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주인집 아저씨로부터 방이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덟 달 정도를 기다리던 참이라 반가웠다. 더욱이 올가 태풍이 왔을 때, 지난해에 이어 다시 천장에서 비가 샌 뒤라 잘됐다 싶었다.
남은 것은 이사 갈 방을 구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다. 이사라는 게 살림살이를 싸서 공간을 이동하는 단순한 행위라면,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다. 이사야말로 이것저것 재어보고 따져 봐야 한다. 이삿짐을 꾸려놓은 것만큼이나 생활이 복잡하게 집약된 형태다. 그런 만큼 이사를 가려면 신경 쓸 게 많다.
이사. 지난 95년 8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나온 지 만 4년만이다. 처음 석관동에서 2년 동안 살았다. 지금 살고 있는 수유리로 이사를 온 때는 지난 97년 10월. 그로부터 2년이 조금 모자란 이번에 이사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게 이사의 핵심이다. 이 핵심을 둘러싸고 있는 몇 가지 현실이 있다. 기장 큰 고려는 전세금이다. 여기에 출퇴근 거리를 산정하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할 조건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고려할만한 사항이다. 그 밖의 몇 가지 기준을 더 고려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싶었다. 예전에 학원강사를 할 땐 자전거를 탔다. 그 이전에 대학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30~40분이 걸렸다. 수유리에 살면서는 수유역과 집을 오가는데 몇 번 이용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회사생활이 바쁘다보니 달리 자전거를 탈 시간이 없었다. 그러던 중 자전거가 고장나 그것마저도 포기했다.
이번에 이사 할 방은 자전거 출퇴근이 가능한 곳을 고려했다. 자전거를 타는 게 거창한 환경운동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버스에서 내뿜는 매연을 생각하면 건강에도 그리 도움이 안 된다. 자전거를 타고 싶은 이유는 그만큼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버스나 전철을 기다리지 않아서 좋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쉽게 갈 수 있다. 자동차를 사도 될 텐데 이것은 아직 혹은 영원히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 오토바이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으나, 환경과 건강을 ‘약간’ 생각하다 보면 이 역시 아닌 듯 싶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자면, 직장에서 멀지 않아야 한다. 최대 60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 30분이면 딱 좋다. 그런 기준으로 마포대교 북단근처에 있는 직장을 중심으로 보면, 우선 홍익대 근처, 충정로, 아현동, 갈월동 정도가 적당하다.
그러나 이들 장소는 모두 포기해야 했다. 이사할 곳을 결정할 또 다른 기준, 부모님께서 계시는 집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부모님과 거리를 기준에 넣는 이유는 우선 생활상의 편리를 고려한 측면이 없지 않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본 반찬은 집에서 가져다 먹는다. 그보다도 우선 고려되는 이유는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부모님이 예순을 넘으셨으니 내가 가까이 있는 게 낫다.
현재 부모님은 상계동에 살고 계신다. 직장이 있는 마포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직장과의 거리를 맞춘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직장 못지않게 내게 중요한 기준인 부모님과의 거리를 따지다보면 직장~자전거와의 관계에서 둘러볼 만한 지역은 모두 제외된다.
차선책으로 떠오른 이사 장소는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 한성대, 혜화역 부근이다. 성신여대가 경계선이 된 것은 미아리고개 때문이다. 이 고개를 자전거로 넘기가 힘들다. 혜화동, 즉 대학로를 넘어 4대문 안쪽으로 가면 그야말로 서울 시내라서 도심 한복판에 머리를 뉘는 게 영 마땅찮다.
이 차선인 지역을 결정한 때가 9일이었다. 이쯤에서 기본 요건인 전세금이 불거졌다. 자연스레 아파트는 제외됐다. 일단 비싸기도 하거니와 월급으로 관리비를 낼 형편이 안 된다. 관리비를 내는 원룸도 맞지 않다.
방 구하는 일은 10일부터 시작했다. 아침 8시 무렵, 출근하기 전에 돈암동 근처로 갔다. 돈암역에서 3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5층 건물인데 3층에 방이 있었다. 3층으로 오르자 문이 양옆으로 나 있고, 한쪽 문을 열자 다시 세 개의 문이 나왔다. 그 문들 중 오른쪽 문을 열자 내가 찾던 방이다. 빈 방이라 구경은 맘 놓고 했다. 8평 정도 된다는, 관리비가 없는 원룸이다. 방이 좁다. 적어도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방 정도는 돼야 한다.
다른 집에 전화를 걸었다. 성북구청을 지나 한참을 걸어 신설동쪽으로 내려갔다. 주소와 전화로 물어 찾아가는데 자꾸 망설여졌다. 생각했던 지역에서 너무 한참 벗어났다. 그러나 보지 않고 포기하면 언젠가는 다시 갈 것 같았다. 내처 온 김에 가봐야지 싶었다. 역시 3층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방들이다. 부엌이 있고 바로 옆에 방이 있는데 뭔가 답답했다.
10일 저녁 퇴근길에 혜화동 로터리 근처에 있는 원룸을 방문했다. 10평이라는데 빈 공간을 가늠해보니 딱 수유리 방 크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구 배치가 구상되지 않는다. 건물이 큰 대로변에 있고, 더욱이 관리비가 4만원이란다.
11일부터 둘러본 방은 높은 데로 임하게 했다. 그 날부터는 방 두 개짜리도 함께 봤다. 벼룩시장에 방이 많이 나와 있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간 곳은 동숭동. 대학로 뒤편 동숭아트센터에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방이 두 개인데 모두 큰 방이다. 주방 겸 거실도 넓은 편이고, 화장실도 널찍하다.
문제는 건물 위치였다. 언덕배기를 1분 정도 올라야 하는 정도야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일이지만, 반지하방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5층짜리 건물에 방은 1층에 있었다. 비탈에 세운 집이라 한 면은 막혀 있고 다른 두 면은 채 1미터 간격도 안되게 건물이 서 있다. 출입구가 있는 면 역시 계단이 앞을 막아 햇볕이 들 곳이 없었다. 낮에도 불을 켜고 있어야 했다. 흔히 반지하방에서 자고나면 몸이 찜찜하다고 한다. 더욱이 습기라도 들면 눅눅해진다.
다음으로 들린 곳이 한성대 입구에 있는 방이었다. 전화상으로는 삼선교역에서 5분정도란다. 그 정도야 하면서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삼선교에서 내려 전화를 거니 마을버스를 타고 오란다. 그런데 마을버스가 한참을 돌아 내려준다.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로 오르는 계단 같다.
땀을 흘리며 올라가 방을 보니 방은 괜찮다. 그런데 너무 고지대다. 한성대 근처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도 미련이 남았다. 동숭동 방이 햇빛을 볼 수 없었다면, 한성대 근처의 방은 남향으로 창문이 나 있어서 두 방 모두 빛이 들었다. 방도 큼지막했다. 역시 갈등. 그러나 방을 보고 내려오면서 마음을 접었다. 자전거를 고려하면 고지대엔 답이 없었다.
11일 밤, 9시가 넘어 버스를 타고 퇴근하면서 명륜동에서 내렸다. 명륜3가에 내놓은 방을 찾아갔다. 10여분 걸어가니, 역시 고개가 나왔다. 고개를 오르면서 자꾸 자전거를 떠올렸다. 이쯤이라면 가능할까. 이 정도는 끌고 올라오면 되겠지. 고개를 거의 다 올라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주인을 따라, 올라간 2층 방. 고지대다 보니, 전망은 좋았다. 문제는 화장실과 세면대를 옆방에 자취하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써야 한다는 점. 이게 불편할 것 같았다. 혼자 살아서 좋은 일 가운데 하나가 홀라당 벗고 있어도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 아니던가.
방을 구하러 다니면서 벼룩시장에 나온 방 광고 중 두 군데가 애착이 갔다. 한군데는 삼선교 근처인데, 원룸 15평에 3천만 원이다. 다른 한 곳은 동숭동인데 13평에 2천5백이다. 이 두 곳은 방 구하러 다닌 첫날부터 보았다. 그런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동숭동은 특히 애착이 가서 밤 12시. 아침 8시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구안와사가 와 잠시 방 구하기를 중단한 12일까지도 이들 방주인과 연락할 수 없었다. 얼굴 아픈 일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 다시 방을 구하려고 마음먹은 때는 15일. 그러나 잡지 마감과 겹쳐 시간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다들 마감하느라고 바쁜데 방 구하는 전화를 걸기가 뭐 했다.
15일 일요일 동숭동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복덕방이란다. 방 위치와 크기를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정 없으면 그곳에라도 찾아가 볼 심산이었다.
18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시 혜화동으로 진출했다. 동숭동 집에 전화를 거니, 전화를 받았다. 겨우 통화가 돼 집을 찾으러 갔다. 근처에 가서 한 5분 헤맨 끝에 방을 보았다. 사다리꼴 모양에 크기도 15평에 한참 모자랐다. 실망을 안고 내려오다 지난번에 보았던 햇빛 안 드는 집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냥 이사할까. 아니면, 아예 느긋하게 맘먹고 천천히 찾을까. 어쩌면, 25일 이사 가기 이전에 방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한 2년은 살 동네인데, 잘 골라야 한다. 그 갈등 속에 마지막으로 찾은 방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다.
이번으로 세 번째 방을 구한 셈이다. 세 번 모두 생활정보지 덕을 보았다. 모두 복덕방 비용을 안 쓰고 얻었다. 그러나 이번엔 생활정보지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방을 얻기로 한 장소가 대학로 근처이다 보니, 종로구를 다루는 생활정보지가 필요했다.
9일 밤. 생활정보지를 구하려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삼선교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단 한 부 있는 <벼룩시장>을 발견했다. 신이 날 위해 남겨둔 거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펼쳐 들었다. 그러나 그 <벼룩시장>은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성북구 판이었다. 삼선교와 성신여대 근처만이 내가 필요한 곳이었다. 며칠 후 알고 보니, 이 지역 <벼룩시장>은 수유리 집 앞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끌끌.
10일. 인터넷 벼룩시장을 검색했다.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 돼 있었다. 지역별로도 볼 수 있었고, 조건별로도 검색이 가능했다. 그러나 인쇄 매체보다 적게 등록된 느낌이 들었다. 10일 삼선교 근처에 사시는 신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이사 간다고 얘길하고는 <벼룩시장>을 구해달라고 했다.
10일 저녁. 방도 둘러보고 생활정보지를 구하기 위해 대학로로터리에서 내렸다. 방을 한 군데 보고는 30여 분 생활정보지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있는 곳은 없었다. 할 수 없이 11일 점심 때, 대학로로 가서 생활정보지를 구했다.
생활광고지를 보며 위치와 가격 등을 보고는 내가 물색할 방을 따로 정리했다. 광고지로 확인하고 정리를 안해 두면 다음 날, 전화 한 곳에 다시 전화하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벼룩시장>을 볼 때마다 메모지와 확인해보고 새로 나온 방만 점검해 연락했다. 보통 복덕방을 통하면, 전세금의 0.7%를 복덕방비로 내야 한다. 이번에 내가 얻은 방을 복덕방을 통해 얻었다면, 20만원은 복덕방에 주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발품 팔고 다닌 값은 번 것 같다.
명륜1가 5-57번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찾은 날은 18일 점심 무렵이었다. <벼룩시장>에서 처음 이 곳을 보았을 때는 망설였다. 우선 위치가 명륜동이란다. 혹시 지난번 밤에 올랐던 고개 근처일지 모른다. 다음에 걸린 것은 젠세값이었다. 3천3백만원. 내가 생각했던 가격보다 3백만 원이 더 비쌌다.
서너 번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었다. 먼저 위치부터 물었다. 지난 번 그곳은 아닌 것 같은데, 혜화로터리에서 한참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집을 찾아갔다. 두어 번 물어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로터리에서 10분 정도 걸었다. 왠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 마냥 집들이 큼지막하고 높은 담들이 양 길가에 놓여 있었다. 동네는 한적했다.
방은 마음에 들었다. 1층이긴 한데 고지대다 보니 2층이나 다름없었다. 큰 방은 수유리 방보다 두 자 정도 더 컸다. 창문으로는 햇살이 들었다. 작은 방은 그보다 작았다. 그런데 이 집 역시 비탈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뒤쪽은 창문이 없었다. 작은 방 역시 낮에도 불을 켜야 할 것 같았다.
방은 비어 있었다. 도배를 하고 있었는지 벽면은 새 벽지인데 천장 벽지는 오래된 듯 싶었다. 방을 보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계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수유리 방이 2,300만원. 1,000만원을 마련해야 했다. 다행히 500만원은 내게 있었다. 이 돈은 전 직장인 캠라 다닐 때 모아 두었다. 당장이라도 캠라를 그만둔다면, 다른 직장 구할 때까지 먹고 살 돈이었다. 그러다가 이사 때가 되어 어떨지 몰라 그냥 일반통장에 넣어두던 것이었다.
애초에 3천만 원을 잡았던 것은 올 12월에 탈 적금을 염두한 것이었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5백만 원이 부족했다. 다시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5백만 원을 빌리기로 했다. 결국 햇살 값으로 3백만 원을 지불한 거다.
19일에 방을 계약하러 갔다. 점심때였다. 주인은 60대 부부였다. 계약금으로 3백만 원을 주고 계약을 했다. 18일, 중부등기소에 들러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본 후였다. 계약을 마치고 나니, 점심을 함께 하자고 하신다. 몇 번 거절 하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할머니가 방에 대해 몇 마디 한다.
“방에도 다 인연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굳이 방 내놓고 그렇게 신경 안 썼어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있으면, 방 주인이 나타나겠거니 했죠.”
계약하기 전날, 장판을 바꿔줄 수 없냐고 했더니, 그건 어렵단다.
“그 방에 산 사람들은 다 잘 되어서 나갔어요. 방 큰 대로 이사 갔고, 다 승진해 나갔어요.”
“승진이야 오래 살아서 그런 거지. 다 승진할 때가 되니까 승진하는 거지. 뭐”
할아버지가 가볍게 할머니의 말을 무너뜨렸다. 그는 손을 떨고 있었다. 수전증이라 했다.
- 손이 불편하셔서 도배하시느라고 힘드셨겠네요?
“두 노인네가 그것 하느라고 죽겠그만. 10만원 벌겠다고 벽은 그래도 하겠는데 천장은 쉽지가 않아.”
나는 얼굴이 불편하다고 얘기했다. 할머니가 걱정을 하시면서 병이 오래 간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용하다는 한의원을 소개해줄 기세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안방 장판이 맘에 들지 않았다. 전에 어린아이가 장판에 낙서를 해놓아 지저분했다. 할아버지가 따라와서는 웬만하면 그냥 살라고 하신다. 작은 방도 장판이 지저분하긴 마찬가지다. 도배는 작은방과 거실천장을 아직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집을 나오면서 작은 방 천장은 깨끗하니까, 도배를 안하셔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이번에 이사비용으로는 21만원 정도 들었다. 장판이 4만5천원, 차량비가 3만5천원, 식대 6만원. 가스 이전비 1만6천원 등등이다.
돈을 중심으로 얘기를 해본다. 먼저, 방을 계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햇살 때문이었다. 동숭동에서 보았던 방에 비하면 햇살이 잘 들어 고른 셈이니까. 따라서 햇살가격으로 3백만 원을 지불한 셈이다.
그렇다면 햇살비로 하루에 얼마나 비용을 지불하고 살까. 3백만 원은 돌려받을 수 있으니 그 이자만 따지면 된다. 최근 은행 이자는 7%정도다. 2년 계약이니까 42만원 정도다. 이를 계산하면 매일 580원 정도를 햇살 값으로 내는 셈이다.
이번에도 책장을 만들었다. 재료비만 계산하자면, 목재가 2만3천원, 니스 등이 7천원 들었다. 이에 붉은 벽돌비가 포함되어야 하는데 다행히 주인집에 벽돌이 있어서 그것을 썼다. 아마 벽돌 구입비까지 들었다면 총 5만원 정도 들었을 것이다. 이번에 만든 책장에 모두 꽂힌다면 대략 3백 권 정도가 진열될 수 있다. 역시 쫀쫀하게 계산해 본다면, 책 한 권당 책장에게 지불해야 할 임대료는 170원 정도다.
계산을 하자면 좀 더 큰 돈을 계산해야 한다. 내 전세값. 3천3백만원을 연이율 7%만 받는다 해도 1년이면 2백31만원. 2년이면 4백61만원이다. 한 5백만 원 되는 이자가 생기는 셈이다. 생각보다 많다. 이러니 집을 사려고 하나보다. 적어도 하루 6천3백 원 정도를 쓰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후배들이 도와줘서 인건비는 안 든 셈이다. 물론 돈보다 그 마음들이 더 고맙다. 일반 일꾼들보다 훨씬 편하게 이사했다.
여기 써 놓은 글만큼 나는 배부르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어찌 이런 저런 조건을 따지겠는가. 또한 내가 둘러본 방들 중에는 자식이 딸린 가정을 이룬 부부들도 있었다. 내 한 몸을 둘 곳이 가정을 이룬 집보다 크다는 것은, 어찌되었건 배부른 일이다. (1999.8.6.)
'서른의 생태계 > 서른의 생태계30+31'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짓말과 위선 (0) | 2009.07.23 |
---|---|
30과 12분의 8 (0) | 2009.07.23 |
내 몸의 반란, 구안와사 (0) | 2009.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