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만의 발견
플라타너스. 이 나무의 이름을 들은 것은 아마도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온 시를 통해서 였다. 그 나무를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끔은 플라타너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 플라타너스를 보았다. 그리고 허망해졌다.
10대 초반을 보냈던 동네 마을회관 앞에 방울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아이들과 놀 때 그 방울나무는 여러모로 요긴했다. 술래잡기 할 때는 술래는 두 손을 감고는 그 나무에 기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쳤다. 때론 남자아이들에겐 담력을 테스트 하는 방편으로 그 방울나무 오르기가 종종 이용됐다. 여름엔 방울나무를 따, 구슬 대용으로 갖고 놀았다.
이처럼 친근했던 방울나무는 혜화동 집에 들어가던 2차선 길가의 가로수다. 그런데 바로 그 방울나무가 플라타너스였다.
33년 동안 그렇게 무지하게 살아왔다. 하긴 내가 무지한 게 그것뿐이랴. 다만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서 그렇지. 내 의식 안엔 얼마나 많은 방울나무들이 자라고 있을 것인가! (2002.2.)
세상이 좁다
세상이 좁다는 것은 여전히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느끼곤 한다. 김경환 선배 출판 기념회에서 나눔문화연구소의 한 간사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간사가 내 이름을 듣고는 “<캠퍼스라이프> 있을 때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게 벌써 3년이 넘은 일인데. 다음날 병준 선배의 출판기념회장에선 SBS구성작가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 작가 역시 나를 알고 있었다.
“대청호 어부 이야기 기사로 썼던 분이죠?”
며칠 전엔 지난해 줌마네에서 강의 듣던 아줌마 한 분이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내 글을 읽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해 <작은이야기>에 실었던 송창식 인터뷰였는데, 그것을 용케 발견한 모양이었다.
아! 내 이름은 이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2002.2.20)
경력증명서 떼기
경력증명서를 발급 받으러 갔다. 이틀 전 <캠퍼스라이프>, <말>, <작은이야기> 세 회사에 경력증명서를 부탁해 두었다.
첫 번째 들른 곳은 <캠퍼스라이프>. 회사는 옛 자리에 있었지만,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했다. 다행히 아는 사람이 있었다. 경력증명서를 떼어주던 총무과에 있던 이였다. 놀랍기는 했으나 친한 편이 아니었던지라 “아직까지 계시네요?”라는 다소 이해되지 않을 인사말을 건네곤 나왔다.
다음에 들른 곳은 <작은이야기>. 사무실에 들르기 전에 빵집에 들러 빵을 샀다. 사무실에 들러 사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직원들을 일일이 만나 인사를 나눴다. 미움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지만, 떠나고 보니 그것대로 끝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것은 <말> 사무실, 아는 사람들이라곤 취재부 사람들인데 마침 기획회의를 하고 있었다. 총무과에 부탁해 경력증명서를 떼고는 시간이 늦어져 기획회의 하는 사람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나왔다.
다행히 세 회사가 이대입구, 홍대 전철역, 공덕동 로터리 근처라서, 세 시간 정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2002.2.22.)
휴식의 단계
내가 즐기는 휴식 방법에서 최고는 글쓰는 일이다.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는 한 집에서 할 수 있는 휴식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풀에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 그것이 내겐 휴식이다. 남들이 쉴 때는 뭐하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글 쓴다고 하면 이상한 놈이라고 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글 다음으로 선택하는 휴식방법이 책읽기다. 글을 쓰다가 피곤하거나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시간이면 책을 펼쳐 든다. 이쯤 되면 거의 범생이 수준의 휴식이다.
글도 못 쓰겠고, 책읽기도 힘들 정도면 비디오를 빌려본다. 침대에 누워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그만이다. 비디오를 보는 것까지 힘들게 느껴질 정도로 휴식이 필요하다 싶으면 잠을 잔다. 광노형 결혼식에 갔다 온 토요일 오후 5시,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그때의 심신은 비디오도 허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렇게 잠이 들어 밤 10시 핸드폰 소리에 잠이 깼다. (2002.2.23.)
버리고 얻기
모처럼 <작은이야기> 급여가 들어오는 통장을 정리할 틈이 생겼다. <작은이야기> 사장이 퇴직금보다 조금 더 돈을 넣었다. 생각하지 않은 돈이었는데, 그 돈을 본 순간 웃음이 돌았다. 돈이 많고 적은 것을 두고 나온 웃음은 아니었다. 그 행위에 담겼을 의미들을 내 나름대로 내게 이로운 대로 해석하다 보니 나온 웃음이었다. 두어 달 전 생각을 다 던져버렸던 내 행동에 대한 작은 결실. 뭐 그런 정도의 기쁨이다. (2002.2.)
'서른의 생태계 > 서른의 생태계32+33'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럼에도… 희망들 (0) | 2009.11.25 |
---|---|
시든 화초 (0) | 2009.11.25 |
아파트 재계약의 조건 (0) | 2009.11.25 |