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당신이 저를 알고자 하듯,
저 역시 당신이란 ‘또다른 세상’을 만나고 싶습니다
마감이 한창인 4월 17일 새벽 4시. 또 하나의 꿈, 또 다른 꿈을 찾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당신의 언어’와 ‘당신의 역사성’을 알기 위해, 먼저 내 생각부스러기들을 펼쳐 놓는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빈곤할 이유도 없는 내 서른 하나의 꿈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리라. 여기에 쓰는 글은 온전히 ‘나의 언어’이길 바란다. 내가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데 필요한, 부드럽고 아름다운.
‘나의 언어’로 이 글을 연다. “당신은 또다른 세상입니다. 인연은 그 세상을 만나는 아름다운 시작일 뿐입니다.”
작은이야기 하나. 감성적 상상력을 준 ‘선영이’
‘선영아 사랑해’ 4월 초를 전후해 전국 주요도시에 나붙은 현수막(포스터)에 쓰인 글자였습니다. 이 현수막을 두고 한 인터넷 신문에 비판 기사가 올랐습니다. 그 기사는, 그 광고를 한 여성인터넷 업체에서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 시대는 사랑마저도 물품거래의 원활함을 위한 목적적 대상물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게 했다"며, “선영아, 사랑을 팔지 마라. 다신 너를 만나지 않겠다”라고 쓴 현수막까지 내걸었습니다.
그 기사와 현수막을 보고는 슬펐습니다. 빈약하고, 빈곤한, 외롭고, 추운, 필자의 감성적 상상력이 슬펐습니다.
지난 일요일 대학로에서 본 ‘선영아 사랑해’ 문구는, 내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 마음에, 현수막의 빈 귀퉁이에 ‘선영인 좋겠다’는 낙서라도 해 두고 싶었습니다.
대학로. 그곳을 들려 본 이들은 알 것입니다. 나붙은 수많은 포스터들, 그 사이에서 본 선영이는 부러움이고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봄의 새 햇살이었습니다. 이 팍팍한 일상에서, 남의 사랑이지만 저렇게 감동을 주는 방법으로 사랑고백을 한 용기도 부러웠습니다.
선영이가 사랑을 팔았을까요? 아닙니다. 선영이는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자극하는지를 새삼스럽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단 여섯 글자만 써 놓은 그 현수막은 나의 감성적 상상력을 일깨웠습니다. 그 자극은 웬만한 연극 한 편을 보고 난 느낌보다 못하지 않았다면, 지나치게 연극을 비하하는 것일까요!
우리 주변의 누가 언제 그렇게 사랑에 대한 진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게 한 적이 있던가요. 그런 기회를 만나기가 좀처럼 쉬운가요. 적어도 그런 기회를 부여한 ‘선영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어야 했습니다.
한 남녀의 사랑도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긍정적 에너지를 안고 있음을, 연애를 해 본 이들이라면 충분히 깨닫고 있는 일 아닌가요? 그렇다면 더욱더 그 선영이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대학로에 나붙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발가벗은 몇몇 연극포스터들보다, 그래서 선영이가 더 아름답고 순수합니다. 선영이는 자본주의에게 순수성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우리네 마음 안에 잠자고 있던 감성적 상상력을 깨운 것입니다.
작은이야기 둘, 획일과 권위를 넘어
최근 취재 관계로 어느 지역에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만나러 간 그곳에서, 사회운동을 하는 음악가와 술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저에겐 외지에서 온 손님이랍시고 술잔이 자주 돌았습니다. 이미 그 음악가도 술이 한 잔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전에 사회 운동했던 이들은, 혹은 지금까지도 사회운동을 하는 이들 중엔 <말>에 아쉬움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말>이 사회민주화에 이바지했던 그 역할에 대한 기대이기도 할 것이고, 여전히 모순이 가득한 우리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날도 그런 얘기가 돌았습니다. 저는 그런 비판을 달갑게 받는 편입니다. 설혹 그 비판이 편향돼 있고, 조금은 어긋난 시각일지라도 일단 그들의 얘기를 듣는 편에 섭니다. 여간해서는 반박하는 일을 자제합니다. 다만 예리하게 들어온 칼날을 조금 무디게 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런데 그 날, 제가 얘기를 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음악가는 말했습니다.
“<말>지 기자 같지 않군요.”
그 한 마디였습니다. 저를 자극한 것은 그뿐이었습니다. 저로서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이의 말은 아마 이런 의미였을 것입니다.
‘진보적시사지인 <말> 기자라면 그에 맞는 논쟁과 얘기를 나눠야 하지 않느냐.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저는 그 음악가의 말에서 누군가를 규정지으려는 권위를 보았습니다. 어떤 조직에, 어떤 사람이 필요하다는 그 기준 - 그것이 얼마나 객관적인지는 다음 문제입니다. - 에 맞는 인간을 규정하고,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획일성을 느꼈습니다. 변화를 원하는 이들이, 진정 자신은 변화할 여지를 갖지 못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처럼 논쟁 아닌 논쟁을 벌이긴 했습니다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나’를 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어느 누구도 변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일수록, 더욱 더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의 추억에 젖어 획일과 권위를 안고 있는 모습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은이야기 셋, ‘당신의 언어’와 ‘역사성’
한 환경단체가 마련한 작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모임이 시작되자 그 단체의 한 관계자가 사회를 보았습니다. 모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핸드폰 소리가 울렸습니다.
‘누구일까. 기본적인 문화 에티켓도 모르다니.’
습관처럼 제 머리에 스치던 생각이었습니다. 그 벨소리의 주인은 사회자였습니다. 그이는 이내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통화를 끝마쳤습니다.
“여러분도 전화 오면 끊지 말고 받으십시오.”
저는 그이가 통화를 끝내고는 사과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오히려 전화를 끊지 말고 받으라니….
행사는 이어졌습니다. 잠시 후 그 사회자의 핸드폰이 또 울렸습니다. 행사는 다시 중단되었습니다. 제 마음에도 이제는 조급증이 일었습니다.
'빨리 취재를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못 다 쓴 기사를 정리하고 넘겨야 할텐데…'
앞으로 나선 사회자는 참석자들에게 웃으면서 한마디 건넸습니다.
“여기엔 급하신 분들 없으시죠. 아직 안 오신 회원도 있고 하니 천천히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안엔 잠시 복잡한 생각들이 맴돌았습니다.
그러다 취재수첩을 내려놓았습니다. 취재수첩을 밀쳐두듯 제 조급한 생각을 저만치 밀쳐 두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회원들이었습니다.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얘기하다가 전화가 걸려왔을 때, 대화가 끊긴다고 해서 언짢아 할 가족들은 없을 텐데. 그렇다면 굳이 핸드폰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얘기 나누는 게 잠시 끊긴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대개의 환경문제가 ‘속도’와 ‘편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사회자는 ‘느림’을 실천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쯤, 저는 ‘당신의 언어’를 생각했습니다. 사람이든, 단체든 그들만이 가진 역사성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그 역사성에 기대어 얘기를 할 것입니다. 똑같은 단어일지라도, 해석하는 의미에는 그 사람의 역사성이 반영돼 있을 것입니다.
그날 취재일정에 쫓기는 것은 저일 뿐이었고, 환경단체는 단체의 역사성에 근거해 ‘당신의 언어’로 얘기하고 있었다면, 그날 울린 핸드폰은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당신의 언어’와 역사성을 알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마무리, 열정을 피우는 씨앗은 꿈이다
필름 출력실에서 필름이 나오길 기다리다, 미술팀 선배에게 한 마디 뚝 던진다.
- 선배는 오십 년을 기다려 십 년을 사랑하는 사람이 온다면 기다리겠냐?
“물론. 대신 십 년을 산다는 보장이 있다면.”
- 하긴 삼십 이 년을 기다렸는데, 까짓 오십 년이야. 그런데 알지? 십 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거.
그래서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렇게 속삭였을까.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열정. 사랑도 결국 열정의 문제가 아닐까. 운명을 걸 만한 그런 사랑과 그에 걸맞는 열정. 그 열정은 비록 십 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십 년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내게 그런 열정이 있는가?
‘내가 만들고 싶은 잡지’를 만들고 싶다. 몇 년전 학교 후배들과 잡지를 만들 ‘계략’을 세웠다. 한 달에 얼마씩 돈을 모으고, 매달 모여서 열심히 기획도 했다. 그때 꿈꾼 것은 ‘아마추어리즘’이었다. 그 꿈을 꾼 지 채 일년도 되지 않아 꿈을 접었다. 아마추어답게 끝을 보았다. 학교 선생님께서 던진 한 마디에 스스로 접고 말았다. 굶어죽기 딱 좋은 잡지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시의적으로 적절했고, 하나쯤 존재해도 좋았을 잡지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잡지’를 만들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내용에, 어떤 틀인지 밑그림도 그릴 수 없다. 하지만, 조심스레 예감한다. 내 맘 안에 조금씩 무엇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예전 아마추어리즘과는 다른 내용의 잡지라는 것까지는 감이 잡힌다.
마음을 한 곳에 모으게 되면,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집중하면, 돋보기로 모인 햇살이 불을 일으키듯 생각이 일어난다. 그 생각을 펼칠 시기를 몇 년 후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저들은 무엇을 꿈꾸는지. 무엇으로 사는지. 가끔씩 서점에 들러 잡지를 펼쳐보며 한 가닥씩 엮어지는 대로 머릿속에 차곡차곡 채워둔다. 그런 생각들이 내 안에서 고이 썩어 새 싹을 틔울 때, 그때까지 부지런히 물을 줄 것이다.
내게 열정이 있는가! 답할 수 없다. 그러나 알고 있다. 열정은 꿈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열정이 없으면 꿈 역시 오래 묻어두지 못한다는 것을. 내겐 꿈이 있다는 것을. 이제 그 꿈을 찾으려 한다. 행․복․하․게․도 내게 한 인연이 다가온다. <작은이야기>라는 또 다른 한 세상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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