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앵두 한 그릇
횡성읍에서 취재를 마치고 나오며 시장을 지나쳤다. 여든 살은 돼 보이는 할머니가 빨간 앵두가 담긴 바가지보다 조금 큰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구, 원주로 들어가야지.”
그러자 옆에 난전을 벌인 아줌마들이 한 소리 한다.
“그게 얼마나 된다고 거기까지 가세요”
그럼에도 할머니는 아랑곳없이 휜 허리에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시장을 빠져나갔다. 짐작컨대, 장사가 안 되니 원주로 가겠다는 거였다. 횡성읍에서 원주까지는 20분 정도면 간다. 차비는 왕복 2천원. 얼핏 들여다본 할머니의 그릇 안의 앵두로는 도저히 본전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열심히 운동을 취재하고 다니는데, 그 할머니의 장사란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건지. 이놈의 운동이란 게 현실에서는 왜 이리 맥없어 지는 건지. 더운 날씨에 순진한 애처럼 짜증이 일었다.
6월 10일이다. 1987년으로부터 12년이 지난. (1999.6.10.)
감성 공동체
공교롭게도 <말>에 있는 개띠들은 모두 감방 경험이 없다. 다른 선배나 동료 기자들은 대부분 학교 때 운동을 하다 교도소를 갔다 왔다. 그들은 군대 경험도 없다. 취재기자 중에서 여성이 한 명이고 남성 기자들은 군대 경험이 없는 이들이 대다수인 조직. 그래서인지 <말>은 ‘의외로’ 무질서하다. 이게 군대 문화를 접하지 못한 이들이 지닌 좋은 점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삐딱하게나마 자유로운 개인이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 식구들을 보며 가늠하곤 한다. 그리고 역시 막연하게나마 그 해법을 사람들의 감성에서 찾곤 한다. 어찌 보면 이성공동체보다 감성공동체가 더 이상적인 사회일지도 모른다. (1999.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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