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이 원고를 막다
16일 새벽 4시 40분. 이제서야 원고를 끝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 4시’는 아니지만, 긴긴 날들이었다. 이제 원고를 편집장 책상에 올려놓고 퇴근하면 된다. 그런데 기분은 별로 좋지 않다.
원고가 맘에 안 든다. 애초 기획에서 많이 틀어졌다. 아마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지도 모른다. 마지막 원고를 쓰면서 다른 쓰고 싶었다.
기분이 꿀꿀하다. 막 울고 싶기도 한 것 같고. 정말 울어야 할 것 같은데, 봄을 타고 있다. 비록 꽃다운 꽃을 볼 시간이 없었지만 점심시간에 잠깐 흘낏 봄을 본다. 조그만 공원에 핀 꽃이며, 건물 뒤편에 한 그루 서 있는 벚꽃나무에도 봄은 내려앉았다. 거리를 지나가는 아가씨들 옷차림에서도 어렵지 않게 봄을 느낀다.
마음은 푹 가라앉아 있다. 왜? 알 것 같다. 풀리지 않는 게 있으니. 이번 마감 기간 동안 내내 내 머리 한 구석에 똬리 틀고 앉아 있던 그 생각. 이제 점점 그 답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초조해하는 것이다. 원고가 쓰기 싫었던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내 뜻과 다른 기획을 맞춰야 하는 것에서 생긴 짜증이 아닌, 내 안의 그 생각 때문에 불안이, 곤란함이 원고 쓰는 일을 귀찮게 만들어 버렸다. (1999.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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