보았다. 순간 이곳이 마스트리히트라는 것을 직감했다. 적어도 사거리에 놓인 십여 개의 신호막대는 이곳이 네델란드라는 것을 알게 했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번갈아 칠해진 쇠기둥이 설치된 사거리는 5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보았던 그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잠시 후 운전기사는 곧 호텔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오후 11시 45분 드디어 우리의 베이스캠프인 마스트리히트에 도착했다. 거의 여섯 시간이 걸린 버스 여행이었다. 거리는 조용했다. 호텔 앞에 있는 도로도 비었고, 길 건너에 있는 버스정류장도 가로등 불빛과 광고판 불빛으로 채워졌을 뿐이다. 모두가 늦은 밤 시간이 연출한 모습이었다.


늦은 밤 시간이 준 것은 정적이지만 주지 않은 것은 저녁식사였다. 호텔에서는 우리 일행이 늦을 것이라는 연락을 받지 못해 저녁식사를 마련할 수 없다고 했다. 연락을 받지 못했다니 할 말이 없게 됐다. 더욱이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무엇을 더 설명한들 풀릴 것 같지도 앉았다.
우리 일행은 차선으로 근처의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호텔 직원에게 근처 식당을 물었으나 답변은 시원치 않았다. 늦은 시간이라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행은 저녁식사를 두고 둘로 나뉘었다. 짐을 숙소에 두고 식사를 갈 일행은 5분 후에 1층 로비로 모이기로 했다. 식사에 생각이 없는 일행들은 각자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나는 룸메이트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숙소에서 간단히 소주를 마셨다. 윤 사무관은 부산에서 구입한 시원소주와 팩소주, 그에 걸맞는 안주 등을 잔뜩 가져왔다. 술을 포함해 먹을 것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내가 룸메이트 잘 만난 복이 있었다. 저녁식사를 나간 10여 명의 일행은 다행히 문을 연 식당을 찾아 케밥을 먹었다. 그  시각, 나는 이국에서의 소주 한잔으로 마스트리히트의 첫날 밤을 맞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