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소에서 워크숍을 떠나는 날,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택했다. 광주에서 담양이니 멀지 않았다. 사무소 차량으로 이동한 선발대보다는 늦게, 개인차량으로 이동한 후발대보다는 이른 시각에 출발했다. 일곡동 쪽으로 광주시내를 벗어나 담양군 수북면의 마을들 서너 개를 지났다. 워크숍 장소 인근인 메타쉐콰이어길까지 가는데 2시간이 약간 넘었다. 이번 자행에서 이 시간은 워밍업이었다.
워크숍이 끝난 토요일 오전부터 자행이 시작됐다. 며칠 전부터 지도를 보며 화순을 지나 광주로 오는 길을 택했다. 애초엔 곡성, 남원, 순창으로 돌아오려 했다. 그러나 일기예보는 ‘일요일 전국 비’를 바꾸지 않아 토요일만이 주어진 시간이었다.
오전 11시 숙소를 출발했다. 메타쉐콰이어길에서 나와 방향이 맞다 한쪽 길로 접어들었다. 12번 국도다. 갓길이 제법 넓어 자행에는 무리가 없었다. 더욱이 지나는 차량도 적어 왕복 2차선 도로가 자전거전용이라 해도 속을 법했다.
12번 국도를 따라 5분쯤 달리니 국도 아래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나타났다. 순간 그 길이 애초 가고자 했던 15번 국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에는 그 지점에서 동쪽 방향으로 난 길은 그것뿐이었다. 15번 국도가 아니더라도 그 길이 12번 국도보다 방향이 좀더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15번 국도로 나가는 출구는 없었다.
그 지점에서 ‘점프’를 선택했다. 높새를 들고 길 옆 비탈길을 내려갔다. 교통수단 가운데 오직 자전거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행히 수고는 10여 미터 정도에서 끝났다. 옮긴 국도를 얼마 달리지 않아 ‘옥과 16km'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15번 국도가 맞았다.
15번 국도는 단촐했다.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길을 지나자 양쪽에 들판이 나타났다. 얼마쯤 지나자 남원 49km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본능처럼 세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무리수를 두지 말자 싶었다. 장거리 자행은 오랜만인데다가, 10월엔 미국출장으로 자출을 두어 주 가량 쉬었기 때문에 몸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담양을 떠난 지 1시간쯤 지나 오례촌 부근에서 우회전하여 60번 국도로 갈아탔다. 60번 국도를 달려 대덕면에 있는 문재를 오를 때 체력이 필요했지만 그런대로 무난했다. 그러나 문재에서 ‘문제’에 봉착했다. 목적지인 화순으로 가려면 이 부근에서 897번 지방도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에서 화순방향으로 난 도로엔 887번 표지가 걸려 있었다. 지도와 2차선 길을 번갈아보다 그 길을 포기하고 곧장 60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60번 국도를 200미터쯤 내려가다 다시 높새를 돌렸다. 지형상 한참동안 내리막길로 이어질 60번 국도를 계속 달리면 지도상의 897번은 만나지 못할 듯했다. 그러나 897번에 접어들고도 망설임은 계속됐다. 897번 도로 초입에 난 만덕산 등산로를 아무리봐도 이 길은 897번이 아니었다.
몇 분간 등산로와 지도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897번 도로를 보니 산등선을 타고 시나브로 오르막이 이어질 듯 했다. 화순온천으로 가는 길이니 897번이 아니더라도 화순으로 갈 수 있지만, 오르막이 짐작되는 상황에서 슬그머니 다시 방향을 돌렸다.
‘아직 체력테스트가 끝나지 않았잖아. 무리하면 안돼!’
10여분을 배회하다가 다시 택한 60번 국도는 3분여를 줄곧 달렸다. 내리막을 만난 높새는 거칠 것이 없었다. 간혹 뒤따르는 차들에겐 속도를 늦춰 앞길을 내주긴 했지만, 통행량이 많지 않은 길이니 줄곧 도로의 주인은 높새였다. 대덕면 소재지에 도착하고 나니 이제 확실히 화순으로 길 길은 잃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만 897번 국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60번 국도를 따라 창평면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이곳에서 다시 여정을 정했다. 화순은 확실히 제외했다. 다만, 광주로 돌아가되 동광주 쪽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았다. 식사를 하며 한참을 들여다보니 길 하나가 이어졌다. 담양군 고서면을 지나는 887번을 타고 가다가 샛길로 접어들면 광주시 동구쪽 어디쯤에 닿을 듯 싶었다.
오후 1시 20분. 창평면을 벗어나 담양군 고서면에서 887번 국도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887번 국도에서 샛길을 찾는 데는 조금 주의가 필요했다. 역시 지도를 번갈아가며 오른쪽 샛길로 들어섰다. 차 한 대 다닐만한 시멘트 포장길이었으나 바닥이 매끄럽지 않았다. 높새는 덜컹거리며 길을 더듬었다. 얼마쯤 지나자 마을이 나왔다. 길 끝은 오르막을 남긴 채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되돌아가기보다는 앞으로 길을 내는 게 더 효율적인 상황이 되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니 저수지보를 타고 길이 이어졌다. 길은 끊길 듯 이어지며 십여 가구쯤 돼 보이는 마을 하나를 만들고 야산 자락을 넘었다. 다시 밭과 과수원으로 이어진 길은 반은 까져서 몹시 거칠어진 시멘트바닥을 드러내더니 어렵사리 2차선 도로와 맞닿았다. 망월동과 청풍동의 사이쯤 돼는 곳이었다. 여전히 촌 풍광이었지만 어느새 광주광역시에 들어와 있었다.
“이쪽으로 가면 제4지가 나와요. 그짝으로 해서 광주로 넘어가세요.”
길가에서 깨를 떨던 한 아저씨가 높새의 목적지를 알고 있는 양 길을 안내했다. 창풍동으로 가는 길은 2차선 도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도 있었다. 이 시골에서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난 것은 뜻밖의 호광이었다.
야산들은 불긋한 가을의 막바지 기운을 토해냈다. 길가에 바짝 붙어 논둑의 깨를 수확하는 촌로는 몸집이 너무 작았다. 이미 꽃과 잎사귀마저 떨군 코스모스들은 양상한 줄기만으로 존재를 기억하게 한다. 길은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잠시 놓친 것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제4지(저수지)에 다다르자 등산객들 수십 명이 삼삼오오로 모여 있다. 무등산옛길이 곳곳에 안내돼 있는 걸 보니 이쯤이 무등산 자락인 듯 했다. 수도가에서 물 한 모금을 달게 마시고 다시 길을 잡았다. 오던 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청암교를 지나 광주시내로 방향을 잡았다.
길은 숲에 푹 잠겼다. 근처의 산세로 보니 터널이거나 고개를 만날 여지가 높았다. 더욱이 갓길도 없는 길이 오르막이니 자행이 쉽지 않았다. 몸에 힘이 빠져 기어를 올리고도 안장에서 몸을 떼어 일어서서 페달을 밟았다. 그 와중에도 반대편 길을 따라 내려오는 자객들과 서로 목인사를 주고받았다.
5분쯤 올라간 후 부메랑처럼 휘며 산을 타 넘는 도로를 앞두고는 높새를 끌고 갔다. 다행히 50여 미터쯤 끌고나자 고개의 끝이 보였다. 길도 완만해져 다시 높새에 올랐다. 작고개 정상에서 조망한 광주시는 예상치 못한 풍경이었다. 예상치 못한 기쁨은 곧바로 이어졌다.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오르는 자들의 진정한 행복은 내리막길이 답해 주었다. 갈짓자로 이어지는 내리막은 비록 1분도 되지 않아 끝났지만 자동차와 거의 같은 속도로 내달리는 맛은 제법이었다. 그 맛이 끊어지는 지점에 광주광역시 산수1동이 있었다.
<길찾기 복습을 해보니>
자행을 하고나면 다음 지도에서 스카이뷰를 통해 길찾기 복습을 한다. 이번 복습을 통해 내가 가진 지도가 오래됐다는 점을 알게 됐다. 지금 보니 4년 전에 무안으로 이전한 전남도청이 여전히 광주광역시 안에 표기돼 있다.
897번 국도를 잃어버린 것도 오래된 지도에서 비롯됐다. 897번은 대덕면 소재지를 벗어나 왼쪽으로 있던 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도상으로는 그 위치에 길이 없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자행에 참고할 의미있는 교훈을 얻었다. 이번 자행은 내년부터 실시할 캠페인의 사전답사 의미가 있다. 그것이 과연 가능할 지를 탐색하는 여정이었다. 그런 면에서 의미를 부여해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전에 ‘몸이 움직였다’는 그 사실 하나에 더 큰 맛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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