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말> 식구들끼리 모꼬지 가자고 얘기를 했는데 이제야 겨우 이뤄졌다.
나흘 전, 선배와 뚝딱거리며 장소를 정했다. 전화로 산장 방을 예약했다. 사흘 전, 선배는 일정이며 준비물 등 계획을 세웠다.
이틀 전, 몇몇에게 전화를 걸어 준비물 등을 확인했다.
하루 전, 나를 포함해 셋이서 신촌 현대백화점에 들러 장을 봤다. 20만 2천원 어치. 갈비도 사고, 수박, 쌀, 소주, 맥주 등등.
당일. 자가용 세 대로 나눠 13명이 모꼬지를 떠났다. <말> 생활 9개월 만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긴 지난번 래프팅 이후 두 번째다.
목적지인 운악산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4시 30분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예약했던 산장이 말만 산장이지 여관이나 다를 게 없었다. 먼저 왔던 일행이 이를 보고 새로운 장소를 물색했다. 다행히 멋진 장소를 찾았다. 크진 앉지만 축구장도 있고, 족구장, 농구장, 수영장에 계곡까지 있다.
나머지 한 팀이 도착하기도 전에 축구 한 판을 치렀다. 땀에 흠뻑 젖었다. 모처럼 뛰었더니 가슴에 숨이 찼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마지막팀이 한 시간 여를 헤맨 끝에 도착했다. 다시 축구 한 게임. 한 30여분을 신나게 뛰었다. 모두들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여성 동지들이 마련해준 저녁을 먹고 곧장 술자리로 이어졌다. 한쪽에서는 숯불에 고기를 굽고 나머지는 긴 테이블 위로 맥주잔과 소주잔을 돌렸다.
어느 정도 술이 돌자 다시 족구가 이어졌다. 다시 술을 마시고, 이번엔 농구로 이어졌다. 나로선 모처럼 남자들과 어울린 한판이었다. 실컷 땀을 흘렸다. 그럴 기회가 없었다. 밤 한 시가 넘도록 술자리는 이어졌다.
밤 두세 시 무렵, 철원에 사는 독자가 찾아왔다. 다시 술자리가 이어졌다. 술기운이 달아오르자 노래가 시작됐다. 유행가도 좋았고 투쟁가도 상관없었다. 나는 양평블루스를 불렀다. 그런데 구전가요인 이 노래를 동료기자가 알고 있었다. 흥이 더욱 일었다. 노래가 한창 분위기를 돋울 무렵, 민중가요 한 가닥이 흘렀다.
“밤이 깊어 별이 하나 머리 위에 빛나거든, 눈물대신 내 무덤가에 총 한 자루 놓아주오. …”
언젠가 나도 즐겨 불렀던 민중가요였다. 자연스레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었다. 모처럼 <말>다운 분위기가 이는 듯 했다.
새벽 3시 무렵, 모두들 자리를 떠났다. 남은 이는 선배와 나.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은 나로선 그런 대로 버틸 만했다. 다시 30여분 정도 선배와 얘기를 나눴다. 다섯 시 무렵, 술이 떨어졌다. 방에 들어가 잤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은 아침 기운인데 사람들은 모두들 잠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더워서 밖으로 나왔다. 의자를 네 개 포개고 누웠다. 술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8시 무렵 잠이 깼다. 여성 기자가 먼저 깨, 주변을 걷고 있었다.
“산에 가자”
본래 예정대로라면 아침에 일어나 운악산을 올랐어야 했다. 내가 설쳤으니 당연히 올라야 했다. 여성 기자의 한 마디에 일어났다. 방안에 들어가 산에 갈 사람 가자고 외치고는 밖으로 나와 물이며, 과일 등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등산을 떠난 사람은 모두 여섯. 젊은 축들은 대부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걸어 현등사까지 올랐다. 먼저 올라갔던 선배는 볼 수 없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셨던 선배였는데, 술이 깨지 않아 걱정이 되었지만, 혼자 찾아 나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행과 함께 산을 내려오다가 그 선배를 만났다. 다른 길로 오르다가 내려온 길이라고 했다. 11시 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식사를 하고는 1시 무렵 서울로 향했다. 오는 길에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다. 못내 아쉬운 뭔가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지쳐 있었다. 그래도 모처럼 <말>지 다운 분위기도 느끼고 재미있게 놀았다. (199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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