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말>에 내가 쓴 기사는 「저질의원들 꼴 못 봐 내가 총선에 나가겠다」와 「요즘엔 내 쌈짓돈 챙길 여유 없어요」였다. 그런데 이 두 기사에 모두 사연이 있다.
1.
증인출석 요구서
노정환 귀하
국회가 1999년도 국정감사를 실시함에 있어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0조 및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 규정에 의하여 요구서를 발부하오니 아래와 같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만약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하지 아니한 때에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 및 제16조의 규정에 의하여 고발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 출석일시 : 1999년 9월 29일(수) 10:00
2. 출석장소 : 환경부 회의실(국정감사실)
3. 신문요지 : 말지 10월호 인터뷰 기사 관련
대한민국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사무실로 배달된 국회 증인출석요구서 내용이다. 「저질의원들 꼴 못 봐 내가 총선에 나가겠다」는 기사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인터뷰였다. 인터뷰엔 이사장이 국회의원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다. 이 기사를 읽고 환경노동위 국회의원들이 ‘열 받아’, 국정감사에서 공단 이사장을 벼르고 있었다. 이에 이사장은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고 의원들에게 해명했다. 그러자 국회에서는 기사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나를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한 것이다.
몇 군데 전화를 해, 증인 채택 과정을 알아보았다. 인터뷰기사에서 직접 비판을 당한 한 의원이 기사에 “유감”이 있어서 기자를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했단다. 이 사실을 알고 편집장은 그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강하게 항의했다. 기자가 기사로 얘길 했으면 됐지, 그 기사를 확인한다고 기자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환경노동위는 이사장을 해임시키지 않으면, 환경노동위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나온 모양이었다.
이사장 인터뷰는 애초 이런 방식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터뷰 때 이사장이 내뱉는 얘기들이 무척 직설적이었다. 그는 정부부서와 마찰을 빚은 사안에 대해서도 해당 부서를 강하게 비판했고,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직설적인 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내년에 국회의원에 나간다는 포부도 밝혔다. 인터뷰는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획을 변경했다. 인터뷰를 그대로 싣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인터뷰 때 한 얘기들이 애초 기획한 이사장의 야망과 분란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됐다.
과정이 어찌 되었던지 출석요구서가 날아왔으니, 복잡하긴 할 것 같다. 올 가을은 가을 맛 좀 보며 살려고 했는데, 쉽지 않겠다. 이번 싸움 해보고 재미있으면 내년엔 매달 싸울 기사를 준비해야겠다. 끌끌.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그것 이상은 없다.
2.
8월 3일, 상계동 집에 들었다가 수유리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91년부터 가계부를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을 취재해볼 심산으로 간단히 기자라고 소개하고 명함을 내밀었다. 그날 그 기사의 핸드폰 번호를 적고는 내렸다.
9월호 마감이 끝나고 기사가 비번인 날, 그를 찾아갔다. 간단하게 가계부만 보고 왔다. 지출내역은 생각보다 빈약하긴 했다. 그러나 해볼 만 했다. 1차 기획회의에 기획안을 냈고, 취재를 하기로 했다. 2차 기획안 이전에 다시 방문해 가계부를 빌렸다. 내용을 분석하고 몇 가지 질문거리를 기록했다. 세 번째 방문 때 비로소 인터뷰가 이뤄졌다. 그러나 두 시간 중 한 시간은 기사를 설득시키는데 할애했다.
기사는 <말>에 대해 언뜻 들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못내 내 취재를 의심했다.
“이거 제목은 뭐로 할 것이냐. 혹시 어느 택시기사의 분노로 나가는 것 아니냐. 이런 평범한 얘기를 어떻게 기사로 한다는 것이냐.”
이쯤 되니, 기사가 우려하는 바가 짐작되었다. 한 시간 동안 얘기한 끝에 두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 이 인터뷰가 <말>지 기사로 적합한지 여부는 나에게 맡겨달라.
둘째, 이 기사가 택시기사의 분노로 나갈 지 다른 내용으로 나갈 지 여부는 잡지가 출간되기 전에 기사를 보여 줄테니 그때 판단하시라.
기사를 작성한 13일 사진취재를 간 기자 편에 기사를 보냈다. 쪽지와 함께.
“지난 번 말씀드린 대로 서민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서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은 그런 서민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서민들의 삶이 윤택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부자들이나 권력층보다도 소박하고 순수함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기사를 통해 그것을 보고자 했고,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우리 경제현실에서 서민의 경제생활을 그대로 담아보려 했습니다.”
그 날 저녁 기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가 한 얘기 그대로 썼네요.”
만일 이날 택시기사가 안 된다고 했다면, 기사는 죽여야 했다. (19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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