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말>에 들어온 지 200일이다. 지난 5, 6월호는 스스로도 위로할게 없다. 문득문득 불안을 느낀다. 5개월 남은 계약기간이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정규직으로 들어왔더라도 실력이 안 된다면 똑같다. 결과까지도. - 학원강사로 시작한 애초 내 사회생활은 그랬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능력이 없으면 물러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부분은 별로 겁날게 없다.
불안의 근원은 나다. 나는 뭔데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는가. 이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도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한다면 내가 쓰려는, 내가 하려는 일들은 결국 현실 도피자가 스스로 만든 감옥이 아닐까. 그곳에서 낙서를 하며 스스로 그것이라도 한다고 자위하려는 그런 것을 꿈꾸고 있지는 않는지. 그런 자격지심에 쌓여 살까봐.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미아. 미아가 되도 확실한 미아가 되자. 할 때까지는 해보자는 것. 그래서 쓴다. <말> 200일 생활평가서.
처음에 <말>에 들어왔을 때, 자신이 있었다. <말>에서 배우겠다는 생각보다 <말>을 바꾸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재미있는 <말>을 만들자. 독자들이 운동에 대한 의무감으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구입하는 <말>을 만들자. 특히 대학생들이 보는 <말>을 만들자. 내 딴엔 고민도 많았다. 이 시대 진보잡지는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는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등.
이런 생각으로 기획안을 냈다. 다른 기자들이 모두 정치 사회 분야 기획안을 내는데, 나마저 그쪽 기획안을 내야 하나. 나 하나 정도는 다른 쪽을 내면 안될까. 세상을 좀 더 색다르게 해석하고 싶었다. 그 색다른 해석의 바탕엔 아직 설익은 내 ‘생각'이 있었다.
처음 입사해 연세대 춤동아리 <하리>를 취재했던 것도 그들의 자유로움을 주목하고자 했다. 투쟁전선의 많은 부분이 ‘생활전' 양상을 띠는 판에 대오를 갖춘 싸움도 중요하지만, 자유로움으로 일탈하는 젊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저항의 방법을 좀 더 열고 싶었고, 저항의 대상을 넓히고 싶었다. 내가 결혼제도에 대해 늘 주절거리듯이.
그러나 이 생각은 200일이 지난 이후, 수정하고 있다. 고개를 숙인다. 내가 생각하는 <말>은 당분간 접어 두고, 가능하면 일단 얘기를 듣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말>, 지금까지 선배들이 가꿔온 <말>을 듣기로 한다. 지금의 <말>을 정확히 찾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내 안의 <말>을 차곡차곡 눌러두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내안의 <말>이 굳건하게 자라게 하려면 지금의 <말>안에 씨를 뿌려야 할 것 같다.
월간지에 맞는 기사를 배우는 것이 생각보다 더디었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법 등 글 구성력이 미흡했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도 글 구성하는데 장애요소다. 조사며, 가끔씩 드러나는 비문이며, 장난끼가 남은 문장투며…. 그래서 깔끔하지 못하다. 그나마 스스로 다행스러워 하는 것은 마감 때마다 한두 가지씩 배우는 게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현장감을 살리는 게 중요했다. 지난 번 대학가스타의 경우 현장감을 살릴 만한 취재가 이뤄지지 못해 글쓰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취재원을 드러내줄 수 있는 현장을 잡아야 글이 쉽게 풀린다. 캠라의 취재원과는 다른 영역이다 보니 이에 대한 개척도 서둘러 해야 한다.
계약직이므로 5개월 남았다. 그 동안은 여러 이유들을 거추장스레 댈 수 있겠지만, 실패했다. 능력 없는 용기는 풍차날개에 끼여 풍차와 함께 돌 수 밖에 없다. 풍차에게 덤빌 땐 용기보다는 섬세한 관찰이 필요하다.
내게 다른 이들을 설득시킬만한 능력이 없었다. 내 ‘생각'을 검증할 만한 고민도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다. 뭔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게, 멀뚱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지금 쓰는 이 평가는 사실 <말> 생활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내 나이 서른에 대한 평가다. 그 안에 <말>이 있을 뿐이다. (19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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