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꼴, 꾀, 꿈, 끈, 끼.
지난 토요일 평화네트워크에서 마련한 일일주점에 들렀다. 그때 만난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이 들려준 단어들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성공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조건’이라고 한다. 우선 모두 ‘ㄲ’으로 시작되고 한 글자라는 그 모음꼴이 재밌었다. 이 얘기 끝에 각자 어떤 조건을 지녔는지를 가볍게 얘기를 나누었는데, 내 자신을 보니 답이 시원찮았다. 성공이 목적인 삶은 아닌지라 그리 심각할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 재미기 남들이 생각하는 재미와 차이가 약간 있긴 하지만. 이 글 역시 그런 재미다.
깡.
그날 내가 가진 가장 가능성 있는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깡’이다. 이른바 깡다구 뭐 그런 것일 텐데, 아무리 봐도 내 삶에 깡다구가 많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비슷하게는 ‘오기’라 불러도 좋다. 그런데 이 깡이라는 게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때론 주변에 책임질 사람이 늘수록 이 깡이란 반비례해 소멸되는 것 아닌가 싶다.
꼴.
굳이 오늘같은 낙서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내 꼴에 대해 한번쯤 써볼 심산이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꼴값한다’는 말부터 떠올린다. 이 말은 일상에서 부정적으로 쓰이곤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꼴깞하고 사는 게 중요한 일인 듯싶다. 그 다음에 떠오른 단어가 얼굴. 결론적으로 보면 적어도 첫인상으로 남에게 혐오감을 주지는 않을 듯싶다. 흥미롭게도 내 얼굴은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에게 좀 더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얼굴인 듯싶다. 이전에 졸업을 앞두고 사은회를 하던 자리였다.
복학생인 나는 모처럼 한 여성 후배와 얘기를 나눴는데, 그 후배 말이 “선배는 무서워 보인다”는 거였다. 별로 그 친구에게 무섭게 한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혹자들이 가끔 누굴 닮지 않았냐고 하면서 꺼내는 게 장동건이었다. 이전에 장동건 코디네이터를 취재한 일이 있었다. 그 분이 그때 눈 윗쪽으로 닮았다는 얘기를 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산다.
얼굴이 제 값을 한다고 해서 얼굴만으로 성공조건으로 꼴을 들먹거릴 것은 아닌 듯 싶다. 내 스스로 봐도 문제는 키 같다. 예전엔 내가 좋아했던 여자들이 키가 커서 나도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요즘엔 그런 생각하지 않고 산다. 생각한다고 해서 바뀔 것도 없거니와 ‘꼴값’하고 살면 된다 싶기 때문이다.
꾀.
잔꾀란 말이 먼저 떠올랐다. 이 성공 조건에서 의미하는 바는 명석한 머리일텐데. 지금도 규명이 불가능한 얘기가 한 가지 있다. 다름 아닌 내 아이큐다. 언제부터인가 아이큐를 말하면 147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나는 내 아이큐를 147이라고 믿고 있다.
중학교 때 한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나는 어찌된 일인지 그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그 친구가 내 아이큐를 보았다며 자기와 같은 147이라고 했다. 그 당시엔 그 숫자가 높은 건지 알지 못했다. 그 후에 생활기록부에선가 어디선가 한번 147이라는 숫자를 본적이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찾을 길이 없다. 믿거나 말거나다.
꿈.
꿈이 성공조건이란 말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꿈을 가지면 성공한다’는 명제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소박한 꿈이라도 명확히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도 꿈 자체가 성공요인이라기보다는 성공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자신을 부단히 밀어주는 당겨주는 힘이 꿈이 아닐까 싶다.
끈.
인맥이라고 설명하는 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일 듯 싶다. 인맥이라면 학연, 지연, 혈연 둥일 텐데, 학연이야 이른바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니 그리 기대할 값이 아니다. 지연 역시 아직 내 나이엔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그리 유쾌한 인연은 아니다. 혈연은 아버지의 사회 활동이 대외적으로 관계를 맺는 일이 아닌지라, 또한 내가 친인척들과 그리 원활하게 지내지 않기 때문에 먼 이야기일 뿐이다. 아마 이 조건은 긍정적인 의미의 끈일 텐데 나는 부정적인 의미만 나열된다. 굳이 긍정적 의미를 찾자면 내 다이어리에 있는 사람들의 명단이 내 끈일 뿐이다. 취재때 만난 사람들이다.
끼.
끼가 있다는 것인데, 나는 어떤 끼가 있을지 아직 못 찾았다. 그냥 분위기 파악 잘하는 것. 이런 것 말고 재능을 말하는 것일텐데, 재능이란 일천하기 그지없다. 일단 내 직업이 글 써서 먹고사는 거니 글 쓰는 끼가 있을까를 둘러보게 되는데, 그것도 없다. 학생 시절 글쓰기 해서 상 받은 적도 없으니. 아마 내가 놓친 끼가 있다면 리더십이 아닐까 싶은데 어릴 때 조금 더 발현시킬 기회를 잃어버린 것 같아, 지금은 이 역시 무용지물 같다. (2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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