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끝내고 텅 빈 인사동 거리를 따라 버스를 타러 오는 길, 발걸음이 가볍다. 밤공기가 상쾌하다.
제주인권 학술대회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인사동 ‘꽃을 던지고 싶다’에서 저녁 6시에 만났는데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주한미군운동본부 유진선배, 변호사 금실누나, 민가협 총무 규선누나에 뒤늦게 함께 한 인권운동사랑방 경내까지. 시사저널 선배가 함께 하기로 했는데, 일정이 엇갈렸나 보다. 가톨릭대 이삼성 교수도 오셔야 하는데, 건강이 안 좋아 함께 못 하셨다.
지난번 모임도 그렇지만, 주제는 없다. 그냥 만나는 거다. 이들 사회적 공인들이 아무런 이슈없이 만난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늘 만나면 얘깃거리는 만들어진다.
오늘도 그랬다. 사람들 각자 살아온 얘기에, 이렇게 만난 계기가 되었던 제주도 학술대회 이야기. 규선 누나와 금실 누나가 인연을 맺게 된 1일 감옥체험, 유진 선배가 말한 사회운동 단체의 어려움 등등. 이런 얘기들이 때론 웃음 속에, 때론 고민으로 흘러나온다.
한참 운동 얘기를 하다가 한국의 운동사를 정리하며 자기비판을 하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가 나왔다. 한참 고민하던 금실 누나가 이 내용으로 세미나를 만들어 보잔다. 운동에 대한 자기반성. 한 20여분 얘기를 하다가 결국 해 보기로 했다. 나도 거들기로 했다. 뭐 능력 되는대로 전화라도 부지런히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모인 사람들이 달라지니 ‘수다’도 달라지게 된다. 이게 재밌다. 오늘 만난 공인들이 공식적으로 모이면 공적인 얘기들만 오가다 보니 자칫 지루하게 되고, 말하는 사람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자리는 그냥 평소 얘기를 하면 된다. 다시 연애 얘기. 이른바 ‘불륜’얘긴데 ‘불륜’이란 단어는 나오질 않았다. 그러고도 얘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수다의 질적 개선.’ 이게 요즘 생활의 고민이다. 대학교 후배들을 만날 때도 이걸 이뤄 보고 싶다. <백두산> 모임도 그렇고. 수다를 떨고도 느낌이 남을 수 있는 그런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199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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