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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0+31

가을이별

 

가을은 이별이 익어 가는 계절입니다.

봄 내 여름 내

푸릇한 향내로 사랑이 자라도

가을엔 낙엽보다 먼저 이별이 익어갑니다.

여름 끝에서 여린 살결로 돋아났던 이별은

사람들과 밤새워 술을 마실 때도

버스 창가 너머로 무심히 거리를 바라볼 때도

홀로 컴컴한 거리를 걸을 때도

조금조금 

익어갑니다 

여린 이별을 단단한 껍질로 감쌉니다.

채 흘리지 못한 눈물로 한 겹

미처 풀지 못했던 마음으로 한 겹

돌이키면 아리게 남는 기억으로 또 한 겹…

가을보다 먼저 이별이 익어갑니다.


이별을 떨구려 애써 몸을 흔들지 마십시오.

도리어 잎들만 서둘러 질뿐, 이별은 더 몸에 붙습니다.

잘 익지 않으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게 이별입니다.

당신이 봄내 여름 내 사랑을 가꾼 정성은

어쩌면 이별을 단단히 여물게 하는 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Ⅲ 

잘 익은 이별이라도

농익은 사과처럼 ‘톡’ 하고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대개 

잘 익은 이별이더라도 

낙엽 떨군 가을 끝에서 호젓이 매인 까치밥처럼

마음 끝 외진 곳에서

소리 없이 몸을 여위어 갈 뿐입니다.

찬바람 도는 늦가을보다 더 단단히 여물뿐입니다. (19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