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거침없이 광화문 사거리를 가로질렀습니다.
때론 바람보다 먼저,
깃발들도 미 대사관을 향해 몸부림쳤습니다.
그 해 겨울,
그러나 바람보다 혹은 깃발보다
더욱 몸부림 친 것은 제 몸을 사르는 촛불의 행렬이었습니다.
그 해 겨울,
경기도 양주군 효촌 2리에도 바람은 거칠었습니다.
“사망신고 하러 갔다가 도로 오고 그랬어요.
주민등록증에서마저 지워버리면
진짜 간 걸로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아버지 신현수씨는
이생을 떠난 효순이를 여태껏 가슴에 남겨두었습니다.
“봄이 되면 나무도 심고 꽃도 심을 거예요.
사철나무도 좀 심어야지.“
추모비 앞에 선 미선이 아버지 심수보씨도
당신 손으로 딸의 추모비를 만들면서
뼈 속 깊이 아픔이 스미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배 죽어 산에 묻고
어매 죽어 강에 묻고
자식 죽어 가슴에 묻고
지집 죽어 눈물로 묻고
자유 죽어 뼈로 묻고
민주 죽어 피로 묻고
다섯 자 한 푼 이 몸 죽어 청산 가면 된다지만
역사야,
너마저 죽는다면 묻힐 땅이 없구나.“
10여 년 전 고등학교 은사님이 쓴 시는
그 해 겨울에도 생명을 잃지 않았습니다.
수천, 수만 개의 촛불들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효순․미선이 부모들을 위한 기도였으며
주권 없이 흘러온 역사와 결별하고픈 몸부림이었습니다.
다시 새 봄입니다.
그 해 겨울의 기억은
지금 새로운 싹으로 트고 있습니다.
반전,
평화,
인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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