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기차
밤기차의 낭만이란 찾을 길이 없다. 1호차 맨 끝 칸과 벽 사이. 좌석을 구하지 못해 입석으로 탄 어느 일가에겐 그곳이 좌석이었다. 그 공간은 대 여섯 살 돼 보이는 아이 둘의 침실이 되었다. 다리를 쪼그리고 누운 그들에겐 기차의 덜컹거림이 자장가다. 그 반대편 공간엔 그들의 할미가 쪼그리고 앉았다. 그 옆엔 며느리이거나 딸인 듯한, 아이들의 엄마가 앉았고, 아이들의 아빠는 좌석에 기댄 채 서 있다.
그런 불안한 모습을 담고 기차는 서울역을 벗어났다.
밤기차.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어둠의 존재를 깨닫게 해 주는 기차 안 불빛에 어려 창에 내 얼굴이 비친다. 진정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는 밤기차를 탈수 없을 것 같다. 누구와 말을 걸 수도 없을 만큼 침묵인 저 어둠…. 그래서 일까. 사람들은 대개 잠에 빠진다. 철길을 더듬는 저 규칙적인 바퀴소리가 자장가일 수 없는 대도 능히 잘 수 있을 만큼 그들은 피곤했을까. 아님, 이렇게 밤도와 어디론가 가야할 만큼, 그곳이 절박하고. 그곳에 어둠이 아닌 빛이 있는 걸까!
밤. 생명들이 하루의 부산스러움을 잠시 접어야 할 시간에 밤기차는 비로소 생명을 부산스럽게 깨우나니. 밤기차의 낭만은 이제 저 철길 위에 누운 침목이 기차에 묻혀가듯 하나 둘 사람들의 일상 속에 묻혀 가리니.
노고단행 버스
어둡다. 버스가 비추는 헤드라이트에 길은 잠깐씩 모습을 드러낸다. 첫길이라면 이토록 잘 더듬어내지 못하리라. 밤길에 빛으로 잠깐씩 되살아나는 표지판이 제 역할을 다 할 것이라는 기대는 없으니. 용케 길을 더듬어낸 버스는 어느새 지리산 자락으로 올라섰다. 그처럼 비척거리면서도 산을 오를 수 있다니. 사람이거나 길이거나 산이거나, 누군가 신의 곡예를 부리고 있다.
2차선 길은 곡예하듯 버스를 안내한다. 좌로 돌고 우로 휘감고 굽이들이 모여 길이 될 수 있다니 그만큼 자연스럽고 그만큼 자연다워 보인다. 아니, 그 자연을 잘 구슬려 이처럼 길을 닦아놓은 사람들의 감언이설이란 얼마나 달콤했길래 산은 허리를 내어 주었을까. 아물기는커녕 더 곯아 들어갈 상처인데.
신통하게도 그 길에 채인 것은 버스가 아니라 어둠이었다. 어둠이 달려오나 싶었던 버스 창가에 어느새 여명이 돋는다. 어둠은 멀어져 간다. 이만큼에 있던 어둠은 한 굽이를 돌고 나면 저만큼 능선에 붙어 있다. 다시 한 굽이를 돌면 어둠은 그 능선마저 넘어 버렸다.
버스는 불안했다. 낡았을까. 1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오르자니 숨이 차는 걸까! 기어를 올릴 때마다 버스는 잠시 숨을 고른다. 덜커덕. 임종을 앞둔 환자의 기침소리다. 그런 끔직한 상상은 하지 말자. 버스가 이 굽이에서 숨을 멈춰버린다면, 불과 몇 초만에 저 깊은 산골짜기들은 냉큼 그를 받아 안을 것이다. 버스가 추락할 때 날개가 돋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버스 통로 건너편에 앉은 한 여인네. 혼자 떠나왔나 보다. 수첩에 자꾸 무엇인가를 기록한다. 지리산의 또 하루를 깨우는 버스에 탄 자신의 존재를 남기고 싶은 것일까. 운명처럼 여명에게 자리를 내주고 슬그머니 떠나버린 어둠의 뒷그림자를 어루만지려는 걸까! 그 안에 무엇인가를 지긋이 묻어 두려는 걸까.
계단
삼도봉. 전라남․북도, 경상남도에 한 자락씩 어깨를 걸친 봉우리. 허나 어찌 사람의 의식이라는 것이 자연을 넘어서리요. 세 개의 도에 의해 봉우리가 세워 진 게 아니라 봉우리에 의해 그들 도는 나눔에 경계를 부여할 수 있었다. 다만 1천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삼도봉이란 이름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의 당찬 의지를 펼쳐 보인 곳은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서는 아랫길에 있었다.
나무 줄기를 잡고, 나무 등걸을 보듬고 혹은 바위를 지탱하고… 엉거주춤, 구르듯 한 발씩 딛거나, 손이라도 내밀어 잡아 주지 않고서는 아찔한 내리막길. 그러다 발이 주르륵 미끄럼을 타고, 때론 엉덩방아도 찧고…. 삼도봉 아랫길은 그런 길이었다. 그렇게 30여분은 하늘도 잠시 밀쳐 두고 땅만 마주하고 내려서야 하는 길이었다.
노고단에서 돼지 평전, 임걸령으로 이어지는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때는 그야말로 ‘양반’이다. 종주능선의 길은 반야봉 줄기를 만나야 비로소 산에서 숨 고르는 법을 가볍게 일러준다. 오르막을 두고는 쉬지 말지니, 평지가 이어진다고 즐거워하지 말지니. 한 자락을 올라채고 나서야 숨 고르는 기쁨을 즐겨라.
그런 즐거움에, 그런 가르침에 익숙해질 무렵 삼도봉 내리막길을 만난다. 이때야말로 사람들에게 산은 제 할말을 한다. 산은 오르기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려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 오르막이 도전을 부른다면 내리막은 인내를 가르친다. 더욱이 한참 내려서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토끼봉을 두고 있으니, 더욱이 천왕봉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접혔다 펴졌다 하거늘 어찌 이 지리산의 가르침이 한낱 짧은 혀 놀림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삼도봉 아랫길이 말끔해졌다. 5백여 개의 계단이 놓였다. 쇠기둥이 헛짚는 허공을 받쳐 이제 미끄러질 염려는 없다. 목침은 적당한 거리로 놓여 발목이 이지러질 염려를 깨끗이 훔쳐내 버렸다. 굵은 밧줄은 동료의 손 없이도 혼자라도 거뜬하게 내려갈 수 있도록 해준다.
시간도 줄이고 먼지하나 묻지 않고 말끔히 내려선 삼도봉 아랫길. 편하게, 편하게…. 내 머리가 이 맑은 공기를 받고도 둔탁해진 탓일까. 이 5백여 개의 계단이 뭔가를 말하고 있을 텐데 그 가르침이 쉬이 깨우쳐지지 않는다.
이정표
토끼봉을 넘어 연하천 산장으로 사는 길가에 있는 총각샘. 그곳에도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녹색 목침에 양팔을 벌리듯이. 연하천 1킬로미터, 토끼봉 2킬로미터.
이정표. 길을 안내하는 곳이니 이정표로서는 손색이 없다. 더욱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일괄적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사람들이 알아보기에도 쉽고 나름대로 신뢰감도 든다. 그러나 총각샘 이정표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전설을 묻어버렸다. 이 이정표에는 이곳에 총각샘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고 있다.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10여 미터만 내려가면 큰 바위 밑에서 솟아나는 총각샘이 있는데. 옛날 심마니 노총각이 처음 발견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고, 여성적이라는 장터목의 산희샘과 대비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라는 얘기들도 있다.
지금은 세석산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선비샘이 사라져 버렸듯이 이곳 역시 의도적으로 없애 버렸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인가 지리산에 대피소(산장)들이 현대식으로 단장되고 난 후 주능선에서는 야영이 금지되었다. 샘이 있는 곳이야말로 야영을 할 수 있는 최적지이므로, 샘을 없앤다면 야영도 못할 거라는 생각이었을까. 대피소들이 있는 자리가 아닌 샘터는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멋들어지게 세워진 그 이정표에서 총각샘이라는 이름자를 빼 버림으로서 지리산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이제 총각샘을 말해 주는 이는 찾기 힘들 것이다. 면적이 넓은 만큼 아기자기한 사연도 담뿍 가진 지리산, 그러나 오늘의 생각 짧은 기록은 어제의 풍요로운 지리산을 야위게 한다.
리본
울긋불긋 끝물이 진 단풍들 사이로 사람이 만든 단풍들도 물들었다. 능선을 밟는 자락을 감싸는 가지들은 종종 리본을 달고 있다.
리본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길 안내다. 함께 산에 온 일행들이 나뉘게 되면 길을 잃어버릴까봐 길이 헷갈릴 만한 지점에 리본을 달아 길을 안내한다.
하지만, 정작 지리산에 걸린 리본 중 열에 아홉은 그런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 지리산을 가 본 이는 알겠지만, 지리산에서 길 잃어버리기가 쉬운 게 아니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열 대 여섯 번 정도 지리산에 갔는데, 함께 간 일행 중에서 길 잃어버렸던 이는 단 한 명 있었다. 당시엔 그 길이 헷갈릴 만한 구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곳마저도 ‘등산로 아님’이란 푯말로 말끔히 정리돼 있다.
리본이 갈수록 눈에 거슬린다. 역설적이게도 백두대간 종주 기념, 사랑하는 연인과 등산한 기념 등 각종 기념류의 문구들은 쓴웃음을 짓긴 했지만, 이해가 간다. 정작 이해되지 않는 리본들은 ‘자연을 아름답게’ 류의 리본들이다. 자연을 잘 가꾸자는 이야기를 나뭇가지의 숨통을 조르면서 해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런 문구까지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아마도 내가 뭔가 심사가 꼬였는지 보다 알 수 없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유려한 표어 실력으로 다듬었지만, 그래도 결국엔 훈계하는 자세를 잃지 않은 문구들. 높은 산에까지 올라와 이런 계도를 받아야 하나. 왜 이렇게 가르치려는 이들이 많을까. - 하긴 나도 몇 년 전 학교 후배들과 지리산에 오를 때 리본 달기를 하려 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이런 문구를.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실행하지 못한 내 게으름에 감사할 뿐이다.
산에서는 그저 산처럼 머물다 오는 게 가장 좋다. 그것보다 더 큰 공부도 없다. 어느 신이 태초에 인간에게 끊임없이 가르침을 받으라고 명했다면 아마 산에 가서는 인간의 가르침보다는 산의 가르침, 자연의 가르침을 받으라고 했을 것이다. 휜 나무가 거기 휜 채로 서 있는 이유, 속살을 벌레에게 고스란히 내 주고도 하늘을 머금은 나무의 속내는 무엇인지, 어느 골짜기를 타고 올라왔을까 싶은 생뚱맞게 큰 바위, 그것들이 모두 스승이다.
산 길
꼭 계획한 목표를 이루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벽소령 산장에서 1박을 하고는 계획과 달리 하산한다. 음정리로 빠지는 길을 따른다. 주능선 북쪽 사면을 타고 내려선다. 내려서는 길가에 엄청나게 큰 나무가 쓰러져 누워있다. 부러진 자국이 찢기듯 나 있는 것으로 봐선 사람의 손을 닿지 않은 것 같다. 잎이 푸릇한 게 며칠 전까지도 하늘을 꿈꾸며 서 있었다고 일러준다.
벼락이 내렸을까. 그러나 찢긴 밑동이 너무나 깨끗하다. 한 생명이 이 외진 비탈에서 쓰라려 하고 있지만, 나 역시 혀만 차다가 내쳐 걷는다. 하산을 시작한 후 해가 한 뼘도 채 흘러가지 않았을 무렵, 내리막으로 미끄러지던 산길은 평지를 만났다. 60년대 이른바 공비를 토벌한다고 군에서 끓어놓은 군사작전도로인데 몇 년 전부터 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등산로가 된 길.
아! 그곳에 내려서니 비로소 또 다른 가을지리산을 만난다. 산자락의 8부 능선이나 될까. 그 허리께를 타고 길이 이어진다. 그 길에서 가을은 호젓한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시야를 앞뒤로 잡아당긴다. 저 멀리엔 허리를 벌려 길을 내 준 산자락이 저대로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이만치 그늘진 곳에 선 나무들은 푸른 잎새로 가을지리산에 상큼한 맛을 돋궈준다.
차량 한 대가 지나갈 만한 산길은 마음마저 딱 그만큼 열어준다. 걸리작거릴 만큼 좁거나, 아무런 느낌도 없이 휑 지나쳐 가 버릴 만큼 넓지도 않은 그 길은, 적당히 마음을 쓸고 간다. 어느 지리산 산길에 내어놓아도 뒤지지 않는 맛이 이곳에 있었다니. 게다가 걸음을 막 배운 아이라도 숨차지 않고 걸을 만큼 길까지 순탄하니.
천왕봉만을 목표로 삼고 기어이 주능선을 따르려 했다면, 어찌 이 좋은 가을을 만날 수 있었을까. 그곳에 오르지 못하고 도중에 내려서는 것에 대해 맘 가득 불평을 안고 있었다면 어찌 이 외진 가을산의 속삭임들을 담을 수 있었을까. 그래, 모든 일들은 기회를 안고 온다. 그것을 보려거든 눈을 맑게 씻으면 된다.
산자락 마을
지리산 품에서 벗어날 때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가을 감나무였다. 산자락을 타고 선 감나무들이 자아내는 그 풍요로움이야 어찌 도심의 그것과 비교하리오. 그 감나무의 배경으로 으뜸은 단연 추수한 뒤 말끔해진 가을 들녘이다. 감나무 밑을 지나 마을길로 발을 들여놓으니 이곳이 음정리란다. 가을 하늘 아래 고즈넉해 보이는 마을 외진 길에 저만치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노인네다. 쭈그리고 앉은 채 지팡이로 낙엽을 쓸고 있다. 용케 몇 개의 낙엽은 지팡이에 채여 자리를 옮기지만, 한 경지 이르지 않고서는 아무나 그런 유희를 즐길 수 없으리라.
두 번째로 만난 이도 역시 노인네 였다. 할머니. 토종꿀을 판다는 글씨가 크게 벽에 쓰인 집 마루에 앉아 있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내쳐 흘러내린 물, 산장에서 그릇을 씻고 얼굴의 땀을 닦던 물이 여기까지 살아 내려왔으니, 행여 산 위에서 물을 괴롭힌 이들은 차마 부끄러워서도 이 물을 마시진 못하리라. 다행히 세제를 쓰지 않고 설거지를 했다는 변명을 늘여 놓고 물 한 모금 입에 댄다.
평상에 앉아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눈다. 자식들은 모두 서울에 올라가 버리고 딸네가 바로 앞에서 가게를 한다 했다. 그 가게. 지금은 등산철이 아니라고 사먹을 만한 것이 없다. 한 20여분 몸을 풀다가 빈손으로 그냥 일어나기가 뭐해 캔맥주를 하나 샀다. 조금 내려가다가 논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벼를 수확하고 있다. 콤바인도 아니고 탈곡기도 아니다. 옛날 홀태라고 부르던 ‘기계’다. 늙은 노인네는 참빗 모양으로 생긴 쇠고랑 사이로 벼를 넣어 훑는다.
한 움큼씩 잡고 홀태에 서너 번 훑으면 벼와 함께 벼 포기 목 부분에 있는 짚들도 떨어진다. 그렇게 떨궈 낸 알곡을 바람에 날리면 짚들은 한쪽으로 날아가고 나락들만 따로 쌓인다. 나락을 모아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으면 하얀 쌀이 되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 배를 채운다. 한쪽에 모인 지푸라기들, 이것을 검불이라 부르는데 시골에 종이가 부족한 시절에는 검불로 밑닦개 삼기도 했다.
그 홀태가 요즘 세상에도 논 가운데 놓여 있다니…. 음정리 참 외진 곳이긴 한가 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어찌 사람들은 그런 외진 곳에 살게 되었을까. 무인도에 가까운 섬에, 나무보다도 더 비탈진 산자락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을까.
길가에 50대가 넘어 보이는 한 아저씨가 지게에 알 수 없는 기계를 지고 간다. 발걸음이 무겁다. 이 깊은 산자락에 내딛는 저 발자국이 그 어떤 이에 궁금증에 답하진 못하더라도 저 발자국을 되짚어 쫓다 보면 태초에 이 땅에 들어온 그 역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득 몇 백년 전 이 길에 어떤 이가 지금 나처럼 나그네 되어 쉬고 있었을지… 슬쩍 본전 없는 상상을 해 본다. (2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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