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럽게 직장을 옮겼다.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한 가지였다. “내게 좀더 잘 맞을 것 같고,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직장을 옮기는 일은 ‘즐겁고 고마운’ 일이었다. <말>이 싫었던 것이 아님에도. 마음 한켠 <말>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를 찾아 나서는 일을 그럼에도 그렇게 표현했다. ‘즐겁고 고마운’일이라고.
그래서 나름대로 그 인연을 찾으려 고민했다. 새 직장의 편집장 추천을 받았지만, 그냥 얼굴만 내밀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간단하게 몇 자 적어 내도 대세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잠깐 해 보았다.
그러나, 추천과는 별개로 ‘나’를 살펴보는 게 필요했다. 나 스스로도 그 잡지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평가해야 했다. 결국 지원 서류를 내 방식대로 꾸몄다. 인사담당자가 원하는 방식이 - 그런 게 있을까? -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는 것으로 만족했다. 꾸밀 것도 없이. 내가 필요하다면 나를 살 것이고 아니라면 그만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말>에 들어갈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취직 운이 좋은 놈이다.
마감이 한창인 4월 중순, 회사에서 밤새 재교지가 나오길 기다리며 자기소개서와 평가 및 기획서를 작성했다. 달리 시간이 없었다. 거의 일주일간 준비한 끝에 제출한 서류는 다음과 같다.
엮는 차례로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꽃은 빛깔과 향기로 저를 나타내면 족합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면, 몇 년생이며 원산지가 어디인지를 알고자 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꽃을 느낍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이력서’는 잠시 접어 두십시오. 그곳에 붙은 사진이며, 쓰인 경력과 학력이 당신의 만남을 빈곤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만날 때는 먼저 마음으로 느끼십시오. 당신이 마음을 여는 만큼, 그 사람도 마음을 열어 보일 것입니다.
엮는 차례 (표지포함 총 12쪽)
하나. 자기소개서
당신이 저를 알고자 하듯,
저 역시 당신이란 ‘또다른 세상’을 만나고 싶습니다
둘. 평가 및 기획서1 - ‘작은 것’들을 생각한다
감성과 영성으로 듣는
사람과 사람․사회․자연이 나누는 작은 이야기
셋. 평가 및 기획서2 - 세부 평가서
버린 만큼 얻는 기획을 위하여
넷. 이력서
박제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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