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0+31

권력과 불편해도 좋다


 

프레스센터에서 소식지를 내나보다. 그곳에 <말>을 소개하는 글을 써 달라고 편집장에게 청탁이 온 모양이었다. 이틀 전에 편집장이 견본을 가져오더니, “이거 노정환씨가 쓰지?”한다. 그냥 쉽게 말했다. 쓰겠다고. 22일 마감이라고 했으니, 조금 여유가 있었다.

오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쉽게 쓰자. 글은 점심 무렵에 거의 완성되었다. 다 쓰고 나니, 원고지 7매 분량이었다. 한 30여 분 글을 줄여, 5.3매로 만들었다. 제목은 ‘외로움마저 감미로울 <말>의 권리’로 잡았다. 국장이 한번 보더니 그냥 보내자고 했다.

   

사진기자 박여선은 필름정리에 한창이다. “백 개나 되는 필름을 언제 다 하냐”고 투덜거린다. 옆자리에 앉았던 막내기자 이경숙은 6월 15일 창간 예정인 디지털말팀에 합류했다. 미술팀장 이정은은 <말> 4월호 광고제작에 한창이다. <말> 노보 인터뷰를 거절해 지난달부터 취재기자 박영률의 속을 썩힌다.
미술팀 김수정은 잠속에 취해 있을 것이다. 우리 사무실 가장 후미진 곳에서는 취재기자 안영민이 졸고 있다. 방금 전,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부부관계를 얘기할 때,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의무감으로라도 할 껀 해야지”하며 충격발언을 해 한바탕 웃겼다. 


3월 21일 오후 3시. <말> 4월호가 발간된 지 하루가 지난 편집국 풍경이다. 오늘 국장으로 승진한 편집국장 김성환은 자리에 없다. 고참 취재기자인 정지환도 행방이 묘연하다. 둘 다 아마 취재원을 만나고 있겠지? 믿자! 나머지 취재 기자들 가운데 구영식과 고동우는 휴가 중이다.(노정환, 국장에게 ‘억울하게’ 찍혔다. 이 원고 쓰고 있다.) 

한산하다. 미술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마냥 여유롭게 한다. 그러나 불과 사흘 전에도, 우리는 2~3일씩 밤을 꼬박 지새는 마감에 시달리고도 쉴 틈도 없이 교정에 매달렸다. 미술팀이 막바지 편집작업에 열을 올리던 18일 밤엔 편집국장의 지시에 마감취재팀이 꾸려지기도 했다.

이 지면에 <말>을 소개해도 부족할 텐데, 웬 시시콜콜한 사람들 얘기냐구? 물론 이유가 있다. 첫째는 <말> 15년의 역사를 이 작은 지면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말>의 과거보다는 미래를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과거는 미래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면 족하고, 선배란 후배들이 넘어야 할 고개다. 셋째는 <말>의 희망을 가꾸는 이들은 바로 지금 <말>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겐 현재의 <말>과 미래의 <말>을 아름답게 가꿀 책임, 아니 권리가 있다. 그 권리에 ‘사실 앞에서는 어떤 이해관계도 고개를 들 수 없다’는 선배들의 정신이 담겨 있다. 게릴라처럼 싸우다가도, 다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조직력도, <말>이 새롭게 가진 힘이다.

여전히 권력에 채이고 거짓에 속는, 힘없고 소외된 이들이 많다. <말>은 그들과 함께라면 외로워도 좋다. 권력과 얼마든지 불편해도 좋다. (2000.3.22.)

'서른의 생태계 > 서른의 생태계30+3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롭게 놓아주겠다”  (0) 2009.07.25
이별한 후에, 꽃을 본 후에  (0) 2009.07.25
31과 12분의 3  (0) 2009.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