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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두번 째 유럽 6 - 네카강에 불꽃이 피다


훈련과정에서 단 한 번뿐인 토요일 아침이다. 휴일이다. 7시 30분에 호텔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쳤다. 일찍 일어난 이들은 벌써 동네를 한 바퀴 돈 모양이었다. 어제 밤늦게 도착했으니 주위의 풍경을 볼 수 없었는데, 아침에 보니 주변에 제법 바위산들이 제법 솟아났다는 거였다. 식사를 마치고 룸메이트와 동네구경을 위해 나섰다.


퓌센은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바이에른주에 속한다. 뮌헨에서 기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레히강을 끼고 있으며 알프스산맥과 동쪽 기슭에 위치하기도 한다. 아침이라 동네는 조용했다. 주변은 암벽처럼 산들이 솟아 있었다. 호텔을 사이에 두고 한바퀴 도니, 주택가도 만나고 간이역도 지나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호텔이 많았다. 근처에 관광지라도 있나보다 싶은 생각만 했는데, 그 이유를 한 시간쯤 후에 알 수 있었다.


오전 8시 30분 일행은 버스를 타고 퓌센을 떠났다. 가로수와 2차선 도로가 잘 어울린 길을 따라 한 10여분쯤 지나자 저 멀리로 산자락에 잠긴 성이 보였다. 잠시 후 슈반가우 숲 산기슭에 닿았다. 그곳엔 10여 채의 식당과 숙소가 있었다. 운전기사는 입장표를 구입했다. 일행은 잠시 뒤에 버스에서 내렸다. 오늘 첫 관광지인 노이슈반슈타인성 인근이었다. 퓌센에 숙박업소가 많은 것은 이 성 때문이었다.


일행은 삼삼오오로 나눠 노이슈반슈타인성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산허리로 난 길은 약간의 경사를 이루며 올랐다. 간간이 관광객을 태운 쌍두마차가 지나쳤다. 앞서기니 뒤서거니 하는 관광객 가운데는 한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30여분을 걸어 굽이길을 도니 성외곽이 드러났다. 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든 성벽은 견고해보였다. 그곳에서 일행은 성 안내가 시작되기까지 남은 10여분 동안 경치좋은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노이슈반슈타인성 하면 기본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성을 지은 루드비히 2세는 18세에 독일 남부 바이에른 왕이 되었다. 당대 음악가인 바그너를 몹시 좋아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독신으로 살다가 41세에 의문사 했다. 월트디즈니가 디즈니랜드를 건축할 때 모델로 삼았다. 루드비히가 백조를 좋아해 백조의 성으로도 불린다.’

잠시 후 성 안내원을 따라 일행은 성안을 구경했다. 안내원은 한 층 한 층, 한 방 한 방 돌며 성의 내력과 벽화 등을 설명했다. 그 설명이 닿는 내부는 어느 곳 하나 고된 노동이 스미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성 안을 돌면서 내 관심사는 정작 성 안보다는 바깥의 풍경이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녹색 평원. 그 평원을

가르며 반듯하게 난 도로들, 평원들 사이로 점점이 박힌 나무들과 주택, 창고들… 그것이 오히려 눈길을 붙잡았다. 한 층에 올라 경치를 보고는 반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또다시 한 층을 오르면 전 층보다 좀더 높은 곳에서 시야가 펼쳐지니 사진을 자시 찍어야 했다. 이러기를 반복하며 동일한 곳의 풍경을 몇 차례 찍는 수고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수고는 이 경치를 즐기는데 기꺼이 낼 수 있는 번거로움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구경하고서는 성을 나왔다. 잠시 일행을 기다린 후 하산했다. 성의 외곽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계곡의 다리를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주차장까지 하산하고 나니 비가 내렸다. 일찍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둘러보고 나온 이들은 어느새 주차장 근처에 있는 호엔슈반가성까지 갔다 온 터였다.   


11시 40분, 일행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가는 길에 다시 비를 만났다. 여전히 앞좌석은 주변을 관광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였다. 어느 길가를 지날 때 버스는 서행했다. 앞쪽에 자전거 세 대가 하이킹 중이었는데 지나쳐 가기엔 길 폭이 좁았다. 무엇보다 굽이길이라 앞쪽에서 오는 차를 볼 수 없었다. 버스는 3~4분가량을 자전거 뒤를 쫓다 곧은길이 나오자 비로소 추월했다.
그때부터 나는 운전기사 옆 안내원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운전기사가 안전을 우려할까봐 자리에 앉자마자 안전벨트부터 맸다. 달리는 버스에서 사진찍기엔 이보다 좋은 자리가 없다. 버스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 들판을 달렸다. 들판은 녹색평원 그 자체였다. 이 평원을 돌보기에도 만만찮은 인력이 들 것 같은데도 가는 곳마다 깔끔했다.


다시 두어 시간을 달려 오후 1시 30분에 버스는 어느 소도시에 정차했다. 그곳에서 한 시간 안에 점심을 먹고 모

이기로 했다. 일행들은 조별로 또는 개별적으로 흩어졌다. 내가 속한 2조는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몇 군데를 기웃거리다가 2층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음료로 맥주를 주문했다. 이번에도 음식주문은 네이버강과 이 선생이 상의해서 제안했고, 언제나처럼 조장과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돼지고기 요리 등도 함께 주문했다. 감자튀김은 식사로 나왔지만 안주로도 맞춤이었다. 그동안 아껴둔 고추장까지 더해지니 낮술이 가진 여유로움에 입맛까지 달라붙었다.


한 시간 후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랐다. 며칠간의 피곤함에 맥주 기운이 겹쳐져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수업, 관광, 폭넓은 인간관계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완충지대는 버스였다. 버스에서 잠을 자야 수업과 관광, 관계의 욕구들이 서로 조화가 가능했다.


두어 시간 만에 잠에서 깨니 어느새 하늘은 개었다. 날씨가 갠 것인지, 지역이 바뀌어 비가 안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모처럼 본 맑은 하늘이었다. 이번 길 역시 곳곳에서 지평선이 트인 풍경이었다.

오후 6시가 조금 못돼 도착한 도시는 하루를 묵을 하이델베르그였다. 도로 옆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젊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모습이 도시의 첫인상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남은 하루’를 시작했다. 일행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그룹별로 낯선 도시를 즐긴 후 밤 9시에 예약한 한국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 조는 다시 네이버강의 가이드를 받으며 10여 명과 함께 도시를 산책했다. 비스마르크공원은 비스마르크의 역사적 무게에 비하면 규모도 적고 두드러진 특징도 찾기 힘들었다. 당초 보행자 전용도로인 하우프크거리를 따라 걸으려다가 네이버강의 제안으로 네카강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네카강 다리를 건너며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윽고 지도를 보며 안내하던 네이버 강을 따라 일행은 ‘철학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골목에
접어들었다. 차가 서로 교차할 정도의 폭인 골목은 시작부터 오르막이었다. 10여분쯤 오르자 일행 가운데 몇몇은 고난의 철학자의 길은 이쯤하면 됬다고 하며 오른쪽으로 난 내리막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머지 다섯 명은 오던 길을 계속 따라갔다.


내려간 일행과 헤어지고 채 1분도 되지 않아 평지길이 나타났다. 잠시 후엔 네카강 건너편으로 강을 따라 펼쳐진 하이델베르그의 옛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전망좋은 길이었다. 돔 모양의 성당지붕 서너 개가 시가지 곳곳에 자리 잡았다. 울긋불긋한 지붕들로 이뤄진 건물들은 한 눈에 보아도 옛 건물로 이뤄진 도시라는 게 짐작됐다. 시가지 왼편 산자락으로는 옛 성이 보였다.
길은 산중턱을 가르며 이어졌다. 그때마다 시가지를 좀더 잘 볼 수 있도록 시야도 크게트였다. 전망이 좋은 곳에는 삼삼오오로 모여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많았다. 처음에 오르막을 오를 때 의아했던 ‘철학자의 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탁 트인 전망과 산자락의 맑은 공기가 사유하고 성찰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자연조건을 이루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산책 나온 한국인 여성을 만났다. 알고 보니 독일인과 결혼해 하이델베르그에서
살고 있는 이었다. 그 여성에게서 몇 가지 관광정보를 얻었다. 그중에는 오늘 저녁에 불꽃놀이가 열린다는 얘기도 있었다. 저녁식사 약속 장소까지 갈 수 있는 길을 묻고는 헤어졌다.
우리 일행은
철학자의 길을 걷는 내내 이 좋은 경치를 놓치고 먼저 내려간 일행을 안타까워했다. 잠시 하산길을 찾지 못해 조깅하던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 들어선 하산길 역시 인상적이었다. 길 옆엔 돌담이 사람 키를 훌쩍 넘어 마치 미로를 걷는 느낌이었다. 더욱이 사람이 마주치면 서로 겨우 비껴설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네카강가로 내려오니 저녁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빠듯해 보였다. 조금 마음이 급해졌으나 달리 방법도 없었다. 믿는 건 두 다리 뿐이었다. 다리를 건너 구 시가지로 들어서니 시청앞 광장은 술집으로 변해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파라솔 아래서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잠시 뒤 저녁약속장소로 가니 우리 일행들이 모두 와 있었다. 저녁은 훈련과정에서 처음 맛보는 한국음식이었다. 그러나 주 메뉴였던 전골은 한국에서 느꼈던 맛은 아니었다. 다행히 깍두기는 제 맛을 발휘했고, 쌀밥을 먹어보았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우리 조 일행은 서둘러 강가로 항했다.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강가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불꽃놀이를 잘 보려면 좀더 내려가야 했다. 그때부터 강을 따라 서둘러 걸었다. 한 5분쯤 지나자 갑자기 뒤쪽에서 펑 하는 소리가 울렸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더 내려가 전망좋은 곳을 찾고 싶었지만, 움직일 시간이 없었다.

10여분 남짓 동안 화려한 불꽃은 하이델베르그의 하늘을 수놓았다. 정교함과 화려함은 한국에서 보았던 불꽃보다 덜했지만 이국에서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억이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불꽃놀이를 즐기는 그들의 의상이었다. 물론 평상복차림도 있었지만 일부는 성장을 하고(마치 파티에 참석한 것처럼)서 불꽃놀이를 즐기는 점이었다.


볼꽃놀이를 구경하고는 2조 모두와 다른 조 3명이 한데 어울려 숙소 근처 맥주집에 자리잡았다. 하루하루의 밤을 허투루 보낼 수 없고 더욱이 독일에 왔으니 소세지 안주에 맥주를 마셔봐야 한
다는 자발적 집단최면의 결과였다. 노천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종업원에게 파라솔을 켜 달라고 부탁하느라 잠시 수선을 떨었다. 잠시 뒤 옆 테이블에 있던 독일 남자 한 명이 비가 그쳤다며 호들갑을 떨던 우리를 장난스레 쳐다봤다. 그를 보며 나 역시 깔깔거리고 웃었다. 이제는 오락가락하는 비의 변덕에는 충분히 익숙했다. 

밤 12시가 넘어 일행은 숙소로 돌아왔다. 토요일 하루가 이렇게 마감되었다. (7월 12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