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마음은 저 홀로 어느 넓은 들판을 헤맨 듯 합니다. 이글거리는 모닥불을 보고도 다가서지 못하고 그 차디찬 들판을 헤매었습니다. 아닙니다. 이미 마음은 몸보다 앞서 달려가 모닥불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자리가 그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겠지요. 모닥불의 따뜻함을 느낄수록 뭔가 불안한 기운들이 등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처럼 쉽게 내 마음을 쪼이고 있을 것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다시 마음은 모닥불로부터 되돌아 나오게 됩니다. 그러기를 수십 번, 아니, 하루에도 몇 십 번 거듭하게 됩니다. 망설임이겠지요. 슬픔이 되기도 하고, 때론 마음을 환히 비추이기도 하는. 그 즘, 다시 첫마음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 호흡 쉬며, 지금의 망설임이 무엇인지를 차곡차곡 돌아보게 됩니다.
예전에 <섀도우랜드>라는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1952년 옥스퍼드 대학시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머리가 희끗한 나이의 잭이라는 남자는 주로 교회에서 신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데 왜 우리의 일상에는 고통이 존재하는지를 신자들에게 설명합니다. 잭은 영국에서 버스가 해군사관생도를 덮쳐 24명이 죽었을 때 하나님은 어디 있었냐며 이렇게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12월의 밤에 어디 계셨나! 왜 사고를 막지 않으셨나! 하나님이 좋은 분이 아니신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받길 원하시나? 이에 대한 답이 ‘그렇다’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잭이 말하는 하나님은 그냥 일반적인 신 정도로 이해해도 상관없을 듯 합니다. 그 어느 종교의 신이든지, 아니면 내 맘 안에 있는 하늘님이든지. 잭은 계속 말을 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꼭 행복하길 원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우리가 철들기를 바라죠. 우리를 사랑하기에 고통의 선물을 주시는 겁니다. 귀 기울이지 않는 세상을 깨우려고 고통이라는 메가폰을 드신 겁니다. 우린 조각가가 인간 형상으로 깎아내는 돌덩어리입니다. 끌로 때리면 너무 아프지만, 그런 우리를 완벽하게 해 주죠”
신은 우리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우리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인들에게는 익숙한 얘기지만 저처럼 비종교인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낮은 곳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이가 있는 이 현실에서 말입니다. 저 빈민들처럼, 이 시대에도 먹고사는 문제를 매일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그런 고통과 불안이 어떻게 그 사람을 완벽하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언뜻 이해하자면, 그 사람의 전체 생에서 갖는 이 생은 극히 작은 시간에 속할 뿐이라고 하면 가능한 대목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은 다만 잭의 말을 쫒아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한 잭이 그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옵니다. 독신남 잭에게 이혼녀 조이가 다가옵니다. 애초에 조이는 책을 펴낸 잭의 팬이었습니다. 잭을 찾아온 조이. 서로가 대화를 나누면서 가까워집니다. 이 대화가 관심으로, 사랑으로 싹틉니다. 잭은 조이가 영주권을 얻을 수 있도록 형식적이나마 결혼식도 거행합니다. 그러나 조이는 암에 걸리고 맙니다.
“멀쩡하고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고통에 쓰러졌죠. 오늘 아침에 입원했는데, 암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누구를 사랑하면 그가 고통 받지 않길 바랍니다. 참을 수가 없죠. 그 고통을 대신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데, 하나님은 더하실 겁니다.”
잭은 조이가 쓰러진 아침 자신의 고통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받을 때 느끼는 그 고통. 그 고통도 잭이 말했던 고통, 즉 사람을 완벽하게 해주는 신의 선물입니다. 잭은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속에 빠져있을 때도 말입니다.
“어릴 땐 장난감이 최대의 행복이었고, 어릴 때 쓰던 방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죠. 하지만 아이 방에서 나와 타인과의 세계로 가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게 바로 고통이죠.”
잭은 조이와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잭의 부인 조이는 다리를 절단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잭에게 말합니다.
“(내가 죽고 나서 당신이) 그때 받을 고통은 지금 누리는 행복의 일부예요. 거래인 셈 쳐요.”
그 무렵 잭은 형에게 혼잣말처럼 말합니다.
“경험은 무자비한 선생이지만 가르치긴 하는군. 정말 뼈저리게 배우게 돼.”
조이가 죽고… 울고 있는 조이의 아들 옆에서 잭 역시 소리 내어 흐느낍니다. 교회 단상에서 고통은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고, 인간을 완벽하게 해주는 정이나 끌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던 잭이 그 고통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겪은 잭은 조금 더 완벽해졌을까요? 영화 마지막, 잭은 말합니다.
“내 인생에서 선택의 기회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소년으로서, 한 번은 남자로서. 처음엔 안전한 길을 택했고 나중엔 고통스런 길을 택했다.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그때 누렸던 행복의 일부다.”
잭의 얘기는 그럴 듯합니다. 신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도 그런 비슷한 얘기들은 곧잘 듣곤 합니다. 흔한 얘기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고통이 사람을 단련시킨다는 것.
사람이 다른 사람, 즉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한 과정엔 그런 고통도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 만남에서 사랑을 찾자면, 더욱이 그 사랑이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망설임의 상태일 때, 그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섀도우랜드>를 보고 나서 다시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납니다. 처음 만나는, 혹은 오랜 만에 만나는 그 사람에게서 새로운 세상을 만납니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각각 새로운 세상이니, 그 새롭다는 것 자체가 호기심을 끄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세상이 왠지 평안해 보이고, 내 한 몸이 그 세상에 푹 빠져들고픈 유혹을 느낄 때, 이미 내 안에서는 그 사랑이라는 마음이 싹을 틔운 겁니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이란 일방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욱 많은 게 현실입니다. 내 마음에 애인은 있지만, 그이 마음의 애인은 아니니, 두 마음 안에 있는 애인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요.
그때부터 한 사랑은 망설입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얘기할까. 실은 그 마음을 전하는 게 단지 ‘시작’에 불과함에도 그것이, 내 마음을 전하는 그것이 이뤄지면 모든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망설이곤 합니다.
그런 색깔의 망설임을 끝낼 수 있는 것이 고백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함에 있어,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가 우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당신이란 세상을 만나면서 내 안에 자란 마음은 당신을 좀 더 잘 알고 싶고, 그런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니, ‘사랑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립니다. 그 마음은 당신이 내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와는 별개입니다. 사랑은 내 안에서 당신을 만남으로써 스스로 발생한 것이니까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그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됩니다. 고백은 부끄러움도 아니고, 창피함도 아닙니다. 당신에게 그런 마음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행복입니다. 따라서 제 마음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고백이지만, 고백은 내 행복을 당신에게 드러내는 행위일 뿐입니다. 어쩌면 고백은 지금 행복을 최대로 발현시킨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 역시 그런 고백을 두고 망설였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만큼의 행복마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입니다. 내 그런 마음을 당신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이뤄질 수 없으니까요.
그 사랑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내 마음은 무척 아플 것입니다. 당신이란 세상을 만나 행복했던 마음이 한 순간에 꺼져버리는 큰 아픔일지도 모릅니다. 당신 세상을 만나고픈 ‘욕심’이 내 세상마저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실은 내가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얻은 아픔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나의 행복을 말함으로써 얻은 아픔입니다. 내 안에 싹 튼 사랑을 깨닫는 일이나, 그 사랑을 말하는 고백이나, 당신이 받아주지 않아 발생할 아픔이나, 모두가 내 행복 안에 존재하는 조금 다른 빛깔들일뿐입니다. 모두 당신이라는 존재, 당신이란 새로운 세상으로 인해 만들어진 내 삶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그것까지가 사랑입니다“
고백을 앞에 두고 예상하는 모든 일들은 그야말로 ‘그 다음’ 일입니다. (2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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