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녹색연합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입방식에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노익상 선생을 만났습니다. 예전에 <말>에 ‘똥돼지 잡아 길 떠나는 화전마을 사람들’이란 화보를 실어 경남 함양 산촌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잔잔히 그려 준 적이 있었죠. 그 인연으로 첫인사를 드렸습니다. 술이 몇 잔 돌고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안교육, 탈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없는 사람들은 공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담배를 피자며 밖으로 나간 선생님이 불쑥 꺼낸 얘기였습니다. 그리고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달리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갈수록 복잡합니다.
환경 친화적인 유기농업으로 가꾼 농작물은 강남의 부잣동네로 비싼 값에 팔려나간답니다. 생태와 빈곤의 극복이 어떤 방식으로 상생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정치적 진보주의자가 여성성의 퇴보를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 진보인지 혼란스럽습니다.
<말>을 그만두겠다고 결정했을 때, 어떻게 얘기를 꺼낼까 망설였습니다. 이제 다시 새롭게 무엇인가를 가꿔가려는 이때, 누군가 떠난다는 것은 그리 힘이 되는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배․동료들에게 떠난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기쁘게 보내달라고 말은 했습니다만, 그 말에 얼마나 큰 욕심이 담겨 있는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만큼’의 마음으로 저를 보내주신 선배․동료들의 마음은 제 안에 차곡차곡 쌓아 두렵니다.
이제 겨우 사람들 한 명 한 명하고 정이 들었습니다. 서로의 장점도 보이고,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보입니다. 그럼에도 웃을 수 있고, 사람들이 밉지 않습니다. 밉지 않는 만큼을 사랑으로 채우려 합니다. 그것이 <말>이 저에게 나눠 준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만나도 서먹하지 않게 손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서운한 마음을 가진 분들은, 미약했지만 제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라고 제가 조금 더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저 좋을 대로 해석할까 합니다.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걷는 길이 <말>이 가는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운동을 말할 때, 저는 그 운동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울 겁니다. 때로는 지치면 <말>을 찾아와 힘을 얻고 싶습니다.
며칠 간 술자리에서 몸 상하고 마음 다친 선배․동료들에게 미안했던 마음도 기쁘게 가져가렵니다. 그만큼 열심히 살겠습니다.
메이데이 이틀 전 노정환 드림
<말>을 떠나며 말지 식구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글로 밥 먹고 사는 놈이 글로 작별인사 했다. 마음을 조심스레 거둬가는 데는 글이 제일 편했다.(20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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