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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어디에 몸을 담글 것인가!


밤 12시. 우리는 인사동 거리를 헤매었다. 방황이라고 해도 좋았다. 밤 8시 무렵 인사동 한 술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 밤 12시가 조금 못돼 쫓겨났다. 영업이 끝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남은 이야기를 풀기 위한 술집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영업 마감에 걸려 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밀려났다. 서너 군데의 술집 문을 여닫던 우리에게 인사동은 그래도 마지막 온정을 베풀었다.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는 술집을 찾았다. 다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우리 중 한 사람.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중학교 시절 언니의 그림도구를 몰래 가지고 놀던 소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우연히 그의 그림이 선생님 눈에 띄었다. 칭찬이 뒤따랐다. 그 칭찬이 부담이 돼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는 그림을 그렸고 미대에 지원했다. 고 3때 낯선 서울의 아파트촌에서 대입 실기시험을 볼 때, 서울이 낯설고 삭막해 외톨이 같았던 느낌을 그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대학을 졸업 후 지금까지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그는 삼십 대를 인권단체 활동가로 보냈다. 그에겐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마흔인 올해, 그는 또다시 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충분히 지겨운 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공교롭게도 그 일터는 그가 그토록 간절히 만들어지길 원했던 곳이었다. 그러니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미워할 수 없다. 그 결정에 오기까지 그들의 간곡한 눈물을 보았다. 그 의미를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방울 수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다음 생에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그는 일 때문에 만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잠시 꺼냈다. 그 말미에 결론처럼 한 마디 내뱉었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그래도 운동권만큼 좋은 사람들은 없더라.”

  

우리 중 또 한 사람.

그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들 시위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기어이 렌즈 안의 세상에 빠져든다. 홀로 가슴을 쓸며 겨울 추운 비닐로 외풍을 막고 사는 할머니도, 급여를 받지 못하고 손만 잘린 채 고국으로 되돌아간 외국인노동자도, 그의 셔터 안에 한 세상을 이루었다. 태생이 여리고 성정이 따스하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잠시 머무는 간이역 같은 일터에서 깊은 고민의 늪에 빠졌다. 그 과정에서 오해도 있었다. 스스로 말주변이 없음을 탓했다. 그에게 있어 말은 사진보다 못한 의사소통수단이다. 아마 사진으로 그의 마음을 찍어 보여주지 않는 한, 그는 말 안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 본심은 아닌데 어긋나버린 일들에 다른 이도 채이고 그 역시 넘어진 꼴이었다. 그때는 서 있던 간이역마저 포기하고 개찰구 문을 밀치고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도 불쑥거렸다.

그 과정 중에 그가 간절히 원했던 평양취재 건도 놓쳐 버렸다. 이제 그는 다시 플랫홈 앞에 발을 놓았다. 조만간 그가 서 있는 간이역엔 기차가 한 대 들어온다. 그가 탈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의 선택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차가 오기 전에 그 역시 마음을 정해야 했다. 기차를 탄다면, 당분간은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다.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중 마지막 한 사람.

그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때론 말보다 글이 더 편하다고 느낄 정도다. 그래서 인지 오늘은 좀처럼 말이 없다. 두 사람의 얘기만 묵묵히 듣고 있다. 술잔엔 손이 자주 갔다. 그렇다고 앞의 두 사람처럼 마음이 복잡한 것도 없다. 간명하다.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깔끔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그의 선택은 글로부터 떠나거나, 혹은 ‘기어이’ 글을 붙잡고 가야 한다는 것. 그 ‘기어이’마저도 허용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고 그가 찾지 않으면 당분간은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그는 내심 싹을 잘라버렸다. 아예 바닥부터 시작하자고 다짐한다. 시멘트 바닥에서 어떻게 글꽃을 피울지 스스로 모험을 해볼 생각도 한다. 물론 그 선택의 반대편도 그에겐 열려있는 길이다. 낯설지만은 않은 길. 그런데 그 길엔 어른거리는 그림자들이 몇몇 눈에 밟힌다. 사람에 대한 알량한 예의 같은 것.

때론 사람 그 자체로도 큰 이유가 되는 때가 있다. 사람 때문에 나이 마흔까지도 몸이 매이는 것이고, 사람 때문에 돈 안 되는 셔터를 눌러댄다. 한동안 ‘한 사람’ 때문에 마음도 챙기지 못하고 몸만으로 살았고, 한동안 ‘또 한 사람’의 방황과 고민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사람 때문에….     


새벽 2시. 우리는 다시 술집에서 쫓겨났다. 이제는 모두에게 말이 필요 없었다. 더 이상 인사동에 구걸하지 않았다. 여섯 시간 동안 어쩌면 우리는 단 한 가지를 확인하려고 했건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의 우리를 묶을 수 있는 끈이자, 각자에게 첫 인연의 자락이었던 그 한 가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알 수 없으나 그 한 가지가 힘이 되어 그 길도 닦아나가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한 사람’,

그는 생각한다. 이제 몸을 푹 담가야 할 때인 것 같다고.

서른세 살인 2002년의 1월은 그렇게 열렸다.    

      

처마 밑에 묶어둔 시래기는

바짝 마른 후에야

겨울바람까지도 녹여 국물로 우려내고,

노릇하고 통통한 감들은

푹 삭히고 삭힌 후에야

가을처럼 쫀득한 곶감이 되는 법


오늘 ,

어디에 몸을 푹 담글 것인가

무엇에 몸을 푹 달굴 것인가   

고민에 맘이 푹 달아 있구나! (2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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