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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0+31

31과 12분의 5

 


5․18 스무 돌

5․18 스무 돌. 아무런 느낌 없이 하루를 보냈다. 어제의 일상처럼. 20년 전에도 그랬다. 그때는 아무런 것도 모른 채 하루를 보냈다. 열 한 살의 나이로…. (2000.5.18.)



새로운 자리

사무실에서 쓰는 책상은 새 것이다. 기역자 모양이긴 하지만, 자루가 긴 낫처럼 생겼다. 혼자 사용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기역자 모서리 부근엔 컴퓨터 모니터를 놓았다. 왼쪽에는 <작은이야기>와 음악시디를 두고, 오른쪽으로는 자료와 책을 꽂아 놓았다. 그곳엔 <말>도 꽂혀있다.

컴퓨터도 새 것이다. 모니터도 17인치다. 굳이 이렇게 클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집에서 사용하는 모니터는 15인치인데, 요즘엔 집에 있는 것이 작아 보인다. 랜이 연결돼 있어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켠다.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은 이메일이다. 이레 출판사 이메일과 하니메일을 함께 둘러본다. 이메일과 인터넷은 컴퓨터가 켜 있는 동안엔 항상 켜 놓는다. 따라서 이메일은 도착하는 즉시 볼 수 있다. 아직 사람들이 출근 전이면 시디를 듣는다. 이어 한글프로그램과 탐색기를 열어두면 내가 일하기에 적당한 기본적인 컴퓨터 시스템이 작동되는 셈이다.


사내통신망이 연결돼 있지 않지만, 요즘엔 한글쪽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한글프로그램에 보면 쪽지라는 기능이 있다. 그런데 이 쪽지는 네트워크가 연결돼 있으면 곧바로 다른 컴퓨터와 쪽지 주고받기가 가능하다. 이 쪽지 기능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 우리 팀은 그런대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서로 원고를 나눠 볼 때나, 말로 하기 어려운 사적인 얘기를 나눌 때 종종 이 쪽지를 보내곤 한다.


<말>에 있을 때 비교적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냥 깨끗하게 해 놓고 싶다. 그래서 파일박스를 사서 서류를 정리하고, 지난 자료는 박스에 넣어 책상 밑에 두었다. 박스엔 <말>에서 취재했던 당시에 구한 대부분의 자료가 있다.

내 자리의 위치는 계단 쪽을 바라보고 있다. 3층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거슬리긴 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크게 중요하지 않다. 대신 서쪽 창문이 보이기 때문에 비나 눈이 내린다면 그런 대로 운치도 있을 법하다. (2000.5.)



사무실의 화분들

화분. 라벤타, 골든타임, 레몬밥, 야자, 신고늄, …. 내 책상에 놓인 작은 화분들이다. 예전에 <말>에 있을 때 집에서 가져 온 신고늄은 수경재배 한다. 신고늄은 잘 자란다. 당시 잎이 세 개였는데, 어느새 여섯 잎이 되었다. 새 잎이 또 한 자락 고개를 내밀었다. 허브종류인 라벤다는 <말> 업무국 직원들이 송별회 때 사 줬다. 라벤다도 이곳 <작은이야기>에 와서 쌀 한 톨보다도 작은 꽃송이를 내밀었다.
 
애초 업무국 직원들은 이것 말고도 흑벤자민이라는 아주 작은 화분을 사주었다. 분재처럼 앙증맞은 그 나무는, 그러나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마음이 덜 갔기 때문일 게다. 개인적으로 분재가 싫다. 인위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작은 것들은 작은 것대로 두면 될 텐데…. 흑벤자민도 그랬다. 역시 분재인 골든타임은 <말>미술팀 선배와 서로 화분 사주기를 해서 받았다. 이틀 정도만 물을 주지 않아도 금방 풀이 죽듯, 줄기를 꺾고 있다. 마치 어린양을 부리는 듯하다. 지금은 꼭 미친년 머리 풀어헤치듯 - 우리 어머니가 쓰던 표현인데, 시골에는 꼭 동네마다 정신이상자들이 한두 명씩 있어서 예전 어른들이 이런 표현을 쓴 듯하다. - 늘어져 있다.

레몬밥 역시 허브다. 회사 앞에 있는 주택은행에서 1천원에 무인판매를 하는데, 싼 맛에 한 개 사 왔다. 가장 늦게 내 책상에 놓인 야자는 두 줄기에 잎이 서너 개 붙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편집장과 회사 근처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하나 사 주겠다고 해서 얻었다.


나머지 화분들은 이름을 모른다. 잎이 무성하다. 지난번 이삼성 선생님을 만나러 갔을 때, 유진 선배에게 ‘쫄라서’ 얻었다. 담쟁이처럼 잎이 무성하다. 잎이 자라는 것이 보이는 게 좋다. 또 다른 화분은 집에 있던 녀석인데 회사로 내려왔다. 집에 두니 잘 관리할 수 없어서 잎이 마른 것을 보고 죽이더라도 회사에서 죽이자 싶어 데려왔다. 잘 살아야 할 텐데.

화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하루 조금씩 싹이 자라는 게 아름답다. 저들이야 저들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겐 기쁨이 된다.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그저 저 삶을 사는데 그게 남에게 즐거움이 된다. 그래서일까. 이사를 한 이후 직원들이 하나 둘 화분을 구입했다. 사무실에 작은 녹색세상이 하나 둘 피어나고 있다. (2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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