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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두번째 유럽 10 - 그냥 거기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부담없는 하루가 열렸다. 오후 3시까지는 각자 자유기간이었다.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일행은 다시 여정을 나섰다. 여정은 체력과 상관없이 지속될 일이었다. 매일 아침 계시처럼 “지금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한국에서의 하루라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유럽에서의 하루는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라는 점이 명확했다. 그래서 더욱 그 계시는 묵계였다. 일행은 이제 어느 정도 굳어졌다.

강 선생이 빠진 자리를 민 선생이 보강한 2조 그대로였다. 민 선생의 가이드를 받으며 세느강변으로 먼저 향했다. 세느강변 역시 명성보다는 초라했다. 강변 주변에서 그리 잘 정비도 있지 않았다. 다만 그곳까지 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옛 궁들이 웅장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세느강 주변을 돌던 일행은 개선문을 찾아 갔다. 그 와중에서 다른 일행을 만났다. 정 선생을 비롯해 네 명의 일행들이 개선문 근처에서 서서이고 있었다. 이들은 곧 오르쉐 미술관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숙소에서 보았지만 이 낯선 도시에서 불현듯 만나는 게 신기해 서로들 반갑게 만났다.

그들 일행과 헤어지고 우리 일행은 개선문 근처에 가서 파리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이층에 자라를 잡고 난 버스는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어젯밤에 에펠탑을 보았던 광장을 지났고 아침에 걸었던 알렉산드로3세 다리도 건넜다. 버스는 노트르담 성당을 지나 오르쉐 미술관 앞에 내렸다. 오르쉐 미술관에서는 두어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는 미술작품 보다는 그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기 미술관의 건축물이 더 당겼다. 기차역을 개조했다는 역사는 두고라도 중앙 내부를 차지한 빈 공간과 천장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미술관의 야외 휴식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본 세느강과 파리의 풍경은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어제 저녁에 있었던 몽마르뜨 언덕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오르쉐 미술관을 나오자 오후 1시가 되었다. 오후 3시까지 호텔로 돌아가야 하니 2시간 정도가 남은 셈이다. 미술관에서 호텔로 가는 교통편을 찾자니 여유치 않았다. 결국 고심끝에 택시를 탔다. 물론 나름 이유 있는 근거도 만들었다. 버스, 지하철, 기차 모두 타 보았는데 택시만 아직 못 탔다는 거였다. 미술관에서 호텔은 그리 멀지 않았다.

우리는 호텔 근처에서 내린 후 ‘귀빈’ 한국 식당을 찾아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그 식당은 한국식에 가깝게 음식을 만들었다. 하이델베르그의 한국식 식당에 비하면 훌륭한 맛이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한국식으로 한 것도 의미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5분 남짓 호텔까지 걸어가니 3시가 가까웠다.
3시가 조금 넘은 때, 토레 박사는 이번 교육훈련의 마지막 총정리 시간을 가졌다. 수업은 달리 강의실이 없어서 호텔에 있는 야외 카페에서 진행했다. 그동안의 강의에 대한 총평과 종합 질문을 받았다. 서너 개의 질문이 있는 후에 투레박사는 전체 일행에게 수료증을 나눠 주었다.


4시쯤 되자 일행은 버스를 타고 파리 샤를드골 공항으로 향했다. 버스는 시내를 채 빠져 나가기전에 교통체증에 막혀 버렸다. 도중에 투레박사는 우리와 작별인사를 하고 내렸다. 오늘 다시 마스트리히트로 돌아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6시가 조금 넘어 버스는 샤를드골 공항에 우리 일행을 내려줬다. 공항에서 티켓을 찾고 들어가는 동안 몸수색이 심했다. 승객에 따라서는 신발까지 벗은 경우도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다시 한번 검색대에 통과시켜야 했다. 비행기 탑승은 8시 50분부터 시작되니 아직 두어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아직 선물을 구입하지 못한 이들은 면세점에 들러 선물로 적당한 물건을 구경했다. 30여분 남짓 쵸콜릿 가게와 와인가게를 들러 몇 가지를 구입하고는 탑승구 앞에 일찌감치 와 있었다. 그곳에서 약 한 시간 남짓 앉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9박 10일간 보낸 날들을 돌아보면 하루하루가 충만했지만, 그 시간들은 이제 모두 어제라는 시간으로 압축돼 버렸다.

9시 30분 비행기는 샤를드골 공항을 이륙했다. 정말로 유럽과 작별하는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지루함이 덜했다. 아니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빨랐다. 내 좌석 옆에는 정 선생이 앉았다. 정 선생과 맥주를 함께 주문했다. 영화를 한편 볼까 했으나 곧장 나온 식사를 먹고는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어느새 두 번째 식사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비행기에서 착륙을 준비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파리와 한국과의 시차가 7시간이 있어서 한국에 도착하니 7월 17일 오후 3시가 넘었다.

모든 일행이 무사히 나온 것을 확인하고는 공항에서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노고에 감사하는 악수와 인사를 건네고는 하나둘 인천 공항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