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스트리히트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다. 주말을 이용해 독일을 방문하고 돌아왔지만, 아침 일정은 그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아침 8시경을 전후해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일행 가운데는 식사를 일찌감치 마치고 다시 마스트리히트 시내 구경을 나선 이들도 있었다. 틈틈이, 짬짬이, 이 낯선 도시를 거닐며 세상의 한 구석을 체득해고 있었다.
오전엔 마스트리히트에서의 마지막 수업이 진행됐다. 수업은 이전처럼 9시에 시작됐다. 신공공관리 영역에 대한 설명에 이어 통합적 관점의 품질관리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품질관리 강의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행정의 전 영역에서 어떤 혁신이 필요한지를 통합적으로 짚어보았다는 점이다.
한 조직이 운영되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것이 요구된다. 성과창출이나 프로세스 개선, 러더쉽 등 다양한 영역의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통합적 관점의 품질관리에서는 이를 통 9개의 영역으로 구분했다. 먼저 동인(Enablers)으로서는 리디쉽, 인적자원관리, 전략기획, 파트너쉽 및 자원, 프로세스 및 변화 관리를 꼽았다. 결과(Results)로서는 조직구성원과, 고객 및 시민, 사회, 핵심성과를 꼽았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그것을 CAF모델을 통해 구현하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에 브뤼엘(Brühl)에 있는 공공행정주립연구소에서 들었던 CAF모델이 구체적인 운영방법이었다면, 이번에 들은 내용은 CAF모델의 구성 배경과 이론을 좀더 강조했다. CAF모델은 이상의 9가지 영역에 대해 성과지표를 개발한 후 자기평가를 통헤 혁신해가는 방식이었다.
CAF모델은 자기평가라는 방식의 운영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가 우선 흥미로웠다. 그러나 조직의 변화를 관리하면서 사람의 문제부터, 제도의 문제와 결과의 문제까지 통합적 시각을 견지했다는 점은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는 공직자라면 한번더 보았음직한 대목이었다.
오전 강의는 12시 30분경에 끝났다. EIPA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EIPA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였다.
오후 일정은 비교적 간단했다. 마스트리히트 시청사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당초에는 시청 공무원들을 만날 계획이었으나 휴가 일정들이 겹쳐 섭외가 이뤄지지 않았다. EIPA 사무실에서 마스트리히트 골목길을 10분쯤 걸어 도착한 곳은 구 시청사였다. 현재 시청 업무를 보는 청사는 다른 곳에 있고, 이곳은 관리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구 청사는 청사라고는 하지만 역사박물관이라고 해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을 정도였다. 벽에 그려진 벽화며 장식물들이 모두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당초 일행들은 청사방문을 빨리 마치고 오후 공식일정을 빨리 끝냈으면 했다. 마스트리히트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좀더 자유롭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관리인의 설명에 흥미를 느껴 관람시간을 좀 더 달라고 요청했다.
구 청사 방문은 오후 3시 무렵에 끝났다. 더불어 월요일의 공식일정도 모두 마쳤다. 단장은 남은 일정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두고 일행의 의견을 물었다. 그 가운데는 암스테르담을 방문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오가는 데 버스로 6시간이 걸리고, 가 볼만한 곳은 모두 문을 닫을 시간이라는 점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몇몇 일행 가운데 개인적인 일정이 있으면 이를 동유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이들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했다. 남은 오후 일정은 2조가 잡은 발켄부르크 여행과 마스트리히트 시내 여행, 그리고 개별적인 행동 등으로 나눠졌다.
발켄부르크 여행은 이번에도 네이버강이 준비했다. 나는 먼저 마스((Maas)강의 신트 세르파스교(Sint Servaasburg)를 건넜다. 발켄부르크로 가는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노트북과 교재를 호텔에 두고 오려면 서둘러야 했다.
발켄부르크로 떠나는 일행은 모두 10명이었다. 오후 3시 40분 마스트리히트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발켄부르크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역시 왕복표를 구입했다. 발켄부르크까지는 약 20여분이 걸렸다. 마스트리히트보다는 작은 마을처럼 보였다. 잠시 중심 도도를 따라 걷던 일행은 네이버강의 제안에 모두들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네이버강이 간 곳은‘벨벳 동굴’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이 동굴 관람은 전용차를 타고 이뤄지는데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고 하여 서두른 것이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나니 차를 운행하는 4시 50분까지는 30여분 가량이 남았다.
이 시간에도 일행은 제각각의 모습이었다. 민 선생과 이 선생 등은 근처의 선물가게를 돌며 쇼핑을 즐겼다. 마 선생과 몇 몇 일행들은 근처 카페에서 병맥주를 한 병씩 마셨다. 이 선생 등은 동굴 입구의 벤치에서 쉬고 있었다. 동굴 개방시간이 가까워지자 쇼핑을 갔던 일행은 뭔가를 사 가지고 왔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줄 기념품이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명이 고른 인형을 보니 ‘made in china’였다. 좁은 세계시장을 가장 간명히 보여준 셈이었는데, 이쯤 되면 한국에서 구입하고도 네델란드에서 가져왔다고 속여도 모두들 어쩔 도리가 없을 듯 싶다.
벨벳동굴 관광은 우리 일행을 포함해 도두 20여명 정도가 함께 했다. 관광은 전용차량으로 했는데, 차량은 좌석만 있을 뿐이고 사방이 트여 관광에 편하게 설계됐다. 또한 지하철 차량처럼 두개의 차량이 연결돼 있었다.
이곳 동굴은 당초에는 미세한 진흙이 쌓여서 딱딱하게 굳은 암석인 이암을 캐는 채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동굴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곳은 종종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 점령지였을 때나 2차대전시 독일이 점령하고 있었을 때 인근 주민들에겐 이곳이 삶의 터였다.
실제 동굴에는 그런 모습들이 다양하게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동굴 곳곳에 남겨진 벽화와 동상
들이었다. 벽화와 그 동상은 참으로 다양했다. 종교적 열망을 표현하거나 물고기 등 일상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벽화와 동상은 우리를 태우고 가는 관광차의 불빛에 따라 어둠속에서 드러냈다 사라지곤 했다.
동굴 여행을 마치고 난 일행은 근처의 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라위네성은 12세기초에 발켄부르크의 영주가 지은 곳이라고 한다. 이후 이 성은 몇 차례 걸쳐 함락되고,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했다. 현재는 재건된 성이 아니라 파괴된 성 그 자체로 남아 있어 밖에서 보는 성채 역시 곳곳에 바괴된 흔척을 쉽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성 안은 들어갈 수 없었다. 성은 이미 개방시간이 끝난 후였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으니 개방시간을 좀더 늘려도 될 듯한데, 그런 예외는 없었다. 이는 물건을 파는 가게들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가게들은 5시를 선후해서 문을 닫고 있었다. 결국 일행은 걸어서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일행은 천천히 걸으며 이 낯선 도시의 정경을 둘러보았다. 이 와중에서도 성별과 연령에 다른 다양한 반응이 나타났다.
일행 가운데 남성들 몇몇은 피곤하다며 마스트리히트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피곤하기도 했겠지만, 돌아다니며 즐기는 것이 무척이나 낯선 놀이였던 모양이었다. 남아있던 일행 가운데 젊은 일행 두어 명은 도중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 물건 고르기에 푹 빠졌다. 밖에서 나머지 일행들이 20여분을 기다리자 데리러가서야 다시 합류했다. 내게도 딱히 정해진 목적지 없이 낯선 거리를 걷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연일 이어진 일정도 도보여행과 다를 바 없으니 발목도 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행의 욕구는 줄어들지 않았다. 교외 한 켠으로 놓인 발켄부르크 역을 둘러보고 다시 중심가로 온 일행은 이제 저녁 식사를 할 곳을 찾았다. 다행히 오래 헤매지 않아 음식점을 찾았다. 식당 입구에는 한국에서 본 적이 있는 바비큐 치킨이 보였다. 일행은 모처럼 치킨 한 마리 주문해 맥주나 한잔 하자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곳 식당에서는 키친 한 마리를 통째로 팔지는 않았다. 할 수 없이 키친이 들어간 음식과 다른 몇 가지와 맥주를 주문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이곳 식당도 곧 영업을 마칠 채비로 바빴다. 저녁 8시 정도를 조금 넘겨 식당을 나왔다.
음식점이나 다른 상점이 일찍 문을 닫는 것이 관광객에게는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이곳 현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인간답게 사는 기본 조건으로는 맞춤일 듯했다. 모든 마을 운영체계가 그것에 익숙하다면 큰 불편은 없을 듯 했다. 그 대신 이곳 사람들은 그 남은 시간을 다른 소일거리나 놀이를 하며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발켄부르트 여행을 마치고 마스트리히트로 돌아온 시간은 저녁 11시 무렵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일행은 그대로 숙소로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짐만 부려놓고는 다시 숙소의 한 곳으로 모이기로 했다. 10여분 후 다시, 예닐곱 명이 모였다. 근처 나이트숍에서 병맥주를 사 한두 병씩 마셨다. 모두들 술 자체보다는 서로들 주고받는 얘기가 좋은 지 맥주는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2시가 넘어 모두들 흩어졌다. 다음날 들으니 그런 술자리는 몇몇 숙소에서도 진행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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