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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두번 째 유럽 7 - 문득 걸으니, 뤼데스하임의 티티새 골목

 

하이델베르그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동안 먹은 식사 가운데 아침 식사로는 가장 푸짐했다. 그럼에도 음식들 가운데 먹는 종류는 비슷했다. 아침을 먹고 일행은 두 갈래로 나눠 하이델베르그성을 방문했다. 각자 편한 대로 움직이기로 하고 오전 10시 40분까지 다시 모이기로 했다. 호텔을 떠나기 전에 모두 체크아웃을 완료했다.

어제 저녁 이 호텔에서 체크인 할 때 데스크에 있던 직원은 까다로운 주문을 했다. 각 방별로 1인식 신용카드를 등록해 달라는 거였다. 통역사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각 숙실에 있는 미니바를 사용하고는 간혹 계산하지 않고 가는 손님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호텔들은 체크아웃할 때 미니바를 일일이 점검하지 않았다. 손님이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으면 이용여부를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니 나름의 차선책을 준비한 듯 했다. 그럼에도 다른 곳에서는 하지 않던 신용카드 번호 제출을 이곳에서만 하니 다들 꺼림직해 했다.

전체 일행은 두 무리로 나뉘었다. 내가 속한 일행 모두 6명, 이번에도 네이버강이 가이드를 맡았다. 오전 일정은 조촐했다. 어제 못 보았던 하이델베르그 성을 가보자는 거였다. 보행자 전용도로인 하우프크거리를 걸었다. 거리 양쪽으로 음식점과 쇼핑센터 들이 즐비했다. 선제후 박물관과 대학광장,시청광장 등이 나타났다. 일요일 아침거리는 조용했다.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평상시에 이 거리는 대학도시 특유의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 지금은 이방인들만이 이 거리의 주인이 됐다.

하이델베르그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르막이었다. 3분여동안 오르막을 올라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해 들어갔다. 하이델베르그성은 자료에 의하면, 1400년경에 시작해 1620년대까지 건축되었다고 한다. 궁전과 부속건물, 성곽 등으로 이뤄졌지만, 일관된 건축계획에 의해 지어진 성이 아니라 공통된 건축 양식이 없다고 한다. 아울러 이 성에는 프리드리히 5세가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하룻만에 지어 선물했다는 엘리자베스의 문 등의 볼거리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성안으로 들어서자 성 내부는 초라했다. 성 안은 허름한 정원처럼 보였다. 선제후 16명의 입상 조각들이 있어 옛 성의 웅장함 정도를 가늠하게 했다. 하이델베르그성은 30년 전쟁과 1693년 프랑스의 공격으로 페허가 되었는데 이후 복원되었다고 한다. 그 여파인지 성 곳곳에는 폭파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성 내부 구경은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아야 했으나 시간도 없거나와 별도 비용이 들어 포기했다. 

하이델베르그성에서 다른 코스로 출발해서 이곳을 온 우리 일행을 만났다. 그곳에서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전 일정이 빠듯하여 호텔까지 약속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서너 명을 빼고 모두 만났으니 늦어도 다행이다 싶었다.

성에서 나와 돌아가는 길에도 일행은 다시 두어 팀으로 나눠졌다. 내가 속한 일행은 내려가면 서 오지 않은 길을 택했다. 산자락 밑으로 난 길이었다. 몇몇은 이 길이 맞는지를 몇 차례 의심했다. 그러나 나는 이 길이 호텔로 가는 지름길임을 확신했다. 어제 이 도시를 돌며 본 기억을 조합해 구 시가지 쪽은 개략적인 나름의 투시도를 머릿속에 그려놓은 상태였다. 낯선 도로를 따라 걷는 동안에 나오는 몇몇 건물들로 그 확신을 확인하곤 했다. 결국 성에서 출발한 다른 일행보다 5분 여정도 빨리 돌아올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보니 버스 운전기사가 버스에 우리 일행들의 짐을 모두 실어 둔 상태였다. 10시 20분에 우리는 하이델베르그를 떠났다. 예정시간보다 40여분 늦었다. 애초 계획에는 두 가지 일정이 잡혀 있었으나 어떤 일정이 이어질 지는 알 수 없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며칠간 이어지는 일정에 쌓인 피로감이 오직 잠으로만 쏟아지는 듯했다. 한 시간여 쯤 잤을까 싶을 무렵에 눈을 썼다. 어느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하늘이 파랬다. 오랜만에 만난 개인 날이다. 깨끗한 날씨에 감탄한 후 주위를 들러보니 왼쪽으로는 큰 강이 흘렀다. 버스기사에게 확인해 보인 라인강이란다.

버스는 그때부터 10여분을 달리더니 멈췄다. 와인의 고장으로 유명한 뤼데스하임이었다. 운전기사는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관광을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라인강가로 갔다. 조그만 공원과 와인을 판매하는 매점 앞을 지나니 라인강물이 드러났다. 철도를 건너니 곧바로 라인강가였다. 라인강은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뤼데스하임과 만나는 강변엔 서너 군데에 선착장이 있었다. 강 건너로는 옛 성도 보였다. 

그러나 강가에서 강을 둘러보는 것은 잠깐이면 족했다. 보는 순간, 아!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달리 무엇을 더 자세히 볼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냥 강가만 거닐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10여분 정도 강가에서 서성이던 일행은 이내 뤼데스하임 마을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뤼데스하임은 강가에서 철도와 2차선 도로를 건너가 곧바로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상점은 관광용품을 판매하는 가게와 음식점들이 대부분이었다. 

뤼데스하임은 라인강의 진주로 불리는 시골 마을이다. 앞으로 라인강이 흐르고 마을 뒤쪽으로는 둔덕같은 지형이 온통 포도밭인 곳이다. 일찍이 로마시대부터 이곳은 수량이 풍부하고 일조량이 많아 와인산지로 개발했다. 현재는 독일에서 생산되는 화이트와인의 90%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브렘저성의 와인박물관과, 곤도라를 타고 오르는 니더발트, 드로셀가세(Drosselgasse) 거리의 노천 카페 등이 여행객들의 발목을 잡는 풍경들이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뤼데스하임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네이버강도 이번엔 정보가 없어 ‘네버강’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 조와 몇몇 일행은 네이버강을 따라다녔다. 한번 가이드는 영원한 가이드였고, 어디서 구했는지 네이버강의 손에는 뤼데스하임의 지도가 들려 있었다. 우리 일행이 먼저 찾은 곳은 브렘저성의 와인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은 일반 마을의 정원 같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마당 가운데 있는 수백년 된 플라타너스가 첫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 있는 와인통이 오히려 시선을 잡지 못했다. 마당 한쪽으로는 헛간 같은 집들이 디귿 자 모양으로 있는데 그 안에는 포도주를 증류하는 옛날 기계들이 전시돼 있었다. 와인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우리 일행은 마당에서 잠시 서성이다 나왔다. 와인박물관 뒤편으로는 포도밭 언덕이 펼쳐졌다. 그 위로는 니더발트로 오고가는 곤도라가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한번븜 타 보면 좋겠다 싶었으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와인박물관을 끼고 뒷편으로 이어진 골목을 따라 걸었다. 잠시 주택가로 골목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골목 안에는 가게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갈수록 가게는 늘었고, 그만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골목길 옆으로 난 작은 골목에도 가게와 사람이 한데 어울렸다. 라인강에서 바라볼 때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일행 중 누군가는 “이곳이 진짜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몇몇은 기념품 가게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곳이 드로셀가세(Drosselgasse) 거리였다. 150미터쯤 되는 거리에 지금처럼 사람들이 재잘거리며 걷는다고 하여 티티새 골목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뤼데스하임 최고의 명물이며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을 자처하기도 한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들어왔다가 무척 유명한 관광거리를 걸은 행운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 거리가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몰랐던 우리 일행이 보기에도 그 거리는 매력적이었다. 아기자기한 선물 가게야 한국의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니 지나친다 해도, 골목 곳곳에 놓인 노천 카페는 충분한 유혹거리였다. 체리를 두 어 바구니 사들고 드로셀가세 거리를 나오면서 “식사를 이곳에서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누구랄 것도 없이 꺼낸 것은 그 유혹에 푹 빠졌음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약속한 한 시간을 보내고 버스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니 임원진에서 다른 일정을 알려 주었다. 이곳에서 공동 경비를 이용해 라인강 유람을 하자는 거였다. 어차피 일정이 버스를 타고 라인강을 따라 퀼른까지 이동하는 것이었으니, 모두들 동의했다. 뤼데스하임에서 점심을 각자 먹고 유람선 승선 시간인 1시50분까지 선착장에 모이기로 했다.

우리 조 일행은 시간이 많진 않았지만 드로셀가세로 방향을 잡았다. 이미 풍족한 눈요기를 했으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뒤쪽에는 또한 무리의 우리 일행이 뒤따라왔다.  드로셀가세의 한 음식점에 들러 우리 조 일행 6명이 함께 앉았다. 뒤따르던 다른 일행은 가게 안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조 일행은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므라이스 등을 주문하면서 빨리 줄 것을 부탁했다. 이번엔 맥주를 주문하지 않았다. 도중에 한번 더 빨리 달라고 주문을 하고나니, 1시 30분 쯤에 음식이 나왔다. 거리의 풍경을 음미하며 식사를 하고 싶었으나, 배 일정이 있어서 허겁지겁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가게 안으로 들어간 일행들에게는 아직도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알고보니 안에 들어간 일행들은 맥주를 주문해 마셨는데, 종업원들은 맥주를 다 마시면 음식을 낼 요량이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우리 조 일행은 먼저 가게를 나와 선착장으로 갔다. 가게 안의 일행은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해서 배가 출항하기 전에 선착장에 도착했다. 작은 문화적 차이가 빚은 해프닝이었다.

라인강 유람선은 오후 2시 15분에 출발했다. 하이델베르그를 가로질러 흐르던 네카강의 물줄기가 유립되는 라인강 상류로 향했다. 일행들은 객실 안보다는 지붕이 없어 하늘이 열린 선상에 나온 이들이 많았다. 유람선이 뤼데스하임 선착장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편으로 리더발트가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 있는 동상이 보였다. 이 동상은 독일 통일을 기념하며 1883년 국민들의 모금으로 세운 청동색 니더발트 덴크말(Niederwald Denkmal) 여신상이다. 여신상 주변으로는 관광객들이 몰려 있는 모습도 자그맣게 보였다. 니더발트 주변으로는 깎아지른 등선을 따라 포도밭이 펼쳐졌다.  

뤼데스 하임을 출발한 유람선은 이내 작은 마을들이 나올 때마다 선착장에 몸을 댔다. 그 와중에 하선하는 이들과 승선하는 이들이 엇갈렸다. 그러니 갈수록 승선하는 이들이 늘었다. 우리 일행은 각자 편한 곳에서 라인강 주변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선상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도 즐겼다. 두런 두런 얘기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홀로 이국의 정취를 가슴에 담는 이들도 있었다. 라인강가에서는 그 무엇보다 옛 고성들이 많았다. 10~20여 분쯤 가다보면 고성들이 있었고, 그 고성 주변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고성들은 현재는 호텔 등 숙박시설로 쓰이거나, 박물관으로 쓰이기도 한다.     

두어 시간쯤 지날 무렵 유람선 오른편으로 로렐라이 언덕이 나타났다. 로렐라이 언덕은 그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강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절벽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세계적 명성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놀라울 뿐이었다. 언덕아래에 로렐라이 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면 라인강 주변의 고성에 가려 이름도 못 내밀 듯 했다. 오히려 민중의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부여의 낙화암에 더욱 의미깊다 싶었다. 

유람선을 따라 가는 동안 왼편으로는 간간이 기차들이 지나쳤다. 강과 나란히 달리는 모습을 보며 기차 여행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강으로는 종종 거대한 화물선들도 지나쳤다. 배 한 대가 동시에 다른 두 대의 배를 끌고 가

는 경우도 있었다. 오가는 유람선도 다양해 두어 대가 우리 일행이 탄 방향과 반대로 스쳐 지나갔다. 유람선은 네 시간이 걸려 코블렌츠에 도착했다. 코블렌츠는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코블렌츠의 선착장 건너편으로는 에렌브라이트슈타인성이 보였다. 지금까지 본 성과는 무척 넓어 보였다. 

선착장에는 미리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버스 운전기사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우리 일행은 곧장 식당으로 가려했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에는 독일을 통일했던 빌헬름1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일행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식사는 근처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했다. 그런대로 우리 입맛에 맞았다. 곁들여 주문한 술도 한국의 중국음식점에서 마셔본 것이라 입맛에 맞았다. 운전기사도 함께 식사를 했는데 젓가락질도 제법 했고, 매운 음식도 그런대로 잘 먹는 듯 했다.

일행은 식사를 마치고 나와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제 마스트리히트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코블렌츠를 떠난 지 약 3시간이 지난 밤 11시 무렵 일행은 마스트리히트에 닿았다. 금요일에 출발해 국경을 넘나든 2박3일간의 여행은 끝났다. 

우리 일행을 호텔 앞에 내려 준 운전기사는 떠났다. 운전기사와 작별할 때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뭔가 답례를 하고 싶은데 달리 표현할 것이 마땅치 않았다. 팁이라도 얼마 줄까 했으나 임원진에서 내는 팀을 운전기사에게 건넬 때까지 계속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결국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 하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이번 여행에서 외국어를 제대로 못해 아쉬움을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이 운전기사와 버스 안에서 보낸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운전기사는 영어가 되질 않으니 우리 일행과도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나누질 못했는데, 아마도 독일어를 할 줄 알았다면 운전하는 옆에서 말벗은 될 수 있었겠다 싶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몸의 언어는 통해 운전기사의 부탁으로 아이스박스에서 음료를 꺼내 건네 준 적은 두어 번 있었다. 그것이 사흘간 우리 일행을 안전하게 이동해준 운전기사에게 표현한 내 마음의 전부였다.

호텔에 도착한 일행은 다시 각자 숙소를 배정받았다. 앞으로 남은 일정을 잠시 생각하니 이제 돌아갈 날이 성큼 앞으로 다가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