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부터 서초동 재판장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드나들고 있다. 누구를 취재하자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 일상이다. 내 이름자 앞에 피고인이란 이름이 붙으면서, 색다른 그러나 매우 현실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느낀 몇 가지가 있다.
검찰 조사
지난 1월 <말> 기자로 있을 당시에 검찰 조사를 처음 받았다. 독도 취재가 걸려 검찰측 직원과 몇 번 통화를 한 끝에 1월 7일 서초동 서울지검으로 갔다. 당시 검찰 조사는 약 1시간 30분 정도에 걸쳐 이뤄졌다. 당시 내가 현역기자라는 점 때문인지 검찰 직원은 가능한 예의(?)를 취해 주었다. 조사라기보다는 사실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국회에서 고발한 내용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나의 입장을 말하는 정도였다.
결과적이지만, 그때 좀더 적극적으로 내 입장을 얘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고발까지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했었고, 검찰 조사 역시 형식적이란 얘기를 들은지라, 소극적이었다.
검찰 조사가 끝나고, 결과를 알기 위해 그 직원에게 몇 번 전화를 했다. 나는 법원에 기소하든 하지 않든 결과를 알려 달라고 했다. 이에 직원은 알았다고 했으나, 그로부터 석 달 후 약식명령서를 받은 후에야 기소되었음을 확인했다.
기자 회견
5월 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역시 난생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 회견장을 쫓아 다니다가 직접 회견을 하다니, 이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법원 출입기자 중 아는 선배가 있어 도움을 받아 전날 만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강금실 변호사도 함께 참석했다.
간단하게 내용을 읽고, 질문이 서너 가지 나왔다. 이에 대해 변호사와 내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런 일을 처음 하다보니 나로선 초보라는 걸 알리듯 언행이 그리 자연스럽지만은 않았다.
언론 보도
기자회견 이후, 두 명의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 가지 간단한 문의를 하고는 끊었다. 다음날, <한겨레>에 기사가 실렸다. 생각보다 담담하다. 며칠 후 검색해 보니 몇몇 신문과 <KBS>에도 나왔던 모양이었다. 예상보다 언론에서는 담담했다. 언론에 관련한 사안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순전히 내 자의적인 판단이었다. 보도자료를 작성하면서 나는 재판 관련한 내용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천하지 못했다. 게으름 때문이었다.
재판
6월 23일 오전 10시 서울지방법원 522호실. 재판은 공동재판이었다. 여러 가지 사안으로 재판 받는 피고인들이 있었다. 피고인 자리에 난생 처음으로 섰다. 기자랍시고 취재수첩을 꺼내놓고는 필요한 사항은 적었다.
10월 말까지 5번 정도 재판을 받을 기회가 있었으나 한 차례 변호사의 심문을 제외하고는 국회관계자 증인의 불출석, 연기 등을 인해 재판다운 재판은 받지 못했다.
피고인석에 서면 떨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무척 마음이 평안했다. 아마 아는 변호사가 그야말로 변호를 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내 행동에 대해 범법행위라고 생각하기 않는 것도 한 몫 했다.
변호사
변호사가 없으면 재판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날짜로만 다섯 달을 끌어오면서 스스로 지친다고 생각했다. 그냥 2백만원 물고 중도에 포기할까 싶기도 하다. 애초엔 지난해 국회 증인 출석요구가 있을 때는 만일 재판까지 가면 변호사 없이 혼자 법정에 서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참 철부지였다. 아직 변호사 비용을 다 주지 못했다. 다행히 공익변론으로 인정돼 변호사 비용은 약 1백만원 정도다. 이중 10월 말 현재 20만원만 냈다. 다 주어야 하는데, <말> 회사와의 관계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재판 비용
변호사 비용은 <말>에 공식적으로 청구할 생각이다. 이번 건은 <말> 기사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말>에서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말>은 지금까지 기사 관련 재판에 대해서 변호사 비용을 제대로 넨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선배 기자가 <조선일보>와 법정 다툼을 벌일 때도 변호사 비용 등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건은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던 언론사가 기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면, 가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전투적인 <말>이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말>에 조만간 공식적으로 변호사 비용을 요청할 것이다.
언론 자유
“이번 약식명령은 단순히 벌금 200만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사의 사실여부를 따지겠다는 사실상의 언론검열 행위에 해당된다고 본다. 만일 이번 약식명령이 그대로 인정된다면 앞으로 국회의원이나 국회 활동과 관련한 취재를 하는 일선 기자들로서는 취재나 기사작성시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자 개인의 취재 문제뿐만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에 심대한 영향을 비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식재판 청구의 또다른 의미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일부 국회의원과의 다툼이 될 것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밝힌 정식재판 청구 이유 중의 하나다. 이번 재판이 진다면, 선례를 남기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난 이 싸움을 시작했다.
법과 현실
법은 법이다. 이번 재판에서 내가 주장하는 바는 법률적인 논쟁이 아니다. 다만 당시의 여러 정황 증거를 토대로 한 짐작이다. 따라서 나와 통화 당시 ‘그렇다’고 했던 부분도 현실에서는 ‘아니다’고 한다고 해서 내가 증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이번 재판의 결과는 나의 당당함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법은 법이다. 법은 법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자꾸 화가 난다. 더욱이 이번 재판을 이기더라도 나는 그동안 허비된 시간과 변호사 비용 등 손해가 따르게 마련인데, 그런 것을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지 참 답답한 노릇이다. 법에 무지한 나로서는 처음엔 국회의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까 싶었는데 오호라 학생시절 사회책에서 외운 면책특권이란 게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더욱이 고소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긴 재판을 치러낼 경제적, 시간적 여력이 없을 것 같다. 이래서 재판장은 결코 힘없는 이들의 ‘놀이터’는 못 된다. (2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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