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지코지.
제주도 성산 일출봉이 바다 건너로 저만치 보이는 곳입니다. 3박4일간의 제주인권학술회의(2000)를 마치고 잠시 들린 그곳엔, 바람만 살고 있었습니다.
모래 알갱이까지 안고 바다로 거세게 몰려가는 바람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라산 백록담을 휘돌다 봉우리에 쌓인 하얀 눈을 머금었을까요.
그게 힘이 되었을까요. 한라산 푸른 등줄기를 타고 미친 듯 내딛던 걸음이 내쳐 섭지코지까지 온 듯 했습니다. 오던 길에 군데군데 솟은 오름이 걸림돌이 되었을 법도 한데, 오히려 오름이 바람을 자극한 듯 참으로 드센 힘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 바람에 걸려 넘어지고, 어떤 이는 그 바람에 밀리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바람을 등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바다 쪽으로 내딛었습니다.
걷다가 게으른 마음이 도졌을까요. 내가 무엇을 찾으러 가나 싶더군요. 그래, 잠시 바다를 보다가 버스 안으로 되돌아와 버렸습니다. 섭지코지에는 나보다는 바람이 사는 게 더 나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버스 안에 들어오니 바람이 느껴지더군요. 바람이 내 몸살 틈틈이 비집고 들어갔다가 바다로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 머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마다 바람이 묻어 있었습니다. 맑아지더군요. 모처럼 상쾌한 맛을 느꼈습니다. 바람이 지나버린 후에야 바람의 맛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새봄이었습니다. 제주도 어느 곳에 피어있을 유채꽃보다도, 내 몸을 촘촘히 관통해버리고 바다로 겁 없이 달려가버린 바람이 저를 새봄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가을 찾아온 안면마비의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그동안 바람결에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내밀었는데, 어느 새 이렇게 바람 앞에 몸을 내맡겼으니 그것이 곧 새봄이지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봄싹을 발견한 셈입니다. 푸른 바다를 가슴에 담는 일보다도, 저 멀리 바다로 질주하려는 코뿔소를 닮았다는 성산일출봉을 흠모하는 것보다도 차라리 바람을 만난 게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봄엔 생명들이 희망을 만듭니다. 아니, 생명보다도 더 큰, 숨붙이들뿐만 아니라, 애초 숨도 없이 세상에 나와 상상마저도 얻지 못한 미생물이라 불리는 모든 것이 희망을 줍니다. 그것들이 봄을 만듭니다. 게 중에 부지런한 녀석은 먼저 꽃으로 피어날 겁니다. 더딘 걸음은 그 꽃향기를 맡고서야 봄을 일궈냅니다. 유채꽃의 향기를 맡은 개나리는 이제 곧 노란빛을 보일 겁니다. 다른 생명들도 하나 둘 봄을 만들 겁니다. 즐거운 경쟁을 하겠지요. 봄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새봄, 저 역시 게으른 탓에 섭지코지에 부는 바람에서 그 봄을 찾은 겁니다. 새봄, 봄이 만드는 희망은 저마다 한두 뼘씩 가꾼 세상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의 봄도 마찬가지겠지요. 저마다 새봄엔 조금 더, 조금 색다른 그 무엇인가를 찾으려 할 것입니다. 마음에 봄같이 밝은 빛을 담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새봄이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영화 <박하사탕>을 보셨는지요. 감독 이창동이 소설가 출신이기 때문이었을까요. 공교롭게도 많은 문인들이 <박하사탕>에 대해 여러 지면에서 한 마디씩 하고 넘어가더군요. 대부분이 이창동에 대한 칭찬일색이었지만, 정작 ‘<박하사탕>이 내게 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문화라는 게 사람을 비껴갈 수 없는데도, 매번 평론에서는 사람의 얘기는 쏙 빠져버렸으니 섭섭했지요.
<박하사탕>의 영상미야 이름있는 평론가들의 몫으로 돌린다면, 결국 많은 이들에게는 영화를 통해 들여다 본 세상이 남겠지요. 제가 살고 있는 세상 말이지요.
<박하사탕>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순수’를 얘기하더군요. 영호의 순수. 시간이 앗아갔다고 얘기하는 순수 말이지요.
그런데 그 순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언급하지 않더군요. 거창하게 말하면 사상이겠고, 흔히 얘기하는 삶의 가치관, 그것이 보이지 않더군요. 세상의 어느 바보가 순수를 순수만으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영호에게는 순수라는 게 있었겠지만, 그것을 지킬 힘이 없었던 거지요. 세월의 힘에, 아니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던 자본주의와 권력에 그는 순수를 잃고 말았죠.
그럼에도 그 순수를 지킬 다른 사상은 미처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영호가 그런 힘을 지닌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우리네 삶이 영화 속 영호의 모습을 닮지 않았을까요. 그런 면에서 또한 리얼리티를 말할 수 있겠죠.)
<박하사탕>을 본 지 두어 달이 넘었지만, 내내 <박하사탕>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언제라도 그 기찻길을 찾아갈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때그때 상황 논리로 위장하고 ‘순간의 최선’이라는 성실함으로만 버티기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저는 그런 사람도 못됩니다. 영호처럼 기찻길 위에 올라가서 삶을 되돌려달라고 애원할 만한 ‘비겁한 용기’도 가지지 못할 테니까요.
한 겨울에 피어난 영화 <박하사탕>은 새봄에 사상을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생활을 크고 넓게 그리고 살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허기지지 않을 그 무엇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스무살 청춘을 푸르게 가꿨던 아름다운 사랑도 사람이 세상을 떠남으로서 더 이상 추억도 되지 못하는 시절, 그래도 끝내 마음에 담아 둘 그 무엇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서울로 돌아오니, 어떤 이가 새봄을 맞이하기 위한 통과의례를 겪고 있더군요. 어떤 잡지사가 <조선일보>와 캠페인을 준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잡지사에 다니는 그이는 이전부터 이른바 ‘안티조선’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잡지사에 다니기 이전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조선일보>를 이용하지 말 것을 얘기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이가 그 캠페인으로 말미암아 <조선일보>에 글을 써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이는 그 문제를 두고 주변의 지인들과 상의한 모양입니다. 여러 답변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저에게도 자문을 구하더군요. 답은 명확한데, 그이의 역사성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얘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역사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어라 얘기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으니까요. 결국 저 역시 뭐라 명확한 답을 말해주지 못한 채 짧은 글 한 토막만 이메일로 남겼습니다. KBS 라디오에 쓰는 글에도 조심스레 언급했습니다.
……
그이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런 얘기 없이 글을 쓸 지, 아니면 못 쓰겠다고 말할 지.
얘기를 했을 때, 직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알 수 없습니다.
막상 그 일을 물어왔을 때,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이의 고민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양심과 직장의 방침이 부딪칠 때, 선택이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이에게 한 마디 남겼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회사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그것을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론 그 회사의 동료들이 그이를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그이가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그이를 포함한 회사 모든 이들의 몫이니까요.
작지만 양심을 지키는 일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다면,
그것 역시 아름다움 세상입니다.
명확한 답이란 애초에 제겐 없었습니다. 다만 그이가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때로 그이는 스스로의 가치관과 사상까지를 의심하려 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담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주에서 돌아와보니, 그 일은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습니다. 다시 그이를 만났습니다. 이제는 달리 해줄 얘기가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선택뿐이었으니까요. 그이가 보기엔 여러 명에게 들었을 자문들 중에 한 가지였겠지만, 아무튼 얘기하는 저로서는 단 한가지만 말해야 했습니다. 마음에 따르되, 사장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얘기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다음날, 다행히도 얘기는 잘 풀렸습니다. 그 잡지사는 <조선일보>와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얘기를 담아 스스로 찾았을 그이의 그 어떤 결정이 사장의 마음을 바꾸게 한 듯 했습니다. 한 번도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 잡지사의 사장이 참 좋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이가 택한 세상을 엮어가는 방식과 사람 사이를 맺는 방법을 사장이 이해해 준 것이겠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상생하고 사는 지를 언뜻 보았습니다.
새봄을 맞아 저 역시 세상과 만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미 불쑥 말은 내뱉어 놓은 상태입니다. 어찌어찌 해서 제주학술회의에서 제가 발언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여성운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모인 자리였는데, 저는 토론의 주제와는 조금 다른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것은 제가 고민하고 있는 삶의 무늬이기도 했고, 세상을 읽는 눈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진보의 다섯 가지 모습을 얘기했습니다.
먼저, 섬세한 진보를 말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억압하는지를 살피는 일이 이에 속합니다. 또한 유진 선배가 얘기했듯이 이른바 반미운동을 한다는 이들이 겪는 오류, 즉 주한미군 범죄로 인한 피의자들이 겪는 고통을 마음을 담지 못하고, 미군철수만이 모든 것인 양 외치는 그 투박하고 경솔한 운동에 대한 극복을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운동이 섬세해지자는 것이죠.
다음으로는 성실한 진보를 얘기했습니다. 성실하지 않는 진보와의 결별을 달리 표현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전 방위적인 진보였습니다. 일부 진보적이라는 학자들이 갖는 여성차별에 대한 몰이해나, 사회운동가들의 비환경운동적인 행동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진보의 모든 영역에 대해 기본적인 사항은 알고 있어야 하고, 일상적인 내용은 몸소 실천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는 이성과 지성과 감성과 영성이 조화를 이룬 진보였습니다. 이 진보가 남성과 여성의 상생적 활동과 만날 때 그야말로 진보의 참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진보는 주로 이성과 지성만을 강조해 왔는데, 이제는 이에 감성과 영성도 함께 배려되어야 합니다. 감성이 마음을 담는 것이라면 영성은 성찰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곧 진보인 진보를 말했습니다. 이는 곧 내가 알고 있는 진보를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진보를 남에게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내가 진보를 실천함으로써 남이 내 행동을 보고 옳게 느낀다면 더불어 실천할 것이라는 기대이기도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진보의 모습은 학술회의 전에도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취재 등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떠올린 쌓인 내용들입니다. 다만 학술회의에서 다양한 진보의 얼굴을 만나다보니, 새로운 진보의 모습이 절실해졌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에게 얘기를 꺼냈습니다. 저 역시 내가 곧 진보인 진보를 위반한 셈이지요.
쉽지 않을 겁니다. 그 다섯 가지 진보를 제쳐놓더라도, 제가 진보의 근처에라도 머물만한 자격이 되는 지도 모르는 형편이니까요. 그럼에도 불쑥 얘기를 꺼냈으니, 그 말을 조금이라도 맞춰 나가면서 살아야겠죠.
이쯤 되니 새봄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즐겁게 만들 겁니다. 세상에 대한 몇 가지 밑그림도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조금씩 그림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만들고 싶은 잡지’에 대한 구상들도 하나 둘 생기는 듯합니다. 한 동안 연애에 밀려 생각하지 않았던 마흔에 할 일도 다시 추스르려 합니다. 연애의 미숙함으로 얻은 아픔도 거두면서 다시 저를 추스르려 합니다.
이 새봄에도, 사상은 다름 아닌 생활을 단단하게 여물게 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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