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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32와 12분의 11

 

글자의 한계

하루 기껏해야 5천원도 벌지 못하는 물건을 들고 장터에 나온 할머니들, 20~30년을 한 장사로 살면서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우물만 팠음에도, 여전히 우물을 파고 있는 장꾼들. 그들 중 정작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이야기>를 읽을 만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난 그들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썼다.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 사회 소외된 이들에게 글자매체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그들을 바라보며 슬프다 마음 아프다 하는 얘기들이 허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다만,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인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만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2001.11.)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다

일요일에 김창남, 박명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청취자에게 전화를 받는 코너가 있었다. 내용은 ‘방을 치우다가 남편(부인)이 옛 애인에게서 받은 편지를 발견했을 때’다. 어떤 30대 후반의 아줌마 전화가 왔다. 몇 년 전, 남편이 옛 애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놓은 것을 발견했단다. 두 진행자, 어찌 남편이 그럴 수가 있냐며, 결국 남편과 통화한다.


진행자 : 왜 편지를 모아두셨나요?  

남편 : 아니, 그거는 옛날의 기억인데, 그걸 버릴 이유가 없죠!


진행자, 잠시 당황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남편이 사과를 하고 부인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말이다. 남편이 끝까지 잘못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니, 진행자들 결국 입장을 바꾼다.

“아 그렇군요.”


남편의 통쾌한 한판승이다. 그 남편, 아내가 그런 편지를 갖고 있다가 발각되었더라도 “옛날의 기억”이라고 용서하는 지금같은 입장이 바뀌지만 않는다면 멋진 사람이다.

도대체 누가 애인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을까? 그 애인을 만나기 전 과거의 추억마저 지워버리라고. (20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