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0+31

어느 기계를 미워하며


 

마음이 불편하다. 도시락 만한 기계 한 대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출근 카드 체크기. 이름이 적힌 카드를 넣으면 시간이 찍혀 나오는 기계.

출근시간보다 15분 이른 8시 45분에 출근했는데 망설이고 있다. 그냥 체크하지 말고 벌칙으로 토요일날 당직을 설까. “오늘은 일단 체크하고 안 하려면 다 같이 하자”는 한 지기의 말에 체크기가 있는 2층으로 내려갔다. 지각을 막겠다는 이유로 설치한 이 기계…. 뭔가 잘못된 진단에 잘못된 처방이 내려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달에 실시한 월차수당 폐지까지도

이번 출퇴근 체크기의 도입은 지각 때문에 발생하는 어수선한 근무태도를 바로 잡겠다는 게 배경이었다. 회사에서 보건대, 자율적으로 하자는 얘기를 했음에도 여전히 지각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할뿐더러, 늦게 오는 직원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찍 오는 직원들이 불만 - 적절하지 않지만 대강 이런 의미 - 을 갖거나 사기가 떨어진다는 것. 그래서 더 이상 직원들의 자율에 믿고 맡길 수는 없다는 거였다.


지금 회사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을 진단하는데 있어 오류가 있었다. 우선 지각하는 이는 있지만 이전보다 많이 줄어든 점을 간과하고 있다. 아울러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한 이유는 퇴사하는 직원들이 많기 때문이지 몇몇 직원들의 지각이 근본 원인은 아니다. 더욱이 일찍 온 직원들이 갖는다는 사기저하에 대한 사실 여부도 궁금하다.


문제는 현재 직원들의 퇴사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일부 직원들이 근무태도가 불성실한 점 등은 각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개인이 속한 이 조직의 현재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그것을 나는 회사의 철학 부재로 본다. 운영이든, 출판시장에 대한 접근 방식이든. - 그러나 출판시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준은 못 된다 .따라서 일단 피부로 느끼는 운영 면에서 살펴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회사는 새 사옥으로 이전하고 예전보다 많은 직원들을 채용하는 등 규모가 커졌다. 따라서 그에 맞는 철학과 생존방식이 있을 텐데. 아직 그것을 완전하게 터득하지 못한 지점에 서 있다.

회사가 커진 조직에 맞는 운영시스템을 찾기 위한 과정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팀장들의 자리매김, 회사내규 마련, 각 부서간 운영시스템 등등.


그래서 최근 몇 달간 벌어진 직원들의 퇴사는 그런 적응기에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하나의 통과의례라고 본다. 게 중엔 놓치기 아까운 직원도 있었을 테지만, 정말 그만큼의 인연으로 회사와 만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 중에서 남아 있던 직원들이 다소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움을 겪었다.  지난 번에 직원들에게 돌렸던 내 의견서 역시 그런 과정 중 한 가지다.


이번에 설치한 출퇴근 체크기는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한 지극히 편의적인 방법이다. 더욱 고민할 부분은 출근카드가 출근카드로 끝나는 일은 아니다는 점이다. 이건 사람들의 일상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가 일상에 스며든 것으로 해석된다. 자율로 안되니 타율로 하겠다는 것. 사람들은 규제를 받게 되면 그것에 익숙해져 버린다. 그동안 지각하지 않으려는 마음 안에 남아 있던 자발성마저 기계에 빼앗긴 꼴이다. 예전에도 일찍 나오던 직원들은 카드를 밀어 넣으면서 일찍 온 시간이 찍히는 것에 대해 기뻐할까. 한두 번 지각한 경험이 있던 직원들은 카드 체크하면서 구속된다는 느낌이 없을까? 


그렇게… 출근카드기가 우리의 마음을 강제하고 있다. 그 강제하는 마음은 출근카드기 앞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강제 당하는 마음에 익숙해지면 다른 일에서도 그런 습성에 빠져들게 된다. 일부 직원들은 다른 회사도 다 하는데 뭐 어떠냐고 하기도 한단다. 안타까운 소리다. 거창하긴 하지만, 인류의 역사발전은 자유를 얻기 위한 싸움의 과정이다. 이전 싸움이 권력과의 싸움이라면 이제는 기계, 자본이라는 새로운 영역들이 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오히려 기계를 받아들이자니. 기계가 없어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일을.


회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그런 작은 일로 시끄럽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도 들린다. 슬픈 얘기다. 회사가 어려운 문제와 출퇴근 체크는 별개의 문제다. 벽돌 찍는 공장도 아닌데 몇 분 늦는 지각이 그렇게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가.


뭘까? 이런 다른 생각들이.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마음의 근원을 보아야 한다. 왜 하려 하는가. 왜 반대하는가. 그 근원들을 찾아보면 어떤 것이 깨끗한 마음인지 알 수 있다. 근원을 짚어야 한다. 어떤 사안의 본질이 왜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이런 상태로 나가면, 직원들의 근무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까, 직원들 뒤통수마다 카메라 설치를 안 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인터넷이나 이메일 감시까지 이뤄질 수도 있다.

“더디가도 사람 생각하지요”하던 이북주민의 말이 이 자리에서 떠오르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1년이 걸리더라도 직원들 스스로 풀어가는 게 결국 회사로서는 득이다. 규제는 한번 시작하면 더욱 늘게 마련이다.


고민스럽다. 이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좁히지? 주민증 발급을 왜 거부하는지 모르는 이들에게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말하면 주민증 발급을 거부할까. 아닌 것 같다. 그럼 어떻게 바꾸지.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하다면 그런 지식을 전달해면 되지만 알고 있음에도 인식의 차이로 인해 의견이 엇갈린다면 이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 공간을 유지하면서 풀어 가는 방법, 어떤 게 있을까? ‘이건 아니다’고 회사를 뛰쳐나가는 방법은 최후의 선택이지 않는 한 가장 쉽고 별 의미 없는 방법이다. 


토요일, 일요일 지속되는 고민 끝에 한 가지를 생각한다. 내가 보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이 싸움은 힘으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지각하지 말자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를 달 게 없다. 그러므로 그 안을 받아 안고 가되, 사람들의 자발성에 의해 하자는 것이다. 대신 기계를 없애자. 사장에게 편지 쓸 결심을 한다. 왜 없애려 하는지를 말하고, 왜 그것이 근본 해결책이 아닌지를 말한다.


그러나 내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직원들이 지각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없는 한 설득하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나를 걸어볼 생각이다. 한 달만 유예기간을 달라는 것. 그러면 기계가 없어도 직원들이 기각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 내가 그 일을 하겠다는 것. 어차피 한 달 미룬다고 해서 회사가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면 직원들의 자발성에 일을 맡기자는 의미다. 기계에 의해 하는 것보다는 직원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행동이 보다 빛깔 좋은 결과를 만들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직원들과 대화할 것이다. 그리고 직원들 스스로 지각없는 회사를 만들도록 할 것이다. 한 달 정도면 출퇴근 체크기를 도입해 얻을 수 있는 효과만큼 지각률을 줄일 수 있다. 어차피 결과가 똑같다면, 기계에 구속되는 삶이 아닌 마음에 닿아 이뤄지는 변화가 더욱 가치 있다. 아울러 내용적으로 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의 이런 제안은 단순한 객기가 아니다. 지난 7개월간 이 회사에서 생활하면서 접한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직원들끼리 좀더 즐거운 회사 생활을 할 수 있겠다면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직원과 일을 하는데 그런 얘기를 했다.

“그렇게 하면 사장님이 좋아하지 않을 걸요?”

듣기에 따라서는 평범한 말이었지만, 의문이 들었다. 그럼 사장이 원하는 방향을 알고 그에 맞게만 일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사안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까. 그러나 취재하고 기획하는 잡지팀이나 단행본이나 창조적인 성격이 강한 일을 하는데, 자신이 좋은 안이 있으면서도 지레 사장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하는 이유로 마음을 접어 버린다면 그 회사에서 창의성이란 사장 한 명밖에 낼 수 없다. 

다행히 회사의 사안에 대해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전체 직원회의를 통한 의견 수렴과 논의를 하려는 사장의 모습에서 열린 이미지를 보았다. 그래서 이번 글 역시 그 연장선에서 쓴 것이다.


애초 이 글은 사장에게 전달할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즈음 너무나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지레 겁먹은 - 위악적인 표현이다 - 나는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덕분에 지금도 일찍 출근하고도 자리에 있다가 9시 직전에 출근체크기 앞으로 내려간다. 루쉰의 아큐정전식 방식이다. 일상에서 투쟁하는 일의 미묘함을 맛본다. (20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