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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장점이 더 불편한 신용카드

 

친구 현태가 월급 받은 날이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돈이 없다고 쩔쩔매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가 말한 게 “이달 월급으로는 카드를 막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게 신용카드로 대출한 돈을 막겠다는 것인지, 아님 전 달에 신용카드로 결제한 돈을 막겠다는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조만간 나도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닐 듯싶다.

8월엔 신용카드를 비교적 많이 사용했다. 술 마시고 계산할 때 두 번, 식사도 한번, 거기에 외부 필자와 사장이 식사하는데 얼떨결에 계산한 금액까지. - 물론 이 돈은 회사에 청구한다. 기차표를 인터넷 예매할 때도 신용카드를 썼고, 세탁기 구입할 때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더욱이 이번 달부터는 <한겨레21> 구독이 만료되는 시점이라 구독연장 하면서 산용카드로 분할납부 하기로 했다. 


예전엔 신용카드를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정산을 하면서 보니 신용카드 사용 혜택을 받으려면 수입의 10% 이상을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만 가능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지난해야 아버님 병원비를 내 카드로 결제하면서 10%를 초과 사용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일상에서 10%를 신용카드로 사용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두어 달에 한 번씩 구입하는 인터넷 서점 결제 정도이니 말이다. 그 생각이 들자 올해도 연말정산 때 신용카드 혜택을 누리자면 신용카드를 쓰자고 스스로에게 주문하곤 한다.


문제는 신용카드의 사용액이 한 달 늦게 결산된다는 데 있다. 늦게 결산되는 게 남들에게는 장점이고, 또한 그것이 신용카드의 생존이유이긴 한데, 그것이 오히려 내겐 불편을 초래했다. 이달에 쓴 돈이 다음 달에 결제되니, 다음 달 예산을 짜기가 쉽지 않았다. 전달 말 잔고가 100만원이었고 이 달에 쓴 돈이 50만원이었는데, 이달 말 통장을 보니 잔액이 10만원만 남아 있는 경우. 40만원이 전 달 사용한 신용카드 결제금액인데 남은 10만원을 본 순간은 무척 당혹스럽다. 이 당혹스러움은 아직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내 성격 탓이 더 크다. 뭔가 지불할 것을 지불하지 않고 미뤄두고 있다는 느낌. 괜히 빚지고 산다는 느낌, 그런 것들 때문이다.


이 달에 신용카드로 결제한 돈을 막기 위해, 9월 통장엔 보다 많은 현금이 들어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님, 9월에도 신용카드 결제를 적극적으로 펼쳐 계속 한 달씩 미뤄 현금을 지불하든지. (20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