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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0+31

“가을 낙엽보다 사랑이 먼저 지더군요”

 


당신은 공포영화를 좋아했습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땐 여느 여자들처럼 눈을 감기 바빴지만, 그럼에도 영화나 비디오를 볼라치면 공포영화를 다시 찾았죠. <킹덤>도 그렇게 보게 됐었지요. 심야상영하는 <킹덤> 1부를 보았을 때 나는 졸았습니다. 밤을 지새는 영화를 보기엔 너무 피곤했고, 영화 또한 지루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덕분에 <킹덤> 2부를 보았을 땐 시종 당신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1부를 볼 때처럼 졸지 말 것을 단단히 다짐받은 당신이었지만, 나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진 않았죠. 그 경계는 여느 연인들 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의 언어였습니다.

“또 졸려고?”

관심이란 걸 받는 일에 서툴렀던 내겐, 다행히 그런 일이 행복한 일들이었습니다.


9월. 이제 그 경계와 감시는 해제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언어도 이제는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킹덤> 3부를 상영한다는 소식이 좀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제 당신과 영화를 함께 볼일이 없습니다.

당신은 떠났습니다. 9월 낙엽보다도 서둘러 당신은 떠났습니다. 풍성한 가을의 안쪽엔 스산한 바람이 돌 듯, 2년 6개월간 가꿔왔던 사랑은 못내 씁쓸함을 두고 떠났습니다. 진 낙엽이 다시 생명을 얻지 못하듯, 그 어떤 만남도 서로 기약하지 않은 채.  


당신은 네 번째로 헤어지자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내겐 세 번째 다음에 이어지거나 다섯 번째 앞에 놓인 말이라는 그런  순서상으로 계산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내겐 네 번째 헤어짐이란 곧 끝이었습니다. 영원입니다. 유한사랑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였습니다.


구안와사에 채인 내 몸이 정신의 방황을 허용하지 않던 8월 말, 당신은 떠났습니다. 내 마음은 안타까우면서도 달리 뭘 해볼 길도 없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친 울타리 안에 갇혔기 때문에 뭐라 붙잡을 말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결혼이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 때문이 아니라 결혼이란 게 별 신통한 구석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당신과 만났습니다. 밝은 웃음을 담은 당신이 좋았고, 그것에 즐거워하는 내 맘에 나를 맡겨 두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했습니다. 꽃다발을 사 줄 지도 알게 되었고, 갑자기 뭔가를 사 주고 싶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2년 6개월. 당신에 대해 한두 가지 아는 것들이 늘수록, 서로에게 장벽같이 견고한, 어쩌면 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 한두 가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연애는 그 많은 시간 동안 내 맘 안에 ‘소유’란 것을 키웠습니다. 사람에 대한 소유, 사랑하는 사람은 소유해야 한다는, 그 보편성에 나 역시 기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유를 생각할수록, 그 방법이란 빈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몇 천년 동안 인류란 고작 ‘결혼’이란 방법밖에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 어떤 다른 방법도 당신에겐 불안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소유는 딜레마였습니다. 결혼을 원치 않는 내가 소유를 얘기한다는 것은, 더욱이 우리사회에서는 별반 호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세상을 삐딱하게 본다고 얘기하던 당신이, 나와 함께 그런 세상에 도전해 주기를 바란 것은 무척이나 허황된 기대치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바입니다.  


당신은 현실적이었습니다. 평범했습니다. 당신은 세상이 얘기하는 결혼적령기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가 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히 흘러가 버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나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나란 존재는 이상적입니다. 적어도 결혼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의 생각밖에 서 있었죠. 사랑하면 결혼하고 애 낳고, 아빠가 되고…. 그런 일상을 소유와 바꾸고 싶진 않았습니다.


나는 잠시나마 당신과 결혼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내곁에 붙들어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현실적으로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채 정리 못한 현실이 있었음에도 결혼이란 말을 꺼냈던 것은 당신을 놓치지 않을 방법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염두에 둔 현실이란 곧 내겐 장벽이었습니다. 결혼을 결심할수록 그 장벽은 점점 나를 조여왔습니다. 남편이 되고, 가장이 되고, 아빠가 되고….


너무나 명확한 현실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맞추고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 삶의 자유를 위해 당신이 맞추고 사는 것, 그 행복이 몇 년이 갈 것인지. 당신을 위해 내 별스런 생각을 꺾는 것, 그게 뿌리 째 꺾이는 것인지 나는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난 ‘결혼안의 남자’이기를 포기했습니다. 결혼으로서 갖게 되는 권리도, 의무도 나는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에겐 그 포기가 곧 당신에 대한 포기나 다름없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세인들의 혹한 관심을 충족하려 그 포기와 당신을 저울질 할 생각은 없습니다. 서로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몇 달간은 예쁘다고 칭찬해 줄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서로가 정말로 어울리는 옷을 하루라도 빨리 입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선택을 이렇게까지 미룰 수밖에 없었던 내 어리석음이 못내 미안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오래될수록 풀기도 어려워지는 법인데, 이런 결말을 예견했으면서도 머뭇거렸던 마음들은 당신도 이해는 하겠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큰 아픔들로 남을 것 같습니다.


당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먼 훗날, 내가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아빠로 남편으로 일상을 살게 된다면, 지금을 후회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삶이라면, 지금의 당신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당신과 나 사이엔 이별의 문제이지만, 당신이나 나, 각자에겐  삶의 문제이니까요. 


<킹덤> 1부를 보았을 때 졸았던 나는, 그게 곧 나 자신이었습니다. 피곤하면 졸고, 영화가 재미없으면 졸 수 있는 것, 그게 나입니다. <킹덤> 2부를 보았을 때 4시간 동안 눈을 또렷이 뜨고 영화를 보았던 나는 당신안의 나였고, 사랑에 갇힌 나였습니다. 불행히도 사랑은 순간적으로 나를 변하게 했을 뿐 내안의 나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바뀌기를 바랐던 것 역시 허망한 것이지요. 


만일 당신과 <킹덤>3부를 본다면, 나는 이제 졸 것입니다. 어쩌면 끝까지 졸지 않고 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그것은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나 연애를 위해서 하는 행동은 아닙니다.

그래서 헤어지자는 당신의 말에 더 이상 뒷말을 보태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킹덤> 3부를 보면서 옆에 앉은 당신의 남친에게 안기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할 자유가 있으므로. 그게 영화를 보면서 내가 졸지 안 졸지를 애태우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이 떠나면 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써 잊을 생각은 없습니다. 비록 아름답지 못한 끝을 만들고 말았지만, 그것 역시 내 삶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굳이 잊을 필요는 없지요. 풍파가 쓸고 가는 대로 둘 것입니다.

당신이 떠난 지 꼭 한 달 된 오늘 밤, 이제 이별마저도 그냥 세월 속에 두렵니다. 다시는 이렇게 추적거리듯 글을 쓰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바랍니다.


이런 선택을 당신에게 미룬 게, 힘겨운 현실을 알면서도 결단하지 못한 게, 그로 인해 당신이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별스런 나로 인해 평범한 당신이 겪게 될 아픔이란 고스란히 내가 주었음에도, 그 아픔에 대해선 아무런 얘기도 해줄 수 없음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한 인연이 끝을 맺지 못하고 나눠지는 것 역시 인연이라고, 무심하게 인연이란 말에 기대봅니다. 식상한 맺음말이지만,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서로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길일 것입니다. (1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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