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 옴마, 일하는 거 봐라. 세상에~”
“인자 우리 식구여~. (옆에 선 일행을 보며) 긍께 잘 대흐란 말이시 식구맹키로.”
8월 8일 강진군 대구면 청자도요지에서 열린 청자축제. 그곳에서 펼쳐진 결혼이주여성 사진전을 찾은 관람객들은 삼삼오오로 모인 일행들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드디어 전시회가 열렸다. 광주사무소에서 이주인권사진전 사업을 이월받은 지 100일 가량 지났다. 사진작가에게 사진을 의뢰하고 그것을 받아 전시회를 여는 것이니 '어렵다' 할 만한 일은 없었다. 소장이 잡아 준 전시회장을 한 번 방문하는 일, 이젤을 구입하는 일 등은 그냥저냥 하는 일들이다. 리플릿을 만드는 일, 현수막을 만드는 일 등도 이만저만한 일들이다. 그런저런 일감에서 도드라진, 그렇지만 역시 '어렵다'고 말하기엔 엄살인 일이 두 가지 일이 있었다.
그 두 가지 일 가운데 한 가지는 완료되었고, 다른 한 가지는 청자축제장에서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1.
청자축제 행사장 인도쪽으로 내건 사진에 끌려 전시장 입구까지 온 관람객 가운데 절반 가량은 전시장안으로 내쳐 걸음을 옮겼다. 때로는 고개를 숙여 제목을 읽고 우산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공감을 나타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관람했다. 전시회장에 격식이 없는 만큼 관람객들과의 거리는 좁았다.
'품격있다'는 여느 전시장보다 이처럼 들락날락거리며 슬핏슬핏 관람하는 전시회가 더 매력있다. 애초 따로 홍보비용도 책정되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찾아가는' 전시를 고려했다. 그에 맞는 전시장을 물색했는데, 그런 면에서 청자축제장은 맞춤이었다.
사진전과 관람객과의 거리를 좁힌 데는 ‘지역’도 한몫했다. 장흥에서 온 관람객은 사진에 나온 한 이주여성의 남 편을 알아보고는,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환석아! 청자축제에 한번 와야것다. 너그 가족사진이 여그 있그만.”
어느 여성 관람객은 사진에 찍힌 아이들 중 한 아이를 알은 채 했다. 공부를 가르치는 아이라 했다. 두어 시간 뒤에는 한 초등학생이 자기가 아는 친구라며 또다른 사진 속 아이를 보며 반가워했다. 지역은 넓어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관계는 좁았다. 향후 열리게 될 광주 등 대도시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 일들이다. 지역에서는 '우리 일'이지만 대도시에서는 '남의 일'이 될 것이다.
결혼이주여성 사진전은 청자축제장 전체 규모로 보면 제법 넓게 자리 잡았다. 행사장 가운데에 놓인 널찍한 몽골텐트 세 개를 차지했다. 6월초 청자축제를 기획하던 강진군청 축제경영팀에 방문해 주문한 사항이었다. 자칫 퇴자를 놓자면 수많은 이유가 있었을 법 했지만, 전시회장이 차지한 공간으로 봐서는 많은 배려가 뭉어났다.
그럼에도 이젤을 이용해 전시한 사진은 46점이었다. 4점은 공간이 좁아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여름비가 수시로 내리는 날이라 비가 와도 걱정이다.
2.
전시장 안쪽 벽면엔 전시회 제목인 <인자 우리 식구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 제목짓기가 바로 '도드라진, 그렇지만 어렵다고 말하기엔 엄살인' 일이었다.
통상 전시회를 준비한다면 '이주여성 사진전' 그 자체를 제목으로 간다. 그런데 이런 제목은 밋밋하다. 주제와 부제가 함께 열거되는 게 좀더 의미가 있다 싶었다. 그래야 내년에 이주여성 사진전을 또 한다 해도 제목에서 뭔가 차이를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제목에 대한 고민은 전시회를 맡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감기간이 많이 남을수록 , 고민은 그와 반비례해 적은 법. 정작 제목에 대한 고민은 7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다.
다른 사진전의 제목을 들여다보러 인터넷 써핑을 하기도 하고, 이주여성 관련 자료들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진작가가 사진설명글과 작가의 말을 보내주면 거기에서 힌트를 얻자고 접어 두었다. 그때까지는 동료들에게 받은 문구들과 함께 낙서처럼 적어둔 몇 마디만이 한글파일에 달라붙어 있었다.
"잘 살아야 할 건디, 먼데서 시집와서..."
아름다운 동행
지구촌에서 우린 한가족
따뜻한 눈길로 사랑을 나눠요.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7월 말 사진작가에게 글을 받은 후에도 뚜렷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겨우 '친구가 필요해요'라는 한 줄이 더 추가된 정도였다.
전시회가 다음주로 다가왔으나 제목이 잡히지 않으니, 다른 여타의 부속물이 진행되지 않았다. 리플렛은 원고는 넘겼으니 마지막에 제목만 붙이면 된다해도, 현수막은 제목이 정해지지 않아 만들 수 없었다.
고민은 깊어갔지만, 결과는 부실한 채 전시회가 열리는 주의 월요일을 맞았다. 이제 전시회까지는 5일 남았다. 그동안 리플렛은 두어 번 내용을 수정했다. 우선은 <친구가 필요해요>와 <인자 우리 식구여> 두 가지 제목으로 리플렛 다지인을 주문했다. 디자이너는 마감기한을 화요일 오후 3시까지 주었다.
드디어 화요일이 다가왔다. 몇 가지 제목이 한글 파일에 덧붙었다.
상생(相生)의 꽃
경계, 희망으로 꽃피우다
나그네라 아니라 가족입니다
힘내라! 아시아, 함께해요! 다문화
마음이 딱 옮겨지지 않았다. 이건 아니지만 달리 대안도 없는 딱한 시간이 이어졌다. 이쯤에서 다시 내가 일할 때 기준처럼 삼는 마감정신이 발동했다.
'마감을 넘긴 기사는 기사가 아니다.'
<'친구가 필요해요>와 <인자 우리 식구여>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로 가기로 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많은 이들이 후자로 좁혀졌다. 오후 2시 무렵, 디자이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진전 제목 <인자 우리 식구여>로 결정했어요. 이걸로 진행해 주세요."
먼 길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제자리가 본디 그 자리가 아닌 것은 잘 안다.
'인자 우리 식구여 '
전라도 사투리다. 이제 우리 식구가 되었으니 잘 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굳이 그 유명한 경상도 말로 하자면 '우리가 남이가?'정도다.두 말 모두 공동체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식구'라는 의미에는 포근함, 즉 정이 담겨 있다.
이는 실은 제목을 고민하던 초반에 적어두었다. 당시엔 '인자 우리 식군디'였다. '식구여'는 '식구지' 정도로 풀이돼 현재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지만, '식군디'에는 '식구니까'라는 의미로 풀이돼 함께 하겠다는 의미가 좀더 묻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사투리 그 자체에 있었다. 사투리는 대개 억양과 함께 듣지 않으면 글만으로는 그 맛을 살릴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식군디'는 '식구인데'의 줄임말임을 선뜻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듯했다. 결국 이런 점을 보완 하기 위해 비록 분위기에서 약간 아쉽더라도 전달력이 높은 '식구여'로 결정했다.
제목에 대한 효과는 전시 첫날부터 나타났다. 주로 지역에 사시는 어른들이 많이 찾았는데, 대체로 제목을 두고 한 마디씩 건넸다.
"외국서 결혼온 여자들 있잖여. 인자 우리 식구라는 얘기제."
통로로 내놓은 사진을 보고 들어온 이들이 제목을 보며 친근감을 느끼는 듯했다. 더욱이 사투리를 글로 쓸 때 맛이 반감된다는 걱정도 사라졌다. 오히려 농촌에서 오신 분들일수록 저마다의 사투리 억양을 곁들여 제목을 한두번씩 읊곤했는데, 그때마다 제목이 주는 맛이 제대로 되살아났다.
3.
'도드라진, 그렇지만 어렵다고 말하기엔 엄살인' 두 번째 일은 전시장 도우미였다. 장시장은 사무소가 있는 광주에서 두 시간 가량 떨어진 곳이다. 또한 다른 일들도 있다보니 매일 전시장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누군가전시장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다. 또한 리플렛도 나눠주고 아침저녁으로는 텐트를 걷거나 내리는 일도 해야 한다.
처음엔 강진군에 자원봉사자를 부탁했다. 그러나 강진군에서도 4일 정도만 가능하다고 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 하루 3만원씩 주기로 하고 사람을 구했다. 그것도 한 사람이 계속 할 수가 없어 중간에 교체 될 상황이다.
퇴근 시간도 문제다. 청자축제는 매일 밤 10시까지 행사가 열린다. 그때까지 사전전 관람객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전시장 도우미는 6시가 되면 퇴근해야 한다. 광주에서 보낸 이들도 버스 시간 때문에 그 쯤에 퇴근한다. 그렇다고 6시에 전시장 텐트를 내리는 것도 애매했다. 결국 고민하다가 옆 텐트의 전시장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밤 9시가 되면 텐트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6시부터 9시까지 전시장은 도움이 없이 텅 비워둘 수 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강진군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다문화사회를 맞아 결혼이주여성에게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차별을 사전예방하고 인권감수성 향상의 기회를 갖자는데 그 취지가 있다.
이번 전시회는 청자축제장에 들어선 다른 부스들과 비교하면 ‘별종’이다. 대부분의 부스가 청자 홍보와 지역특산물 홍보에 집중하는데 이주여성 사진전은 '사람'을 얘기하고 있다. 다행히 사진전에 오는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별종'보다는 '사람'에 더 반가워하는 듯 했다. (0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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