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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따뜻한, 큰 세상 어느 날 외국인 노동자가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돈은 어디서 났습니까?” “실은 손가락이 잘려서 보상받은 겁니다.” 노동자는 태연하게 말했으나, 함께 있던 이는 울컥 눈물이 솟았습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박천응 목사의 가슴에 새겨진 작은이야기입니다. 그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이 아닌 ‘주체’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 것도 그처럼 작은 사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97년 2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교회 문 앞에서 신문지를 덮은 채 자고 있었습니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한 상담을 하려고 노동자센터를 찾아 서울에서 안산까지 걸어온 나이지리아 노동자 였습니다. 박 목사는 그에게서 예수의 잔상을 보았습니다. ‘예수가 외국인 노동자로 다시 세상에 와 사회운동 한다는 나를 각성.. 더보기
유일한 항변 2003년 5월, 새벽부터 중국대사관 앞에는 불법체류 자진신고를 위해 여권을 재발급 받으려는 수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줄 맞춰 앉아 있었습니다. 경찰은 질서유지를 위해 통제에 나섰습니다. "모두 앉아! 당신 왜 일어섰어? 당장 집으로 가!" 다음날엔 번호표를 나눠주던 또 다른 경찰이 외쳤습니다. "서류를 안 갖고 온 새끼들은 당장 나와! 당신들 진짜 개새끼처럼 굴 꺼야?“ 한 경찰서에도 여권분실신고를 하려고 수많은 조선족동포들이 몰렸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워낙 저들끼리 싸우기를 좋아해요?" ‘질서유지’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경찰의 말끝에는 ‘중국’ ‘중국’하면서 욕이 뒤따랐습니다. 그 안에 있던 한 조선족 동포는 욕이 울컥거렸지만 참아야 했습니다. 중국 사람이 모두 그런 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더보기
세상의 바깥 파이란. 어머니는 죽고 마지막 핏줄인 이모는 캐나다로 떠나버려, 불법체류자로 인천 부둣가에 정박했습니다. 삶을 꾸릴 수단으로 위장 결혼을 선택한 그는 낯설고 물설고 말설은 강원도의 어느 세탁소로 팔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랠 한 남자를 향한 사랑이 깊어갔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강재씨 당신 덕분에 여기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보다 먼저 허물어진 것은 몸이었습니다. 사랑보다 더 깊고 더 빠른 것은 폐병이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젤로 친절하고 고맙댄다. 근데… 씨발… 나 보고 어떡하라고….“ 단지 돈이 필요해 서류상 남편이었던 강재가 흐느낀 때는, 그에게 의지했던 한 여인이 이생을 떠난 후였습니다. 오락실에서 동전이나 뜯어쓰는 ‘보잘것없는’ 강재는 그때서야 낯..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