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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게와 눈싸움 한판 붙다

 

우연은 때론 긴장을 부른다. 그날은 게나 나나 얘기치 못한 만남이었다.  그 순간 나와 그 게는 긴장 관계로 엮였다.   


언뜻 보면 흔한 강이었지만, 서해로부터 바닷물이 밀물과 썰물로 드나드는 곳. 그곳은 강이지만, 바다기도 했다. 그 하구 한 자락에 다시 샛길처럼 시냇물이 흘렀다.


내가 만난 게는 그 시냇물과 4차선 도로 사이에 놓인 보도블록 위였다. 통상 자전거를 타고 가던 이가 엄지손가락만한 게 한 마리가 눈에 들어 올 리는 없다. 그런데 그 게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스쳐 지나친 나는 한 5미터쯤을 가다가 자전거를 되돌렸다. 녀석을 구경하고 싶었다. 하구로부터는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인데 어떻게 이 길가에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녀석의 사진을 한 장쯤 찍어두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자전거를 세워두고 녀석에게 다가서는 순간부터 녀석과 나 사이엔 단지 사진 한 장으로 끝나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내가 다가서자 녀석은 여느 게처럼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발을 부지런히 놀렸다. 그런데… 녀석의 움직임은 줄행랑이 아니었다. 대개 갯벌에서 만난 - 10여분 전에 하구에서 보았던 게는 인기척을 느끼는 순간 쏜살같이 제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 이 녀석은 줄행랑이 아니라 내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녀석은 풀숲에 몸을 숨겼다. 녀석의 몸 색깔과 비슷한 풀숲을 보호색으로 활용했다. 녀석을 쫓던 나는 잠시 시선

을 놓쳤다. 녀석은 숨을 죽인 듯이 미동도 없었다. 마침내 그 풀잎사귀 위에 서 있던 녀석을 발견하는 순간, 저절로 웃음끼가 흘렀다. 그것이 녀석에게는 생존을 위한 전략일지라도 내게는 호기심의 시작이었다.


잠시 후 내가 좀더 접근하자 녀석은 이번에도 뒤로 후퇴했다. 그러나 역시 멀리 도망가기보다는 몸을 숨기는 정도였다.

이번엔 나를 앞에 두고 제법 자란 풀줄기를 방패삼아 몸을 숨겼다. 나와 녀석의 가운데 놓인 풀줄기를 기준으로 내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녀석은 왼쪽으로, 내가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녀석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런 신경전은 서너 차례 이어졌다.


이번엔 나도 머리를 썼다. 아예 몸을 크게 돌려 녀석의 뒤쪽으로 발을 놓았다. 인도 쪽으로 녀석을 끌어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생각대로 녀석은 인도 보도블록 위로 나왔다. 그러나 역시 줄행랑을 놓치는 않았다. 대여섯 걸음을 내걸을 뿐, 여전히 두 앞발을 치켜세운 채 정면으로 응시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각도를 돌리면 그에 따라 녀석의 발걸음도 잽싸게 움직여 마주보는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다.


그쯤에서 나는 게와의 신경전을 그만 두었다. 그 마주선 자세가 녀석에겐 사뭇 진지했다. 긴장감도 느껴졌다. 그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상대에 대한 최대한의 대응이었을 것이다. 그 긴장을 더 이상 호기심만으로 이끌만한 마음이 내겐 없었다. 그럴 용기도 없었다.


게를 발견한 인도는 시냇가 바로 근처였지만, 그 게가 그 시냇가로부터 왔다고 추측할 수 없는 지형이었다. 시냇가는 인도보다 2미터 정도는 아래였고, 그 높이만큼 시멘트벽이 수직으로 놓였다. 따라서 시냇가에서 게가 살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시냇가에서 나왔다면 이 수직 벽을 어떻게 올랐을지도 수수께끼였다.


그 수수께끼의 게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두 발을 한껏 쳐들고 낯선 이를 경계하던 그 몇 분. 7월 여름의 아침은 어김없이 더운 기운과 더불어 열리고 있었다. (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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