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유럽 2 - 첫 수업 "하위직에도 리더가 있다"

<7월 8일>

마스트리히트에서 맞은 첫 아침은 구름이 가득했다. 숙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곧 비를 뿌릴 듯 했다. 비구름을 잔뜩 안고 있는 마스트리히트는 4~5층 되는 건물들의 지붕으로 지평선을 이뤘다. 딱히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호텔 바로 옆은 경찰서의 뒷마당이었다. 순찰차 3~4대가 주차돼 있는데, 출근하는 경찰들 중에는 자전거로 오는 이들도 있었다.

룸메이트와 함께 호텔로 1층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는 대부분이 빵 종류였다. 내가 택한 것은 찐 버섯과, 찐 계란, 바짝 구운 돼지고기. 식빵 한 조각이었다. 굳이 입에 익숙하지 않은 음식은 손이 가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는 혼자서 호텔 밖으로 나왔다. 30여분 정도 남은 시간을 숙소에서 보내긴 아까웠다. 밖은 부슬비가 내렸다. 우산까지는 필요 없었다. 8시가 아직 안돼서인지 길가에는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호텔  앞에는 마스트리히트역이 있다. 그 역사를 옆으로 두고 걷다보니 철길이 나타났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철길을 건넜다.

그곳부터는 이른바 주택가였다. 주택가의 집들은 2층을 단층과 2층짜리가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건물 앞에는 자동차들이 주차돼 있고, 어느 집앞이든 자전거 한두 대는 갖추고 있었다. 집앞엔 벤취가 놓였고, 대부분의 창틀에는 화분이 놓였다. 그런 풍경을 그대로 스케치에 옮기면 자주 눈길을 사로잡을 풍경화로 볼만하다 싶었다. 

주택가로 들어서니 사람을 보긴 더욱 어려웠다. 집들마다 창에 쳐진 커튼 역시 아직 걷히지 않았다. 주택가를 한 바퀴 돌고 철길 너머의 역사까지 도착한 후 육교를 건너 호텔로 돌아왔다. 30여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아침산책으로는 이국의 풍경에 고요함이 더해져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오전 8시 30분쯤 일행은 공부를 할 EIPA(유럽행정연구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로비에서 모였다. 그런데 당초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통역원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잠시 서성이다가 호텔직원에게 EIPA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걸어갔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우리 일행에게 굿모닝하며 다가오는 한 외국인을 만났다. EIPA 직원인데 마중을 나온 길이었다. EIPA는 호텔에서 10여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건물로 둘러싸인 연구원 마당엔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들의 국기가 게양돼 있었다. 일행은 EIPA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강의실로 갔다.

9시. 유럽에서의 첫 강의가 시작됐다. EIPA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강의는 곧바로 이어졌다. 강의실은 사각으로 이뤄져 정면에는 빔프로젝트가 있었고, 우리 일행은 다른 세 방향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오전 강의는 EIPA에 대한 소개로 시작됐다. 유럽 각 국의 행정 제반을 연구하는 EIPA는 독자적인 기관이지만 유럽연합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유럽연합으로부터 25%정도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다. 또한 이사회는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의 국장들로 구성된다.

EIPA는 회원국들의 연구를 돕기도 하고, 교육훈련과 세미나 출판 등의 활동을 펼친다. 이중 교육훈련은 매년 참여인원이 늘고 있는데 연인원이 1만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이번에 우리 일행이 참여한 프로그램도 그런 교육훈련 가운데 하나였다. EIPA의 조직은 유럽연합 차원에서 발생하는 분야를 맡는 팀과, 각 개별 국가레벨에서 발생하는 행정을 담당하는 팀, 국가레벨과 유럽레벨의 관계를 연구하는 팀 등으로 구별된다. 마스트리히트에 있는 EIPA는 본원이며, 바르셀로나 룩셈부르크 바셀로나 밀란에 4개의 본원을 두고 있다.    
 

EIPA에 대한 소개가 끝내고 시작된 첫날 오전 강의는 유렵 국가들이 행정적 측면에서 직면한 과제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어, 1시 무렵까지는 인적자원관리(HRD)에 있어서의 새로운 경향과 변화를 주제로 강의가 이어졌다. 모두들 유럽행정의 전반적인 경향을 이해할 수 있는 서론에 해당하는 내용들이었다.

점심시간은 강의가 끝난 시간으로부터 1시간이 주어졌다. 식사는 EIPA 건물안에 있는 식당에서 했다. 식당에는 다른 프로그램을 듣는 외국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별로로 마련된 테이블에서 별도로 마련된 음식을 먹었다. 나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다고 배려한 정성이 보였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EIPA 건물을 나왔다. 아침에 걸어왔던 때와 달리 도로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EIPA 앞에 있는 가게는 넓은 광장에 파라솔과 식탁을 놓고 손님을 맞이했다. 이 풍경은 그 자체로도 운치가 있었지만, 주변을 둘러 싼 10여 그루의 큰 나무들과 어울려 더욱 끌리는 풍경을 연출했다.   

EIPA 앞에는 오래된 성당이 있었다. 성당외벽은 공사를 진행하는지 철근 구조물들이 외벽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성당 안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출입은 통제하지 않았다. 성당입구에는 수십 개의 양초들이 켜 있었고 그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성당 안은 어두웠지만 수십 미터쯤 되는 천장은 웅장함을 보여줬다. 조심조심 성당 안을 둘러보는데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경건함이 느껴졌다.

오후엔 리더쉽과 혁신을 주제로 한 강의가 이어졌다. 강사는 토니바스(Tony Bass)였다. 토니바스는 유럽행정연구원에 4년째 근무하며 다양한 엔지오 등에 자문역할을 맡고 있다. 이전에는 아일랜드 트레닝센터 장을 역임하는 등 아일랜드 정부 기관을 두루 거치며 27년간 아일랜드 공무원으로 제직했다.
강사를 소개한 투레박사는 “아일랜드 행정에 관해 질문하면 모두 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니바스의 강의는 나름대로 신선했다. 특히 리더쉽과 매니지먼트의 차이를 설명할 때는 무척 흥미롭게 들었다. 강의 말미에 토니바스는 미국고위공무원을 대상으로 했던 설문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우리는 훌륭한 관리자와 리더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훌륭한 리더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이다. 아마도 여러분은 시이오나 기관장을 떠올리겠지만 그건 답이 아니다. 실제 조사 결과는 자기보다 하위직에서 훌륭한 리더를 보았다는 것이다. 하위직에서 본 이유는 직급에 대한 장벽이나 거부감을 떠나서 순수하게 자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니바스의 강의가 끝난 후에는 각 국가별로의 구체적인 개혁 사례들이 소개되었다. 8일엔 아일랜드의 전략적 경영추진에 대한 강의가 진행됐다. 아일랜드에서 혁신을 어떻게 추진했는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강의는 다섯 시가 넘어 끝났다. 이어 일행은 저녁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저녁식사는 EIPA에서 준비한 만찬이었다. 사무실에서 5분여를 걸어 가정집 같은 어느 음식점에 도착했다. 음식점은 네모진 형태였는데 가운데 마당이 있었다. 그 마당에 마련된 테이블에 우리 일행이 앉았다.
저녁식사로는 육회에 연어가 나왔고, 아이스크림이 후식이었다. 육회는 얇게 바른 소고기가 야채와 함께 나왔는데 일행들이 그렇게 즐길만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만, 가게의 종업원이 따라주는 포도주를 서너 잔씩 마셨다. 이제 만난 지 이틀째인데도 일행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로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밤 9시였다. 역시 네델란드에서도 아직 날이 밝았다. 일행은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 그

러나 해도 지지 않는 이 시각에 숙소에 들어가 쉴 수가 없었다. 결국 로비에서 10여분 후에 만날 사람들은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10여분 후 10명이 모였다. 어디를 갈 것인가! 이 낯선 도시에 지금 이 시간에 영업을 하고 있을 술집이 있을까 궁금했다. 잠시 망설이던 일행은 일행의 재무를 담당한 이의 뒤를 따랐다. 그이가 들어간 곳은 기네스 맥주집이었다. 술집에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입구에서는 좀처럼 자리가 없어 보이던 곳인데 안쪽으로 들어가자 다행히 자리가 마련되었다. 우리 일행은 기네스 맥주를 한 잔씩 주문했다. 술집 안은 요란한 음악소리로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옆 사람과도 얘기를 나누려면 큰 목소리를 내야 했다. 더욱이 이제 만난 지 하루가 된 사이다보니 얘기를 길게 나눌 처지도 못 되었다. 술집에서는 채 한 시간을 머물지 못하고 나왔다. 잠깐 동안 네델란드의 젊은 친구들이 즐겨 찾는 술집을 가 봤다는 것 정도의 의미가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모두들 헤어졌다. 그러나 아직 12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그대로 자기엔 아쉬움이 많았다. 숙소로 돌아오자 룸메이트와 옆 호실에 있는 이들을 불러 술을 한잔씩 나눴다. 잠자리에 든 시간은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